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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리딩지저스 신명기 개론 영상 시청하기
그리스도 중심으로 신명기를 읽기 위해 이해하고 있어야 할 필수 내용입니다. 꼭 시청하시고 신명기를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 영상만 꾸준히 반복적으로 시청하셔도 바른 성경 읽기에 초석을 잘 쌓아갈 수 있습니다.
신명기의 저자는 모세입니다. 새로운 율법이 아니라 시내 산에서 받았던 원래의 율법을 광야 2세대에게 다시 말 한 것입니다. 30장의 대부분은 모세의 설교인데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 모압평지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1~30장에 걸쳐 기록된 설교가 신명기의 전부입니다.
일차 수신자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려고 모압 평지에 있는 광야 2세대들입니다.
지리적 (장소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수기에서 모압에 도착한 이후 그곳에 머물러 있는 상태입니다.

모세의 첫번째 설교:: 1:6-4:43

신 1-3

가데스바네아에서 지금 모세가 이스라엘 무리와 함께 서 있는 요단강 앞 모압 평지까지 오는데 11일이면 오는 길을, 가나안땅 정탐꾼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과 불순종으로 40년을 돌아왔습니다. 고생을 자초한 거죠. 거기에다 광야 1세대 군인들(20세 이상 남자)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새로운 세대 앞에서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을 다시 설교합니다. 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고 순종해서 그땅에서 복을 받게 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불신과 불순종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1-3장은 지난 광야 생활 기간중 주요한 내용을 다시 설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민수기 13장,14장, 21장, 32장에 기록된 사건들을 다시 2세대에 맞게 말합니다.
약속의 땅을 바라보면서 그 땅을 그 누구보다 간절히 밟기 원했던 모세도 하나님께 절절히 매달려 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로 더 이상 기도하지 말라고 하실 정도로 단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거룩을 드러내지 않고 자기 의를 드러냈던 그 한번의 불순종으로 모세조차도 가나안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3:22-29). 그러나 모세는 여전히 하나님 앞에 온 땅에 모세보다 더 온유한 자가 없었고,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경험하였고, 직접 대면하여 (얼굴을 본 것이 아니) 하나님과 대화했던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신 4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율법과 규례들을 말합니다. 율법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께 구원받은 백성이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삶의 방식으로 주신 것이고, 지키면 살고 복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살 때 세상이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칭송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받은 신약의 성도와 대비시킨다면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의 원리와 동일합니다.
모세는 출애굽기 20장에서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십계명을 주신 일을 5장까지 계속 상기시키면 설교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음성만 듣고 형상을 보지 못했지만 (12), 제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며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님을 봄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았습니다.
15-24절에서 특별히 형상 제작 금지에 대해 강조하는데, 인간의 우상숭배적 부패성 때문입니다. 인간은 무엇이 되었든지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숭배합니다. 예술 작품을 금지한 것이 아니라 숭배할 목적으로 만드는 형상입니다. 외적인 것도 있지만 오늘날은 우리의 마음에 새겨진 우상들이며,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에서 숭배하는 세상적 철학, 유행, 문화, 과학과 기술과 세속주의가 마음의 형상이 될 수 있습니다.
39 그런즉 너는 오늘 위로 하늘에나 아래로 땅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
40 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
4장의 핵심구절이라 볼 수 있을겁니다. 그래서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우상 숭배를 하지 말아야 함을 명령하십니다. 지금 우리들에겐 마음의 우상이 너무 많음에 큰 쩰림과 두려움이 들때가 많습니다.
하나님만 섬기고 사랑하며 율법을 지키며 살기만 하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텐데 마음이 새롭게 되지 않은 인간에겐 불가능의 일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예언대로 심판 받아 망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대신 죽으시고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대신 율법에 순종하심으로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 거하게 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모세의 두번째 설교:: 4:44- 26:19

신 5

5장부터 26장까지는 모세의 긴 두 번째 설교 내용입니다.
광야 1세대가 받았던 십계명을 다시 상기시키며 가르칩니다. 주목할 점은 안식일을 지켜야 할 근거로 출애굽기 20:11절에서는 ‘하나님의 창조’ 에 근거를 두었는데, 2세대에게 다시 전한 십계명에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후에는 주일이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입니다. 주일마다 종되었던 우리를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신 창조주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을 기억하며 예배하는 것이 주일 성수의 핵심입니다.
주일 예배시 십계명 낭독은 예수 그리스도 중보자를 통해 하나님과 언약을 갱신하는 사건입니다.
신자의 세상에서의 삶은 말씀을 듣고 배우고 순종하는 삶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모세의 설교에서 십계명에서 형상 만들기를 금지하는 것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다른 하나님으로 섬기게 하며, 우상 숭배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형상화하는 우를 범하는 만화 캐릭터, 영화에서의 예수를 연기하는 배우, 애니매이션, 그림, 조각등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가지게 되고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신앙과 섬김을 낳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그 어떤 그림, 조각등을 남겨 놓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만약 하나라도 남겨 놓았다면 인간은 그걸 우상화하고 숭배했을 겁니다. 천주교를 보세요. 얼마나 많은 형상, 그림, 제사, 의식들이 가득합니까? 그리고 그것을 숭배하고 이탈리아, 스폐인 등등 카톨릭 국가에서는 그것을 돈벌이로 삼아 돈을 버는 일들이 얼마나 만연해 있습니까?

신 6

자녀들의 신앙 교육은 부모가 가정에서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6-9). 저도 그랬지만 자녀들 신앙 교육을 교회 주일학교에 너무 맡겨 버렸습니다. 제가 가장 크게 후회하는 부분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암송하게 하고 집안 곳곳에 붙여 놓고 일상화 시키지 못한 것 말입니다. 그런면에서 규칙적인 가정 예배 만큼 탁월한 자녀들 신앙 교육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정착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과 협력이 필요하겠지만… 한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의 율법(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삶의 모습이며 증거입니다.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의도적으로 불순종하는 자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부족하거나 없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6:13, 15절은 8:3절과 함께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실 때 사용한 말씀입니다.
25절에서 말씀을 지키는 것이 의로움이라고 합니다. 이 말이 행위를 통해 의롭게 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믿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므로 (설령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의 의지와 성향으로 인해) 의롭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 7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 그 땅의 민족들을 진멸하라는 명령입니다. 이유는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하여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들 (우상)을 섬기게 되어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해 멸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빈다 (1-4).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택하여 구원한 거룩한 백성 (성민) 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에서 구원받은 교회 역시 하나님의 성민이며, 하나님의 사랑받은 백성이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약속하셨던 동일한 언약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유입니다.
12절부터는 율법을 지키면 복을 받게 되는 약속이 주어지지만 실상은 그들이 구원받은 성민이기에 율법을 지키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군사력이나 지혜나 많은 군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적군을 넘겨 주셨고, 하나님이 싸우셔서 승리하시고 그 탈취물 (전리품)을 자기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적이 아무리 크고 많고 강해 보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중요한 것을 이스라엘을 미혹할 수 있는 우상의 모든 것들, 잔재들을 완전히 진멸시키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며 우상을 타파해 가는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온갖 우상숭배적 문화와 싸워 나가야 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것들이 우리들의 마음 안에 뱀꽈리처럼, 새둥지처럼 자리를 펴고 우리의 경배를 받고 있습니다. 교회로서 성민인 우리들의 지상에서의 삶은 우상을 타파하고 우상을 제거하며 오직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선포하는 전투적 삶입니다.

신 8

이스라엘 백성은 매일 광야에서 만나의 기적을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하늘을 보고 살았던 거죠. 하나님 백성인 이스라엘과 저희들은 하나님 절대 의존적 존재임을 보여 줍니다. 이를 통해 사람이 육신의 배를 채우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임을 가르켜 주십니다 (8:3).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이 영생입니다. 말씀이 내 심령에 심겨져 하나님을 아는 상태가 영생을 가진 상태입니다.
참 사람이신 예수께서 마귀의 유혹의 첫째 시험을 이기실 때 이 말씀을 사용하셨습니다.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필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우리의 영혼의 양식과 음료인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성찬을 통해 주시는 떡과 잔을 통해 최후 구원까지 우리 주님께서 먹이시고 마시우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7:3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모세의 설교의 내용은 반복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거든 여호와의 율법을 준수하라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그들이 지키면 그땅에서 쫓겨나지 않고 잘 살며 그 땅의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지키면 사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그저 우리가 억지로 지켜야 할 계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이 녹아진 은혜입니다. 율법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알게하고 하나님 나라에서 행복하게 사는 규범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계속해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조상들의 불순종과 악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에서 누리게 될 복은 마치 에덴만큼은 아니지만 에덴의 축복이 회복된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복을 누림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율법 준수에 달려 있습니다. 지키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아 에덴에서 쫓겨 낫듯이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의 땅에서 쫓겨 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해 결코 빼앗기지 않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게 됩니다. 우리 대신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 가 우리에게 전가 되어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지킨 자로 여김받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받은 하나님 나라는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약속과 보증을 받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신 9

8장 14절과 마찬가지로 9장에서도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의 강대한 민족을 이기고 그 땅을 차지한 건 그들의 실력이 아님을 상기시켜 줍니다. 하나님께서 다 하신 것인데 이스라엘은 자기 능력과 지혜로 한 것인 양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버리게 될까 염려가운데 경고와 당부를 합니다.
5절에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신 이유를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공의, 정직함 때문이 아니라 그 땅 민족들의 악함을 심판하시기 위함이며,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하신 언약을 지키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은혜 때문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지요!
모세는 광야 1세대의 불순종과 거역과 우상 숭배의 흑역사를 다시 상기시켜 주며 같은 길을 걷지 않도록 도전합니다.
이스라엘의 반역에 진노하사 멸하시려는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의 용서와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성품과 뜻에 의지하여 중보기도하는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에서 그 의미가 완전히 계시됩니다. 자신의 피의 제사를 근거로 하나님께 날마다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실 것을 중보하시는 그리스도가 계시기에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 앞에 감히 나아갈 수 있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었습니다. 출애굽때부터 다 광야에서 멸망하기까지, 그리고 2세대들 조차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약속의 땅을 주시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주장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하나님의 마땅한 진노의 형벌입니다.

신 10

금송아지 숭배로 전멸 직전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중보기도로 살아난 사건을 회고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다시 십계명을 두 돌판에 새겨서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다시 율법을 주셨다는 건 하나님의 용서이며 그들에게 자비를 다시 베푼 것입니다 (1-1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이스라엘) 요구하시는 건 전적인 헌신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마음에 할례 즉 변화된 마음입니다.
이스라엘은 끝끝내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해 늘 거역과 불순종의 백성으로 살아가지만 참 사람, 참 이스라엘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을 통해 이젠 성령으로 새롭게 된 우리들은 새 영 새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 자발적으로 주를 사랑하고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16).
15절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사 만민 중에 택하셨다는 사실에 우리가 받은 구원이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선택의 결과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으니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아침입니다!

신 11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나안 땅은 천수답 (11-12) 입니다. 애굽에서처럼 강물을 대서 (관개) 해서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오직 하늘만 바라보아야 살 수 있는 땅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때에 맞게 비를 내려 주셔서 수확하게 하시는 땅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 생존이 의존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우리의 삶이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 살고 죽는 문제 모든 것이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습니다. 내 힘으로 세상의 것들로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며 그 삶이 영적으론 피폐해져 갈 것입니다 (8-25).
26-32절은 복과 저주를 선언하는 내용인데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학자들은 신명기 사관이라고 합니다. 복과 저주의 선포는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여부로 결정되는 구원과 심판으로 이어집니다.

신 12

12장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그곳의 우상들과 우상 숭배 행습을 완전히 파괴하라는 규정과 예배할 처소를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서 드릴 것에 대한 규정입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섬기던 신을 연구하거나 그들의 행습을 본받지 말라고 하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철저히 하나님만을 섬기기를 원하시고, 이방의 문화에 동화되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시는지를 알게 됩니다. 지금 우리 마음안에 섬기는 우상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두려워 떨어야 되는지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비와 용서가 아니라면 우리는 이미 진멸의 대상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진멸당하심으로 우리가 평화와 안전을 누리는 것이 새삼 얼마나 다행이며 은혜인지 모릅니다.

신 13

13장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짓 선지자와 꿈꾸는 자의 미혹에 넘어가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그들도 이적과 기사를 베풀고 환상을 보는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미혹되면 끝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리로 나갑니다.
지금 시대에 거짓 교사, 거짓 선지자, 거짓 목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도 신기한 일을 행하기도 합니다. 예언하기도 하고 병도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런 현상을 보고 그것이 참 기독교로 현혹되어 쫓아가다간 배교의 길로 빠집니다. 참된 믿음은 기록된 하나님의 정확무오한 말씀인 성경 66권의 계시의 말씀을 따라서만 사는 것입니다. 절대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를 미혹하며 세상의 신 (물질주의, 세속주의, 현세주의, 기복주의)을 가르치고 유혹하는 자에 대한 무서운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더욱 깨어서 분별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바른 말씀과 교리를 배우고 아는 일에 전력해야 하는 때입니다.

신 14-18

신명기를 읽는 동안, 광야 1세대가 다 멸망당하고 2세대가 요단 강 앞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모압평지에서 설교를 듣고 있다는 상황을 놓치면 안 됩니다.
새로운 율법을 듣는 것이 아니라 원래 주어졌던 율법을 동일한 선지자에게서 새롭게 듣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읽어 나가세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에게 주신 율법 규정들의 여러가지 부분들을 모세가 2세대에게 다시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그 내용들이 출애굽기와 레위기에 중복해서 나옵니다.
정결과 부정에 대한 법, 십일조 규정, 빚을 면제하는 규정, 종을 대하는 법, 3대 절기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에 대한 규정, 재판 규정, 왕에 대한 규정,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몫에 대한 규정등이 나옵니다. 이걸 신학자들은 제사법과 시민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제사법이든, 시민법이든 그 율법의 원리와 정신은 신약 백성들도 실천해야 하는 내용입니다.

신 14

14장엔 금지된 애도법,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먹는 규정, 십일조에 대한 규례에 대해서 입니다.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나누는 기준은 짐승들 자체에 있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 의롭게 되었다고 선언하신 것 또한 우리 자체가 정결하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정하다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부정한 자를 정하게 하는 십자가의 도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철저한 십일조 준수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는 율법적으로 십일조가 의무는 아닙니다. 하지만 십일조의 원리와 정신만큼은 우리가 발견하고 지켜 나가야 합니다. 십일조의 정신과 목적은 29절에 보시면 긍휼, 구제, 공동체의 나눔과 성전 봉사자 (레위인)의 생계 책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에서 십일조를 요구하셨습니다. 이것의 정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풍성하게 주신 (24절) 10분의 9에 감사하지 못하고, 감사의 표현인 10분의 1 에 마음을 빼앗겨 그것을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거나 부담스러워 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주신 풍성한 90%를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신 15

매 칠년마다 빚을 면제 해 주어야 하는 규정인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면 그 땅에 가난한 자가 없을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경제 정의와 공평과 분배가 실현된 상태입니다. 우리가 장차 들어가게 될 하나님 나라가 이런 나라가 될 것입니다.
12-18절에 7년이 되면 종을 자유롭게 하는 규정에 대해 말합니다. 경제적 파산으로 종이 되었어도 7년이 되면 해방입니다. 7년 마다 리셋되는 제도입니다. 지금은 신정 국가가 아니어서 실행 불가능한 제도이지만, 당시 이스라엘이 이 규정을 제대로 지키기만 했다면, 그 나라는 최소한 7년마다 자유와 해방을 누리며,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행복한 나라였을 겁니다. 이방의 어떤 나라도 이런 자유와 공평과 정의가 실현된 나라가 없었을 것입니다.

신 16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에 대한 규정 (가나안 땅에서) (1-17)

칠칠절, 초막절에 대한 규정인데 이는 레위기 23장에서 이미 나온 내용입니다. 다른 점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라는 고정된 장소에서 지켜야 합니다. 이 말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이동식 성전인 회막이 고정된다는 뜻입니다. 곧 예루살렘에 세워질 성전을 말합니다. 솔로몬에 의해 성전이 완공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요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오게 되죠. 예수께서도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오셔서 친히 어린 양으로 죽임 당하시고 모든 제사를 완성하시고 폐지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죄와 죽음과 세상과 사탄의 노예에서 해방시켜 자유케 하셨습니다.

공의로운 재판 (18-22)

하나님 나라는 공의와 정의가 강같이 흐르는 곳입니다. 이땅의 법관들이나 재판의 역할을 맡은 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람을 외모로나 뇌물을 받고 그릇되게 판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신 17

죽임당할 죄 (1-14)

다른 신들 섬긴 자들의 가증한 일이 행한자들이 알려지게 되면 두 세 증인에 의해 확정한 후 돌로 쳐죽이라는 규정입니다.
9-14절: 제사장과 재판장의 판결을 듣지 아니하는 자들 역시 죽임을 당해 공동체에서 제하라는 규정입니다.

이스라엘 왕에 대한 규정 (14-20)

14-20절: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왕의 마음과 행위에 따라 이스라엘의 안위가 좌지우지 됩니다. 사무엘상에서 이스라엘이 이방나라들처럼 왕을 구하는 것을 하나님이 싫어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이 왕이시거든요. 그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두기 싫어하니까 세상처럼 그들을 다스릴 왕을 요구한 겁니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왕이 사울왕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들이 왕을 요구할 것을 아셨고, 또 왕을 세우는 것 역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모세를 통해 왕에 대한 규정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해 보겠지만 여기에 완벽하게 합당한 왕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가장 부합한 왕이었던 다윗 왕조차 악한 죄를 범하였습니다. 결국 우리는 이후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듯 완전한 왕 메시아를 기다리게 됩니다. 우리에겐 이미 오신 그리스도가 있고, 장차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음이 얼마나 복된 자들인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왕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과 왕으로 모시고 산다고 말하지만, 내 삶의 주도권을 내가 쥐고 내가 왕이 되어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아침입니다.
주목할 점은 이 왕이 율법서의 등사본 (성경)을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을 지킬 것을 명령합니다. 그렇게 할 때 마음이 교만하지 않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아 그의 왕위가 오래 지속됩니다. 말씀을 늘 읽고 묵상하고 듣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18-20).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순종하게 하며 겸손하게 하고 삶이 치우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게 해 줍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삶의 키 (Key) 입니다.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왕으로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영인 성령으로 교회와 신자들을 통치해 가십니다.

신 18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받을 몫 (1-8), 가나안 땅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라는 경고 (9-14)를 하십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행위들의 목록들이 나옵니다. 특히 무당, 신접, 마술, 요술,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오는 일 같은 영적인 일에 관한 겁니다.
최근 잘잘법의 김학철 교수( 이 분도 거짓 교사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이고 비성경적 가르침을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고 전파하는 분입니다) 의 아내로 잘 알려진 이호선 박사가 한국에서 가장 용한 점쟁이들을 뽑는 오디션 같은 예능프로에 출연했다가 원성이 커지자 하차한 일이 있었는데… 이분도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기독교가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기도가 많이 필요한 한국교회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거짓 교사들에게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18장 15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유명한 인용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 뒤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킬텐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선지자가 말한 것을 듣지 않는 자들은 죽을 것이라는 심판의 메시지도 아울러 주십니다. (18-20).
이후에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엄밀하게 없었습니다. 물론 모세와 같은 선지자의 역할을 한 선지자는 계속해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이 선지자는 아닌가봐 그러면서 계속 모세가 말한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 를 기다린 것입니다. 이것 또한 메시아 대망사상입니다. 선지자도 ‘메시아’, 즉 기름부음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 뒤에 세워진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을 들어야 했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모세 뒤의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참 선지자, 가장 크신 선지자, 최종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표시하는 (예표) 자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서 세상에 선포하고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모세와 같은 한 선지자, 그 선지자, 최종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루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신 19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 때 도피성에 대한 규정을 다시 광야 2 세대에게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1-13). 또한 공정한 재판과 증인에 대한 규정입니다 (15-21)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의 성품이 율법에 녹아있음을 봅니다. 하나님의 율법에는 이처럼 하나님의 성품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무죄한 피를 흘리거나 거짓 증언으로 인해 무고하게 형벌을 받는 일이 없는 곳이어야 합니다. 공정하지 못한 재판으로 인해 평생을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사람은 배고파서 초코파이 하나를 회사에서 집어 먹었다고 감옥에 가고, 어떤 자는 수백억을 탈세하고 주가를 조작하고 횡령을 해도 무죄가 되는 그런 사회는 땅이 탄식하고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이런 규정들 하나 하나를 읽다보면 , 결국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라는 공평과 정직과 공의가 제대로 작동하며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에 사는 백성들이 복된 나라입니다. 분명 장차 우리가 영원토록 살아갈 하나님 나라는 이런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지상에서 완전히 이룩하는 일은 불가능할지라도, 공평과 정직과 공의로운 재판과 사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재림시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는 이것이 완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신 20

가나안 땅 성읍들과 그 땅이 아닌 성읍들을 정복할 때 지침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며 싸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전쟁에 임할 것과, 전쟁에 나가는 것을 면제받는 경우, 진멸해야 할 성읍과 그렇지 않은 성읍들 각각에 대한 지침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시기로 하신 가나안 땅의 족속들은 생명 있는 것을 다 죽이라고 명령하시는데 이것을 ‘하렘’ 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가증한 죄악된 삶을 물들여서 하나님께 범죄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8).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며 제사장 나라인 성도들이 세상의 문화에 동화되어 세상사람들처럼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께는 큰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만 섬기며 순종하는 거룩한 자기 백성 공동체를 이루시기 원하십니다.

신 21

주요 내용

죽인 자를 알지 못하는 시체를 발견했을 때 죄 사함 받게 하는 규례, 여자 포로를 아내로 삼는 규정, 아내 둘에게 아들이 있을 때 장자권에 관한 규정, 패역한 아들에 대한 규정 및 나무 위에 달린 자에 대한 규정, 기타 여러가지 규정들, 순결에 관한 법에 대한 내용입니다.
21:5절:레위 자손 제사장들 하나님께서 택하사 자기를 섬기게 하신 자인데,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역할과 ‘재판장’ 의 역할도 하였습니다. 대제사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최종 재판장이신 심판주이십니다.
유대인들은 무죄하신 그리스도를 죽인 죄를 범했지만,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시는 주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규정들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 알게 됩니다. 또한 공정함, 공평, 부모 공경을 중요시하시는 분이심을 봅니다.
신명기 21:22–23
22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22-23절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가 당해야 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대신 죽으신 것임을 알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놋뱀이 되어 십자가 장대에 높이 들리신 인자이십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저주를 받아 죽을 죄를 범한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우리가 받을 하나님의 저주인 진노와 심판을 우리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13 에서 이를 해설해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내가 받아야 할 저주를 그리스도께서 대신 받으셨다는 것을 진정 믿는 자라면 어찌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감사하고 헌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이런 진술 앞에 너무나 당연히 무감각하게 지나가지는 않나 돌아보게 됩니다.

신 22

남녀 복장 혼합 금지 규정에 대해 (22:5)

22:5절은 그리스도가 오신 후 폐지된 규정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여자가 남자 옷을 입고 남자가 여자 옷을 입는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국가적으로 처벌 받지는 않지만, 성도라면 따라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건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른 규정이기 때문입니다.
문화 속에서 남자와 여자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들을 뒤바꾸지 말라는 규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날 동성애가 만연해 가는 이유중에 하나가 저는 이런 행습에서도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전체가 평등이라는 기치 아래 남녀의 구분을 없애고 유니섹스화하고 혼합해 가는 문화가 시간이 지나면서 동성애의 욕구가 자연스러워지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순결에 관한법 (13-30)

22:13-30절은 순결에 관한 법입니다. 여러가지 경우들을 상정하고 각각에 대한 처리 규정을 말씀하십니다. 십계명의 제7계명 “간음하지 말라” 에 관련된 규정입니다.
하나님께서 결혼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지 그 마음을 알게 됩니다. 성적인 범죄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에서는 사형에 해당한 죄였습니다.
26절에서 강간은 이웃을 쳐죽인 것과 같은 살인이라는 대목은 성폭행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무거운 죄이며 이웃에게 얼마나 큰 죄악인지 그 심각성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성적 순결을 아무것도 아닌 듯 여기는 이 시대는 그만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패역한 시대임을 입증해 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구약의 이런 말씀을 볼때마다 하나님이 왜 이런 규정을 주시는 지 그 의도와 정신을 깊이 살펴야 합니다.
성적 순결에 관한 규정은 신약 백성인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여전히 유효하며, 모든 인류가 동일하게 따라야 할 하나님의 창조에 근거한 규정입니다. 십대이든 90세가 넘은 노인이든 합법적인 결혼 밖에서 하는 모든 성관계는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범한 것임을 알고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에서든 가정에서든 순결에 관해 가르치고 세상 가운데서도 기독교의 높은 성에 대한 윤리를 드러내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이며 왕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19절에서 아내가 처녀가 아니라고 모함한 남편이 장인에게 주어야 할 벌금 은 일백 세겔은 약 17년 임금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입니다. 고대 당시에 은 반세겔이 한달 노동자 월급이었다고 합니다. 요즘 시세로 거의 백만불에 가까운 돈 정도로 추산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의 악을 제거함

이런 엄한 규정들과 형벌 규칙의 목적을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공동체의 거룩함을 보존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죄인이 올 수 있고 용서받은 죄인 공동체이기에 죄가 없을 수는 없지만 교회의 거룩은 세상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 보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권징이 중요합니다. 현대 교회에서 거의 시행되지 않고 시행하기 어려운 것이 공동체 내에 죄가 있을 때 권징을 통해 교회의 거룩함을 보존하고 죄 범한 성도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신 23

공동체의 공의와 복지 규정들 (사회법)

계속해서 가나안 땅에서 살 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백성들의 사회 생활에 대한 여러 규정들, 전쟁할 때 거룩하게 하는 법, 종이 자기 주인을 피해 도망했을 때, 이자에 대한 규정, 서원 규정, 남의 밭에 들어갔을 때등 삶의 다양한 상황에 대한 규정들입니다.
18절을 통해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돈을 버는 목적도 중요하지만 수단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한국 속담에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다’ 는 말은 비성경적 속담입니다. 하나님은 수단까지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선한 것이어야 합니다.
19절을 근거로 종교 개혁자들은 개혁된 교회 성도들 간에 돈거래를 금하면서도 피치 못해 돈을 빌려 줄 경우 이자를 받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공동체의 자선을 통해 교회를 보전하려는 실천이었습니다.
재반 규정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의 사회의 공의와 공평을 구현허시려는 하나님의 의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신 24-25

이혼과 재혼에 대한 규정, 재판과 태형, 형수취수제(계대 결혼법), 아말렉에 대한 처리등 여러가지 삶의 정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규정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역시 하나님께서 이런 규정을 주시는 근본 정신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자를 보호하시고, 공동체 안에 자비, 배려, 사랑과 긍휼의 사회를 만들기 원하시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14절의 경우, 고용주의 경우 직원의 월급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지 말아야 함을 알게 됩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도 지연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의도적 지연은 착취며 학대입니다. 하루 하루 일하고 주급으로 빠듯하게 살 때 어떤 사장 밑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사장이 상습적으로 자기 비지니스 현금유동성을 위해 wage를 미루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때 참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사장이 되면 절대 고용한 사람의 월급 (주급, 일당) 만큼은 당일에, 해당 주에 정확하게 주어야 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신 26

4:44절부터 시작된 모세의 설교가 26:19절에서 끝납니다 (첫째 설교는 1:6-4:43). 설교의 마지막 말이 큰 기쁨과 격려를 주는 말씀입니다. 두번째 설교의 결론입니다.
신명기 26:18–19
18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 너를 그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하시고 그의 모든 명령을 지키라 확언하셨느니라
19 그런즉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그렇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정체성입니다. 이스라엘은 결국 실패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왕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아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참 이스라엘인 교회를 만드시고, 세상 가운데 뛰어난 보배로운 하나님 백성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신 거룩한 백성 되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교회가 이처럼 영광스러운 존재임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되게 하심을 찬송하고 감사하며 교회의 거룩과 영광을 이루어 나가게 될 것입니다.

전체 문맥 속에 큰 그림

모세의 2번째 설교가 끝나고 세 번째 설교로 넘어갑니다. 광야 1세대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다 죽고 2세대만 남아 (갈렙과 여호수아 제외) 이제 요단강 앞 모압 평지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며 모세의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신명기란 2번째 율법이란 책 제목이지만, 새 율법이 아니라 첫 세대가 받은 율법을 다시 새롭게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전 모세가 2세대에게 요단 강 앞에 하나님의 주셨던 율법, 명령, 규례와 규정을 다시 가르치고 있다는 큰 그림을 보면서 계속 읽으시기 바랍니다.

모세의 세번째 설교:: 신 27:1-30:20

신 27-28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명령입니다. 이것을 준행하는 여부에 따라 복과 저주를 내리실 것이라는 언약의 내용입니다. 그리심산에서는 복을, 에발산에서는 저주의 내용을 선포합니다.
복과 저주는 언약의 조항을 낭독하는 것. 어기면 저주를 지키는 복을 뱓는 조항이 고대 근동의 종주국 언약의 형식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종, 하나님이 주로서 언약을 맺음)
에발산이 있는 곳은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세겜 땅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28장에서 주목 할 것은 순종하여 받는 복의 내용보다 불순종하여 받는 저주의 내용이 분량적으로 3.5배가 많다는 겁니다
불순종하여 받는 저주의 모든 내용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결국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의 선하신 율법을 지켜 살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율법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순종하고 여호와 하나님만 섬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영원토록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분과 연합한 자가 되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얼마나 형용할 수 없이 크고 놀랍고 감사한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인지 모릅니다.
28:53-57절엔 역사속에서 느부갓네살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일어났던 예언의 내용입니다.
인간은 선한 자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걸 드러내 줍니다. 아무리 평상시에 선한 인간도 조건만 주어지면 얼마든지 한없이 악해지는 존재입니다. 자기 자녀의 살을 먹고 그걸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악함 속에 인간의 전적 무능과 전적 타락을 확실하게 보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에발산과 그리심산에서 언약을 새롭게 할 것을 명령함

신 29-30

모세의 세 번째 설교가 끝나는 절정 부분입니다. 그 자체가 한 편의 위대한 설교이네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광야 일세대와 세웠던 언약을 2세대와 새롭게 갱신하는 언약 체결의 내용입니다.
언약 조항은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만 사랑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들어가서 살 게 될 약속에 땅에서 복을 누리며 영원히 살 것이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들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하나님 대신 다른 신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그 땅에서 좇겨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심판후의 회복의 메시지를 남겨 주셔서 소망을 주시죠. 그 회복의 메시지의 절정은 이스라엘의 실패의 근본 원인인 마음을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30:6).
마음의 할례를 베풀어 주셔서 이젠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셔서 생명을 얻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아것이 약속이 영원히 성취되고 유지하게 하는 Key 입니다.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 세례(신자가 믿음으로 받는 성령, 성령으로 인해 믿을 때)에서 성취됩니다. 신약 백성에겐 신명기에 선포된 복을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누리며, 저주와는 상관없이,마음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기를 원하며 살게 됩니다. 반면 예수를 거부하는 자에겐 모든 저주가 그들에게 임하는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 영원한 복이 약속되어 있다 할지라도 30장 20절 말씀을 잊지 말고 준행해야 할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하나님 여호와가 생명이라고 하신 그 하나님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라고 하신 그 하나님이십니다!

생각해 볼 구절들

29:4절- 이스라엘이 출애굽의 초월적이며 큰 이적과 기사를 보았음에도 하나님께 끊임없이 불순종한 이유가 하나님게서 깨닫는 마음,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시지 않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임을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새롭게 하지 않으시고, 깨닫게 하지 않으시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은 인간에게 믿음과 순종을 요구합니다.
29:6절- 40년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만으로 살게 하심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절대 의존적 존재임을 알게 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29:11절-온 세대 예배의 성경적 예증 부분입니다. 언약 공동체가 다 함께 하나님 앞에서 예배 가운데 언약을 체결하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30:1절- 이스라엘이 불순종으로 저주를 받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그곳에 들어가서 쫓겨나 이방 나라에 흩어져 있음을 전제하고 10절까지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 31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모세에서 여호수아로 이양되는 부분입니다. 가나안 땅은 모세가 아닌 여호수가가 이끌고 들어갑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백성을 데리고 가나안 땅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를 통해 예수를 믿는 새 이스라엘인 신약 백성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구원 받는 그림의 미리보기이며 하나님 나라의 동일 패턴입니다.
31장에서 신정국가인 가나안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율법) 을 듣고 배우고 지켜 행하며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임을 잘 말해 줍니다.
신자의 삶은 말씀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늘 말씀을 눈과 귀와 입에(말씀 듣고 보고 낭독) 가까이 하고 말씀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삶의 요체입니다.

몇 몇 구절에서 생각해 볼 점들

9-10: 교회 예배와 동일한 포맷입니다. 큰 소리로 성경을 낭독해야 할 중요성, 온 세대가 함께 예배하는 성경의 예입니다. 회중을 하나님 앞에 모으고 (예배로의 부름), 말씀을 낭독하고 듣고, 배우며 (가르침, 설교),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함으로 반응합니다.
18절: 악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숨기신다. 하나님을 보기 원하는 자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20절: 배부르고 등따시면 은혜를 잊어버린다. 하나님이 주신 복 그 자체에 취해 복을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멸시한다. 삶이 풍요로울 때 조심해야 한다.

신 32

모세가 (여호수아와 함께) 노래의 형태로 말씀을 이스라엘에게 낭독한 내용입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이스라엘의 불순종,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입니다. 이스라엘의 반역과 불순종의 결과 약속에 땅에서 장차 그들이 받게 될 심판의 형벌이 (미래의 시점) 마치 실제 일어난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시점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이것이 강한 경고의 말씀이었지만 (46),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대로 되어 버립니다. 그런 측면에서 예언이기도 합니다. 핵심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순종하며 복을 받고 그 땅에 영원히 거할 것이지만 불순종하면 저주와 심판으로 그 땅에서 쫓겨 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아담과 하셨던 행위 언약과 여전히 유사합니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을 먼저 구원하신 후 주신 율법이기에 그 안에 은혜가 담보되어 있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이 언약은 비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맺는 새 언약에 의해 영원히 깨어지지 않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히 복을 받게 되는 것으로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듣고 순종) 하는 것입니다. 47절에서도 말씀을 순종함이 생명의 길임을 말합니다.
안타깝게도 모세 역시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약속의 땅을 느보산에서 바라보기만 하고 있습니다 (49-52).

몇 몇 구절에서 생각해 볼 점들

15절: 삶의 풍요가 도리어 그 풍요를 주신 공급자 하나님을 밴반하고 무시하게 했습니다. 우리의 삶에 선물을 주신 하나님 보다 선물에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을 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17절: 신 (우상)의 종류에도 유행과 트렌드가 있습니다.
21절은 롬 10:19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방인들을 먼저 구원하셔서 유대인들을 시기하게 하심으로 그들도 구원받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37-43절에서 우리는 세상의 신은 절대 의지할 것이 못됨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은 우리 앞에 하나님 앞에 또 다른 신을 두는 혼합주의입니다.

신 33

33장은 모세가 죽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합니다. 야곱이 죽기 전 12 아들을 축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축복의 내용에는 저주는 없고 듣기에도 기분 좋은 복들입니다. 근데 복의 내용이 영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여수룬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다른 말) 의 복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그들의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하여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이 다시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되는 것이 복이요 구원입니다. 이 축복의 선언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임마누엘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을 통해 얻게 되었습니다 (27).
참된 행복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자이며,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 된 자입니다.
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신 34

34장에서 모세의 죽음이 기술됩니다. 그 탁월한 선지자 위대한 선지자 이스라엘의 중보자였던 모세도 결국 120년이란 세월을 살고 죽습니다. 이후엔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더 이상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세와 비교할 수 없는 The greatest prophet 가장 위대하고 유일한 선지자이시며, 하나님을 대면한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일체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유일한 참 중보자이시며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며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시며 죄를 용서하시는 대제사장이십니다. 구약의 가장 위대했던 선지자 율법의 선지자였던 모세는 엘리야와 함께 변화산에서 나타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 (십자가의 죽으심, 부활과 승천)을 예수님과 대화했음을 떠 올려 봅니다.
이렇게 모세 오경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 끝났습니다. 계속해서 5권의 책과 역사를 잇는 한 가지가 하나님의 언약과 언약의 성취입니다.

구속사의 위치

아담의 타락으로 하나님 나라의 원형이었던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12 아들을 통해 애굽에서 큰 민족을 만드셨고, 그 민족을 구속하셔서 이젠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하나님 나라 (신정국가) (많은 백성과 하나님의 영토와 하나님이 다스리는 왕국) 의 성취를 바로 눈 앞에 두게 하셨습니다.
이 후의 역사는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를 통해 어떻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 영토를 획득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느냐입니다. 그 내용을 여호수아서에서 보게 될 겁니다.
중보자 모세를 통해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구원받았고, 앞으로 중보자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갑니다. 영원하시며 참되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구원받았고, 그분을 통해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며 그분이 우리의 처소가 되어 영원토록 함께 거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