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소개
바른 교회 소개

민수기

리딩지저스 민수기 개론 영상 시청하기
그리스도 중심으로 민수기를 읽기 위해 이해하고 있어야 할 필수 내용입니다. 꼭 시청하시고 민수기를 읽으시기 바랍니다.
민수기의 히브리어 성경 제목은 "광야에서" 입니다. 세상에서 구원받은 성도의 이 세상에서의 삶이 "광야에서" 입니다. 그렇기에 "민수기" 는 교회인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민 1

장소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시내산 아래 광야에 머물러 있습니다. 출애굽기 19장에서 시내산에 도착한 이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레위기는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고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을 만나 교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규정들입니다. 핵심적으로 성전과 성결한 삶으로 요약할 수 있겠죠.
출애굽한지 2년하고도 두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떠나기전 인구조사를 실시하게 하셨습니다. 그결과 20세 이상 전쟁할 수 있는 남자의 수가 603,550명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한 때 60만 대군이라고 했는데, 야곱의 가족들이 애굽에 들어갈 때만 해도 70명이었던 족속이 60만 대군이 되었으니까 못해도 2백만~4백만의 인구를 가진 큰 민족이 되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을 통해 거대한 민족을 배태시킨 것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의 능력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하늘의 별처럼 셀 수 없이 많은 후손을 주셨습니다. 이제 약속의 땅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민 2

진 편성과 행군 순서에 대해

2장에서는 60만 대군의 진 구축과 행진 대형에 대한 세부 사항인데, 정말 감동적입니다. 어떤 적국과 싸워도 이길 수 있을 만큼 잘 조직되고 일사분란한 군대 그 자체입니다. 여기서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래는 하나님의 전쟁임을 시사해 줍니다. 근데 그 전쟁의 중심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막(성전) 이 있고, 제사장 그룹과 성막에서 봉사하는 레위 족속이 센터를 이룹니다. 하나님의 전쟁은 거룩한 영적 전쟁이며 믿음의 싸움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천상의 교회를 승리한 교회라고 하고, 지상의 교회를 전투적 교회라고 하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기까지는 지상의 교회는 끊임없이 머리가 깨어지고 (창 3:15) 퇴각하는 사탄의 세력들과 싸우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영적 전쟁 가운데 있기 때문이죠.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의 영적 싸움을 위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라” 고 말을 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민 2장 진 배열과 행진 순서를 그려 보았습니다

민 3

아론의 아들들의 계보, 제사장을 돕는 레위인의 직무, 레위 자손의 인구 조사

레위 사람이 이스라엘의 장자의 역할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수만큼 레위인을 취하고, 가축의 첫 새끼는 레위인의 가축을 취하라는 규정입니다. 왜냐하면 레위인은 여호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민 4

3장에 이어서 레위 자손 중 고핫 자손, 게르손 자손, 므라리 자손이 회막과 관련하여 맡을 임무에 대해서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지시하신 내용입니다. 그리고 34절부터 레위 자손 인구의 결과입니다.
앞으로 진을 형성하고 행군해 나갈 때 중심은 언제나 회막이기에, 레위 자손과 성막에 관한 사항들로 긴 부분을 할애합니다.

민 5

1-4절까지는 부정하게 된 사람들의 처리 규정인데, 이는 진영을 거룩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5~31절 부분은 29-30절에 요약한 대로 “의심의 법” 에 대한 규정입니다. 아내의 부정과 아내의 부정이 의심될 때 제사장이 판결하는 규정인데…어떤 면에선 섬뜩합니다. 바람핀 아내가 받게 될 형벌이 참혹합니다. 하나님의 구속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결한 삶을 얼마나 중요시 하는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실상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복을 위한 것이죠. 가정을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인간의 악으로부터 가정을 보존하여 복된 제도가 되기 위함입니다.
이 장에서 가르치는 바는 “일부일처제”, “부부 사이의 정조”, “은밀한 죄를 드러내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부분을 이전에 묵상하면서 그런 글을 적었습니다. “만약 어느 한 주일에 우리의 대제사장되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앉아있는 모든 사람에게 이 쓴 물을 마시게 하신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민 6

나실인의 법 (1-21)

나실인이 자기 몸을 구별하는 동안 지켜야 할 규례와 정한 기간이 마친 후 드릴 제사법 규정에 대해서입니다.

제사장의 축복 (아론의 복:22-27)

종교 개혁자들은 중세 로마 카톨릭의 예배를 개혁하면서 이 부분을 예배로 하나님의 백성을 부르고 하나님 앞에 예배로 나아온 회중에게 하나님의 복을 선언하는 내용으로 낭독했습니다. 바른 교회 예배시에 가끔씩 예배로의 부름시 제가 낭독하는 부분도 동일합니다.
이 하나님의 복은 사도 바울의 고후 13:13 (예배시 강복 선언시 말씀) 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은혜와 사랑과 성령의 교제가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하는 것이 삼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 지어다” (고후 13:13)

민 7

민 1-6장 기록된 사건보다 한달전에 먼저 일어난 사건입니다.모세가 회막을 완성한 후 12지파의 지휘관들이 회막을 중심으로 진 친 대형을 따라 차례대로 드린 헌물의 내용입니다.
제단의 봉헌물 규정대로 드린 것들입니다.
순서는 첫날 유다 지파의 지휘관부터 열두째 날 납달리 지휘관까지입니다. 모든 지파가 드린 헌물은 동일합니다.
I. 헌물
은쟁반 1300세겔
은바리 70세겔(여기는 소제물로 기름섞은 고운 가루를 채움)
금그슷 10세겔 (향을 채움)
II. 번제물
수송아지 1
숫양 1
일년된 어린 숫양 1
III. 속죄물
숫염소 1
IV. 화목제물
소 2
숫양 5
일년된 어린 숫양 5
이 모든 봉헌물의 합계가 84-88절입니다.
89절에서 속죄소 위 두 그룹사이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민 8

성막 안의 어둠을 밝히는 등잔대는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되신 그리스도를 예표함과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의 빛된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말씀입니다 (8:1-4)
14절: 레위인을 이렇게 정결하게 하는 이유는 여호와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거룩한 것이며 구별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세상과 구별된 존재이고 거룩한 존재입니다. 세상과 구별된 삶,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근원입니다.
구속받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위해선 성막의 존재가 절대적이며 필수적입니다. 레위인을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장자를 대신해서 취하고, 그들을 풀타임 회막에서 봉사하게 한 것은 성막을 유지 보존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입니다. 레위인의 직무는 어떻게 보면 극한 직업입니다. 가장 영광되며 거룩한 일임과 동시에 가장 두렵고 엄격하고 힘든 노동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성인이 되어서 노동할 수 있는 인생 전부를 (25세~50세) 회막에서 보냅니다. 25절에서 ”오십 세부터는 그일을 쉬어 봉사하지 아니할 것이나” 라는 말 속에 이 일이 얼마나 고된지를 가늠해 보게 됩니다.
신약 시대는 목사가 레위인은 절대 절대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사실상 그리스도 안에서 레위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레위인이 성막에서 또는 성전에서 전업으로 봉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성전된 교회 (건물이 아닌 사람과 모임)에서 전업으로 봉사하는 목회자의 삶은 많은 부분에서 교차됩니다.
언젠가 개인 일기에 그런 글을 적은 적이 있습니다. 목회자의 사역으로 부름받아 목회를 하 것이 영광스러우며, 하나님의 복음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일이 그렇게 좋고 즐거우며 가슴 뜨겁게 하는 일입니다. 동시에 “목회는 극한직업이다” 라고 썼던 기억이 납니다. 목회를 직접해 보지 않으면 이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실 겁니다.^^

민 9

애굽에서 나온지 일년 일개월째이니까 시기적으로는 1장 인구 조사보다 앞에 일어난 일입니다 (9:1).
출애굽 때 처음 유월절을 지킨 후 일년 후 지키는 두 번째 유월절입니다.
12절: 유월절 어린 양을 먹을 때 뼈는 하나도 꺽지 말아야 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 그 뼈가 꺽이지 않으셨습니다. 원래 십자가에 달린 시체는 다리를 부러뜨려 확인했었지만,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 양의 실체임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요 19:36). 유월절 절기만큼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 가운데 있는 거류민들과 타국인들까지도 포함해서 유월절을 반드시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구약의 유월절은 예수님의 유월절 만찬을 거쳐 십자가에서 완성되고, 이것을 교회는 성찬에서 기념합니다. 종교 개혁자들은 “성찬”을 참된 교회를 분별하는 세 가지 표지 (Mark) 중 두 번째로 삼았던 것입니다.
9:15-23 부분을 통해 신앙 생활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23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구름이 이끄는 대로, 즉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이끄는 대로 행진하기도 하고 진영을 치고 멈추기도 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입니다. 신자의 개인의 삶은 교회 공동체를 떠나 혹은 분리되어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말씀과 성령의 다스림가운데 나아가기도 하고 멈출 때 공동체의 멤버로서 함께 나아가고 멈추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명령과 신호를 따라 (구름) 회막을 쳤다가 다시 거두었다가를 무수히 반복하며 광야의 여정을 지나갔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번거롭고 귀챦은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일상의 반복에 순종하며 나아갔습니다.
매 주일 교회로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배우고, 성도의 교제를 나누며,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며 사는 신앙 생활이 번거롭고 지루하게 느껴 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반복된 신앙 생활 속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신앙 생활의 에센스입니다.

민 10

나팔 신호 (1-10)

나팔을 불어야 할 때와 나팔의 신호에 따른 지침입니다. 이것은 군대가 나팔에 따라 전투에 임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팔 신호로 회중을 소집하고, 진영을 출발시키고, 전쟁에 나가게 하고, 희락의 날, 절기, 초하루에 제사드립니다.

시내 광야를 떠나 행진하는 이스라엘 자손 (11-36)

드디어 회막을 완성한 후 시내광야를 떠납니다. 잘 훈련된 정예부대처럼 조직적으로 위용을 떨치며 행진하는 모습은 가히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약속에 신실하심의 현현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의 행진을 군대, 군기라고 표현하는 것에 주목해 보세요.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는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궤(증거궤,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죄사함의 장소입니다. 35,35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분리 되어 있음을 알게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에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토록 허나님께서 우리에게 임재하시며 주가 동행하십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복됨입니까?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35절) 하였고 “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36절). 언약 궤가 전투의 선봉장입니다. 지상의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입니다. 주의 재림때까지 전투하는 교회의 대장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영적 전투를 함께 치루는 전우인 여러분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민 11

그 전엔 마실 물때문에 원망했는데, 이젠 백성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원망합니다. 고기 먹게 해 달라는 겁니다. 이들의 노예 근성은 뿌리 뽑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종으로 살더라도 차라리 고기를 먹는게 더 나은 삶이라는 겁니다. 매일의 기적인 만나에는 질려 버렸다고 합니다. 매일의 기적이 원망이 되는 때 (6절) 입니다. 탐욕 때문입니다. 자족하지 못하며 감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원망의 뿌리가 이겁니다. 더 근원적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 하나님보다 현실의 필요와 만족을 더 추구하는 마음때문입니다.
11-12절: 인간 중보자의 연약함입니다. 모세조차도 원망하는 백성들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소연이라고 보아야겠죠.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중보자이셔서 결코 자기 백성을 이끌며 모세처럼 하나님께 한탄하거나 두려워서 낙담하여 항의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의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장로와 지도자 70인을 세우시는 것과 하늘에서 메추라기를 내려 고기 먹에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완악한 죄에 대한 심판을 내리십니다 (33). 우리가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게 우리에게 좋은게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심판일 수 있습니다. 칼을 달라는 아이에게 칼을 주면 재앙이 되듯이 말이죠. 우리들이 구하는 대로 응답되는 것만 기도 응답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로 응답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응답일 때도 있고, 우리들이 구하는 대로 응답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응답이 아닐 때도 있는 것입니다.
29절의 모세의 말은 요엘 2장의 예언을 떠올리며, 이는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이후 그를 믿는 모든 백성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의 본질은 20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상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하라” (20)

생각해 볼 문제

이스라엘 원망의 일차적 원인은 그들 가운데 살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성도가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문화와 가치관에 동화되지 않도록 늘 주의하고 깨어 있어야 할 이유입니다.
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기브롯핫다아와 (탐욕의 무덤)이라는 지명이 모든 걸 설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영향을 받아 탐욕하던 것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걸 입에 문채 하나님의 진노로 죽었습니다. 탐욕이 반역과 죽음의 원인이었습다. 10계명의 열번째 조항이 탐욕 금지였습니다! 늘 내 마음을 살피자, 탐욕으로 내 무덤을 만들지 말자.
33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34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민 12

12장에서는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의 직분을 시기, 질투하여 비방하다가 미리암이 나병에 걸리는 벌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 모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특별한 존재임과 그의 권위를 확증하십니다. 모세를 비방한 자가 이렇게 하나님의 벌을 면하지 못했다면, 하물며 모세와 같은 선지자, 모든 선지자의 궁극적인 인물이자 새로운 모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비방하거나 그분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는 어떻겠습니까!

민 13

13-14장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광야 1세대를 모두 죽게한 반역의 스토리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정탐하고 와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눈 앞의 현실에 압도되어 두려움 가운데 모세를 원망하고(하나님을 원망한 것과 동일) 죽이려 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합니다.
정탄꾼들의 문제는 그들이 각 지파의 지휘관들이었습니다. 지도자의 위치에서 한 그들의 말이 백성들을 원망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 바로 죽임당합니다 (14:36, 37). 동일한 것을 보았지만 그것의 해석이 여호수아와 갈렙과 달랐습니다. 팩트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믿음의 눈으로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핵심입니다. 순종이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현실을 해석하며 행동하는 것입니다. 13:30절과 14: 7-9절의 갈렙과 여호수아의 말은 여호와의 전능과 약속을 신뢰한 신앙의 발로입니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를 만든 것은 믿는 것의 대상 (내용)입니다.

민 14

이들의 원망의 내용이 가히 참담합니다. 노예생활 그냥하게 놔 두지 왜 구원해 주셨냐고 하나님께 삿대질 하는 것입니다. (14:1) 현실의 문제로 구원자체를 부정하는 자들입니다. 인간의 죄성은 항상 긍정적인 말보다 부정적인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소식은 더이상 뉴스가 되지 않습니다 (Good News is No News).
불신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입니다 (11).
14:18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진노하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모세의 기도는 과연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전형적인 중보자의 모습입니다.
모세의 사죄를 위한 중보기도 (13-19) 와 하나님의 응답 (20-25).입니다.
모세의 기도는 하나님의 성품에 의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당장에 진멸시키시지는 않으시지만 약속의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일주일이면 들어갈 가나안 땅을 40년 동안 방황하게 만드십니다.
27절: 이스라엘의 원망의 소리를 하늘의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십니다. 두려운 말씀입니다. 우리가 입술로든 마음으로든 불평하고 원망하는 소리를 하나님께서 다 들으신다는 것을 깨달을 때 너무 쉽게, 자주 불평하고 원망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며 깊은 회개를 하게 됩니다.
나에게 주신 오늘 하루, 나에게 주신 가정, 배우자와 자녀들, 나의 일터, 교회, 교회 지체들과 목회자에 대해 불평하고 원망하지 말고 늘 감사합시다. 그것이 하나님이 베푸시는 일상의 은혜이며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29절을 보면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이셉 세 이상 모든 성인들은 하나님을 원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둘을 제외하곤 모두 광야에서 죽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다음 세대를 통해서 약속을 지키실 것을 그래도 남겨 두심으로 하나님의 헤세드(인자하심, steadfast love)을 지키십니다. 60만 대군중에 여호수아 (호세아)와 갈렙 딱 두 사람만이 약속의 땅을 밟고 나머지는 모두 광야에서 죽는 이스라엘의 비극적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뒷북 순종 (39-45) (Too Late)

하나님의 심판의 형벌의 내용을 듣고 벌 안 받으려고, 혜택을 놓치지 않으려고 그제서야 순종하겠다 하지만 그건 순종이 아니죠. 모세가 가지 말라고 했는데, 또 반역하고 올라갑니다.
이런 식의 믿음과 순종은 성경에서 하나의 패턴이며 반복됩니다. 에서가 그랬고, 나중에 사울왕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양과 염소의 비유에 나오는 염소들입니다. 뒷북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민 15

15장에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여호와께 드리는 헌물, 부지중에 지은 죄를 속죄하는 제사에 대한 규정들입니다.
30-31절에 고의로 짓는 죄에 대한 형벌 규정이 나오는데… 알고 짓는 죄는 마음에서 여호와를 멸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인 줄 알면서도 아무 거리낌없이 반복해서 죄를 짓는 다면, 그 자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커녕 하나님을 멸시하는 마음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37-41 사이에는 옷단 귀에 다는 술에 대한 규정이 나오는데, 이는 생활 속에서 늘 보는 것에 표시를 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기억하게 하는 장치였습니다. 이걸 볼 때 마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정욕으로 음행을 방지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에게도 늘 눈에 띄는 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할 만한 어떤 상징이나 표시를 두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어떤 가정에 가면 집안 곳곳에 심지어는 화장실 변기 근처에도 성경 구절 스티커나 코팅을 해서 붙여 놓은 가정들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현재적 적용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들처럼 매일 하루 3장씩 성경을 읽는 것도 “옷단 귀에 술” 을 다는 행위일 것입니다.

민 16

고라, 다단, 아비람과 온 그리고 250명의 지휘관들의 반역

16장 역시 반역의 스토리입니다. 레위 자손중 고핫의 손자 고라와 르우벤지파의 다단, 아비람, 온이 당을 짓고 (250명의 리더들) (16:1) 모세와 아론의 직분과 권위를 시기하여 반역을 하였습니다.
성막에서 섬기는 고라 자신의 사역의 고귀함을 보지 못하고 남의 것이 더 크고 좋아 보였던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의 지도력에 반기를 드는 건 하나님께 대한 반역과 동일한 죄였습니다. 무서운 형벌을 받았습니다. 땅이 그들과 그들의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이는 마지막 심판의 날에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자들이 받게될 하나님의 심판의 엄중함을 미리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모세를 거역해도 이런 심판을 받는데 하물며 모세와 같은 선지자 최후의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가 받게 될 심판은 영원한 지옥불입니다.
이런 재앙을 목도하고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진짜 가망없는 인간 존재들입니다. 이방인들도 아니고 그렇게 수 많은 기적들을 경험하고도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이 보낸 사역자들을 멸시하는 걸 보면 참으로 대담하기 그지 없습니다. 전적 부패와 전적 무능을 확인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역사가 있지 않는 한 이들 스스로는 개선될 기미가 전혀 없습니다. 그들에게선 소망을 찾을 수 없습니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250명의 지휘관들의 집단 반역의 사건을 보며, 자기 직분에 감사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은 자리를 탐내며, 권위에 순종하기를 꺼려하고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죄악된 인간의 본성을 반추해 보게 됩니다.

민 17

그 유명한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사건입니다. 12지파 중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이 나고 살구 열매가 맺힘으로써 아론이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임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마른 지팡이에서 생명이 자라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생명의 주임을 알게 합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죽은 마른 시체와 같은 우리들의 영혼에 움이 돋고 순이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리게 하셨습니다 (8).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께 믿지 않은 영혼을 구원해 주시도록 계속 간구합시다.
이렇게해서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과 모세의 리더십 입증의 표로 증거궤 앞에 놓이게 됩니다.

민 18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 그들이 받을 몫에 대한 규정입니다. 레위인들은 땅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받을 땅이었습니다 (기업).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되어 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공급받는 지파였죠. 신약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이 레위인들의 삶과 같습니다. 그러니 일상에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주의 나라를 구하며 사는 것이 복있는 자의 삶이다.
마태복음 6:31–33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소금 언약에 대한 설명 (19절)

팔레스타인에서는 협정을 확정하는 것으로 소금을 사용했습니다. 이때 소금의 역할은 부패나 짠맛을 내는 역할이 아니라 견실함과 영구함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소금은 언약과 함께 나오는 것입온다.
여기서는 제사장이 받는 보수 규정이 영원한 규정임을 강조하는 것.
레 2:13 에서는 소제 드릴 때 소금을 쳐야 했는데 이걸 ‘언약의 소금’ 이라고 불렀으며, 출 30:35에서는 성소에서 사용하는 향을 만드는 재료 중의 하나로 기록함.
요약해서 구약시대엔 소금이 언약의 영원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정리하시면 되겠습니다.

민 19

암송아지의 제사와 시체를 만져 부정하게 된자에 대한 규정

하나님을 원망하고 반역함으로 부정하게 된 이스라엘을 정결하게 하여 다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하는 규정입니다.
부정한 사람을 정결하게 하는 의식은 물로 씻는 것입니다.
디도서에서 성령으로 우리가 정결하게 된 것을 “중생의 씻음” 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 이라고 바울이 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부정에서 정결로 죄 씻음받고, 반역하는 마음이 새로운 마음으로 바뀐 것 (Renewal) 에 대한 외적인 표와 인이 세례입니다 (물을 뿌리든, 물에 잠기든).
디도서 3:5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민 20

므리바에서의 이스라엘 회중의 원망, 에돔의 거절, 아론의 죽음

신광야 가데스에 물이 없어서 또 다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대듭니다. 하나님께 대한 것이죠.
이스엘의 광야 생활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역사입니다. 벌써 몇번째 입니까? 20장에서, 21장에서 원망에의 말이 참 어처구니 없습니다. 애굽에 노예로 살게 그냥 두지 왜 구원해 냈냐는 것입니다. 원망을 거듭하며 패역함의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불평들을 쏟아 놓습니다 (20:2-5; 21:5). 반역한 이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지만, 그 가운데 은혜 베풀기를 멈추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심이 한량없으신 하나님의 성품이 더 더욱 돋보입니다.
지독한 노예 근성입니다. 이미 세포 하나 하나에 그들의 DNA에 인이 박혀 버린 노예적 삶은 그들의 마음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자유와 해방과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복을 누리며 사는 것 보다 당장에 밥 굶지 않고 욕구를 채워주는 애굽을 늘 동경하며 살았습니다.
구원받은 우리의 삶이 딱 이렇습니다. 죄와 세상의 정욕과 사탄의 노예처럼 의지가 속박된 채 살았던 것에서 구원받았지만, 늘 세상에서의 삶을 동경하며 그들의 문화와 가치관과 누리던 것을 동경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면서 겪는 현실의 고난과 희생은 원하지 않고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받게 될 혜택만을 추구하는 것은 전형적인 기복 신앙입니다. 고난없는 영광 죽음없는 부활을 추구하는 가짜 기독교이며 거짓 복음입니다.
20장에서 모세는 반석에게 명령하는 대신 화가 나서 반석을 치는 안타까운 불순종으로 그토록 밟기 원했던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결정적 범죄를 하고 맙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반석에 비유합니다.
물이 없어 갈할 때 반석에서 물을 내셔서 이스라엘을 먹였던 하나님께서 반석되신 그리스도에게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 되신 성령을 주시고 우리의 영혼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성찬을 통해 떡과 잔을 통해 먹고 마심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나오는 영혼의 음료를 지금도 믿음으로 마시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의 의미때문에 매월 가지는 성찬식이 하나님이 은혜 주시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민 21

이스라엘의 원망과 불뱀,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옥에 대한 승리와 정복

21장 5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한 이유가 어처구니 없습니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이 얼마나 망령된 말입니까? 우리의 삶을 많이 돌아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은혜를 베푸셨건만 우리는 자주 현실의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아니 현실에 특별한 뭐가 없을 때 마다 그것을 ‘하찮은 것’ 으로 치부하고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는지 깊이 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반역한 이들을 불뱀으로 심판하시지만, 살 길을 주십니다. 놋으로 불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아 그것을 쳐다 보는 자마다 살 수 있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21:8-9)
제가 이 부분을 십자가의 복음과 믿음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예로 자주 사용합니다.
이 불뱀을 쳐다보면 살 수 있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쳐다보는 것이 구원얻는 믿음입니다. 뱀을 올려다 보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거저 받아들이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자신이 바로 광야에서 들린 놋뱀이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15)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는) 자는 죄 사함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민수기에도 온통 <복음>이 선포되고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진멸하지 않으시고 그들과 맺은 언약을 지키시며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33은 참으로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21-35). 지리적으로는 요단 강 동쪽 지역을 점령한 것입니다.

민 22-24

발락과 발람과 이스라엘을 축복하시는 하나님

세 장이라는 긴 분량이 발람과 관련된 이야기로 할당되어 있습니다. 설교자로서 설교하고 싶은 아주 매력적인 본문입니다. 발람의 심리 상태를 추적해 보면 우리의 신앙에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이스라엘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게 복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지에서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교리를 만나게 됩니다. 무조건적 선택이었고, 한량없는 용서이었으며, 언약에 신실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는 장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창대하며 얼마나 여호와께 복을 받은 민족인지를 발람의 예언을 통해 확증하는 것입니다.
모압 왕 발락과 발람사이에 옥신 각신하는 과정이 흥미롭고 특히 발람의 심리적 추이를 따라가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선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으로 부어 주시는 택하심과 약속에 신실하시는 인자하심때문에 이들이 복받은 백성입니다. 저주하려고 하면 할 수록 발람의 입에서는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24:2) 축복에 축복을 선포하는 장면은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24:17 , 19절에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가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
발람의 이 예언은 다윗 왕과 솔로몬 왕국에서 일차적으로 성취되나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됩니다. 그리스도의 왕위는 영원하며 흔들리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열방을 통치하는 온 세상과 만물의 주권자이십니다. 그분과 함께 왕노릇하는 우리의 신분이야 말로 얼마나 영광된 것입니까!
발람의 말과 그의 심리 상태를 추적하다보면, 그의 마음 속에는 끝까지 모압 왕이 제시하는 부와 명예와 권력에 대한 탐욕을 놓치 않았습니다 (22:19, 20, 34절을 보세요). 혹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을까를 생각하며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 알면서도 모압왕의 요구를 시행하려고 합니다.
22장 34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가로 막았음에도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 라고 하죠. 저는 이런 신앙을 “왓이프 신앙” (What if….) 이라고 명명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또 우리의 신앙 양심이 분명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 알면서도,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불순종의 길을 걸어갑니다. 구체적인 예를 많이 들 수 있겠지요.
성경을 통해 분명한 하나님의 뜻에는 순종하면 되고, 성경에서 말하지 않는 부분은 나의 신앙 양심을 따라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를 구하며 자유롭게 행하면 됩니다!
23:19절에서는 이방 점성술사를 통해 하나님을 계시해 주시네요.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고, 거짓말하지 않으시고, 후회가 없으시며,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Q & A

Q

민수기 22장 20-21절 20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21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고관들과 함께 가니, 22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발람은 자기 나귀를 탔고 그의 두 종은 그와 함께 있더니 … 이해가 않됩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따라가라고 했는데, 아침에 따라가니 하나님이 노하셨다네요

A

말씀을 주의 깊에 잘 읽으셨네요. 저도 이 부분을 놓고 고민을 많이 한 부분입니다. 가라고 허락하셨는데 막상 가니까 화를 내신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치에 맞지 않는 분처럼 느껴져서 말이죠.
아이들을 키울 때, 아이들이 뭘 해달라고 자꾸 보채면 마지 못해 하라고 합니다. 근데 아이가 부모가 하라고 허락했다고 여기고는 막상 자기 고집대로 원하는 걸 보면 화가 납니다. 이런 과정에서 부모가 느끼는 마음을 생각하면 상당한 부분이 이해가 되실 겁니다.
12절에서 여호와는 발람에게 절대 가지말고 저주하지도 말라고 그 뜻을 명확하게 했습니다. 근데 발람은 더 많은 돈과 영예를 제시하자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또 하나님께 묻겠다고 합니다. 몰라서 묻는게 아니라, 혹시 하나님이 이번에 허락해 주시지 않을까 생각한 겁니다. 자기 욕심을 포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19절에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what more the Lord will say to me".
당장이라고 가서 모압 왕 발락의 요구대로 이스라엘 백성들 저주하고 돈과 영예를 얻고 싶은데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가기가 꺼림직 한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악인을 심판할 때 그들을 더 악하게 하셔서 더 크게 심판하십니다. 이때 악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허용하시면 인간은 더 악해 집니다.
21절에 보세요. 하나님이 "그래 니 원하는 대로 가서 저주해 봐라" 라고 허락했을지라도 하나님의 본래 마음을 읽어내고는 가지 말아야 정답니다. 근데 가라고 허락하자 마자 떠납니다. 발람의 내적 동기와 마음을 추적해 가 보세요. 정말로 모압으로 가는 발람을 보고 "진노" 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걸 보면 하나님이 가라는 말씀은 정말로 가라는 말씀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보여 주셨는데도 발람은 불의의 삯 (돈받고 거짓 예언, 저주 하는 일)을 사랑한 탐욕을 거두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발람이라면 이를 무서운 장면을 목격했으면 두려워서라도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근데 발람은 34절에서 다시 하나님이 혹시 허락해 주지 않을 까를 기대하며 …또 딜을 합니다. "당시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돌아가겠나이다." 이거 새빨간 거짓말이죠.
그래서 "그래 이놈아 니가 원하는대로 가라… 대신 내가 말하라고 한 말만 해라 (절대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지마라)" 라고 35절에서 조건을 붙이고 가게 내버려 두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 도리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하나님 백성을 축복하게 합니다. 그리고 발람을 더 크게 심판하시는 근거로 삼으십니다. 발람의 후대 평가는 벧후 2:15절 참조.
람의 내면을 추적해 가다보면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도 이땅에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위해 하나님의 뜻이나 허락을 구할 때 발람의 길을 따라갈 때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기도하는 것을 들어주시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수가 있다는 것을 잘 보여 주는 본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구하는 것을 들어 주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기도 응답인 것입니다.

민 25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에 이어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싯딤에서 우상숭배를 하며 영적, 육적 간음을 저지릅니다.
여기선 발람의 악행이 언급되지 않지만 31:16절에 보면 바알브올에서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의 음행을 한게 발람의 꾀를 따라 범죄하였다고 했습니다.
신약 성경 두 군데서 발람의 악한 행위를 평가합니다.
유다서 1:11에서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벧후 2:15-16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불의의 삯이란 자기 탐욕을 채우기 위해 거짓 예언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만 멸망하는 것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짓 예언(가르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했습니다.
오늘날 발람같은 목사와 선교사들이 많은 한국 교회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목회를 생계 수단으로 돈벌이로 성공의 경력으로 삼고 목회하는 자들, 성경의 진리는 아랑곳 하지 않고 교회 성장과 사람을 많이 모아 성공하려는 자들, 교회를 사유화해서 자기 마음대로 운영하는 자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귀에 마음을 즐겁게 하고, 웃게하려고 성경의 교리를 벗어나 설교하는자, 복음을 왜곡하는자 등등…이렇게 조국 교회의 현실을 비판하지만 정작 저도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을까 조심하고 또 조심합니다. 호주에 시민권을 받아 지금은 한국 국적을 상실하고 살아가지만 제 마음의 조국은 언제나 대한민국입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의 현실을 마주할 때면 가슴이 찢어지듯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조국 땅에 풀뿌리처럼 진실된 교회와 목회자들을 통해 한국 교회를 말씀으로 개혁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민 26

1 장에 이어서 두 번째 인구 조사입니다. 1장에서는 출애굽한 이후 광야 생활의 출발지점에서 조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셔서 창조하신 하나님 백성의 수입니다. 2번째 인구 조사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이루어진 조사입니다.
1장의 첫 번째 조사와 26장의 두 번째 인구조사를 비교해 보면 몇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인구가 거의 줄지 않았습니다. 2820명 적습니다.
2) 대부분은 시므온 지파의 인구가 급격히 줄었습니다. 민수기 25장에서 미디안 여자와 우상숭배와 간음을 하며 진영에 들어온 시므온 지파만 인구가 현격히 줄었습니다. 59,300명(1:23)⇒ 20,200명 (26:14)
하나님의 심판대로 가나안 땅 정탐시 부정적 말을 했던 지도자들과 함께 원망했던 광야 1세대는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하고 모든 죽었다는 것입니다 (64-65).
하나님을 반역한 자는 반드시 심판을 받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소망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광야 2세대들 조차 나은 것 하나 없지만, 하나님은 광야 2세대들을 데리고 약속을 지키십니다. 민수기 역시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하심과 자비를 동시에 보여 주고 있습니다.

민 27

슬로보핫의 딸들에게도 땅을 배분하는 문제와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죄로 인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게 될 것(14)과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세우는 (18, 22-23) 내용입니다.
궁극적인 선지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전형적 인물인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머무는 자이며,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자이며, 정복 전쟁의 선봉에서 전투하는 대장입니다. 그의 이름 여호수아는 예수님의 이름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기름붓듯 받으시고 성령으로 충만하셔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영원한 안식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며,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우리의 대장되시며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민 28-29

28장은 상번제와 안식일, 초하루, 유월절과 칠칠절에 대한 규례입니다.
상번제는 성도가 날마다 하나님께 헌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나태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받아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영원한 안식 (하나님 나라의 최종 완성과 그로 인해 누릴 복의 상태)을 바라보며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안식을 누리는 날이며 부활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부활할 것을 소망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안식일과 성회로 모이는 날의 핵심은 제사와 안식을 위해 노동을 쉬는 것입니다.
신약 백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이 성취되었으므로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자의 삶 가운데 절기때 모든 백성이 함께 하나님께 예배하기 나왔듯이, 신약의 백성들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인 주일에 모여 1) 하나님께 예배 (형식있는)하며, 2) 노동을 쉬고 3)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7일째 안식하셨던 창조의 하나님과 죄와 사망 가운데 우리를 구속하신 구원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3) 다시 기억하며 말씀을 듣고 찬송하고 기도하며 성도의 교제를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교회는 역사 속에서 존립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겁니다. 주일에 교회로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안식을 현재적으로 주의 백성들과 함께 누리며, 영원한 안식의 날을 소망하는 것이 주일을 바르게 지키는 자세일 것입니다
아래 도표가 복잡해 보이는 규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민 30

서원에 관한 규정입니다.
규정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한 속성이 잘 드러납니다.
집안의 자녀들과 아내의 서원에 대해 아버지와 남편에게 맡겨 주신 것은 가정의 질서를 보여 줍니다.
에베소서 5장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 그대로 재연되지요.
(작년에 이 장을 읽으며 묵상한 내용) 저도 대학생때 어떤 집회에서 연변과기대 선교사가 되겠다고 자원하고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서원때문에 마음에 짐을 지니고 다닌 적이 많았기에 성경에 나오는 서원 규정을 볼 때마다 더 유의해서 보게 됩니다. 나중에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자유함을 얻게 되었지만, 서원 규정을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그 원리적인 측면은 꼭 간직해야 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경솔하게 서원하거나, 분위기나 강요해서 서원하게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께 ‘예’ 면 ‘예’, ‘아니면’ ‘아니오’ 라고 말하고, 하나님께 이것을 해 주시면 제가 이것을 하겠습니다는 식의 서원은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건 하나님과 일종의 거래를 시도하는 나쁜겁니다. 구약에서는 종종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약 백성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중국 연변 과기대 선교사는 아니지만 시드니에서 목사로 사역을 하고 있네요.

민 3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는 명령과 그것을 실행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큰 승리와 전리품 분배에 대한 내용입니다.

발람의 최후와 탐욕의 결말

이때 발람도 죽임을 당합니다.
발람은 모압 왕 발락의 요구를 들어주고 부와 명예와 권력을 한꺼번에 쥐고 싶었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완악한 마음을 누르시고 결국 그의 마음대로 저주하지 못하게 막으셨고 도리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에 복을 선언하게 하셨습니다.
발람은 본색을 드러낸 겁니다. 아마 씩씩 거리며 분노하며 갔겠죠. 그의 탐욕으로 뭉쳐진 하나님에 대한 분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몰살시켜 버릴뻔한 민족 전체의 우상숭배를 사주하게 했습니다. 16절에 분명히 모압 싯딤에서의 범죄는 ‘발람의 꾀를 따라’ 범죄하여 염병으로 죽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발람은 하나님의 백성 (아담)을 미혹하는 사탄의 수하로 행하는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오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구속사를 무너뜨리려는 획책입니다. 그는 죽임받아 마땅하고, 신약 성경에서도 그의 죄악상이 보도되는 악명 높은 유명인이 됩니다. 또한 여호와께 범죄한 자를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함을 보게됩니다.
십계명의 10번째 계명도 탐욕을 금지하고 있으며, 신약 성경에서도 탐욕은 우상 숭배라고 규정하며 탐욕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명백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6:10 (NKRV)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에베소서 5:3 (NKRV) 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골로새서 3:5 (NKRV)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요한계시록 21:8 (NKRV)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31장 에서부터 반전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반역과 우상 숭배로 인한 불평, 원망 그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등 어둡고 부정적인 면들이 31장부터 긍정적인 국면으로 변화됩니다. 이스라엘을 꾀어서 하나님 앞에 음행하게 했던 미디안을 무찌르고 많은 전리품을 획득하는 승리를 이룹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을 상대로 거둔 대승리의 의미

이스라엘이 탈취한 전리품의 규모와 양을 보면 어마 어마합니다. 그들에게 이런 승리를 할 능력이 있었거나, 승리하게 할 만큼 철저한 순종을 하여서 거둔 대승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우상 숭배와 반역과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약속에 신실한 하나님께서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려고 인자와 성실함으로 거두게 하신 승리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자비와 사랑이 여실히 드러난 승리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백성들을 꾀어 우상 숭배하게 한 그들을 진멸 (하렘) 시키십니다. 어떤 면에서 하나님은 무자비하시다라는 마음이 들어 불편할 정도로 여자들과 아이들을 남겨둔 지휘관들에게 진노하시면서까지 진멸을 하게 하셨습니다.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여자들과 아이들을 살려둔 그들이 더 휴머니스트이며 도덕적인듯 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전쟁은 성전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온갖 죄악 가운데 살며 땅이 탄식하게 한 그들을 심판하는 도구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는 최후 심판때 예수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거부한 모든 자들이 받게 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미리 보여 주는 그림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우리 대신 먼저 진멸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신 것 만큼 큰 은혜와 자비는 없습니다. 그러니 십자가만을 의지하고 자랑하며 살게 되지 않겠습니까!

민 32

32장은 요단 동쪽에서 획득한 땅과 재산때문에 이스라엘중 세 지파(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남기로 결정합니다. 그들에겐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까지 기다리기 보다, 지금 정복한 땅이라도 먼저 차지하는 것이 삶의 최고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약속에 땅에 함께 들어가지 않고 남겠다는 이들의 결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각한 범죄가 되었습니다. 이를 모세가 엄하게 경고합니다. 그의 말 속에 이스라엘 광야 1세대가 일주일 거리를 40년간 광야 생활을 하며 거기서 다 멸망하게 된게 가나안 땅 정탐자들의 보고로 이스라엘을 낙망케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쟁에서의 승리에 가장 중요한 건 군인들의 사기입니다. 이 사기를 꺽은 것이죠.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을 수행할 이스라엘 군대들이 오합지졸이 되어 지도자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이려고까지 한 반역을 하게 만든 것이 ‘사기를 꺽은 것’ 입니다. 이 일을 또 하려는 거죠. 결론적으로 세 지파가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 제일 앞장서서 정복을 마치기 까지 끝까지 함께 싸운 뒤에 돌아오겠다는 맹세 언약을 맺고서야 허락을 받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 공동체들의 지체들을 낙심하게 하는 일이 하나님께 얼마나 큰 죄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지상의 교회의 지역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대사관으로 복음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이 교회의 전투적 사명입니다.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는 자기 중심적 교회 생활의 모습은 알게 모르게 공동체의 지체들을 낙망시킬 수 있습니다. 교회가 다 함께 힘을 합해 전진해 나아가는 일에 뒤로 물러나 있거나 함께 하지 않는 것은 분명 지상의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다른 지체들을 낙심하게 할 수 있습니다.

민 33

애굽에서부터 광야 2세대들이 서 있는 모압까지의 이스라엘의 여정에 대한 기록입니다. 삼일만에 갈길을 40년동안 군대식 용어로 뺑뺑이를 돌았습니다.
민수기가 낭독된 것을 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 많은 지명들이 불려질 때 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들의 불순종의 일들이 떠 올랐을 겁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은 일부이지만 수 많은 지명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했었을 불순종의 역사가 짐작이 됩니다.
33장 50-56절 부분에서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해야 할 일을 당부하십니다. 이미 가나안 땅은 약속이 아니라 기정 사실입니다. 여호와께서 전능하신 분이시며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할 일은 그 땅 원주민을 몰아내고, 우상을 타파하고 땅을 분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구속받아 (출애굽) 세상 (가나안땅)으로 침투한 하나님 나라 백성 공동체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에서 세상을 몰아내며 사는 것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까지 우리가 싸워야 할 영적 전투입니다.

민 34

정복하게 될 가나안 땅의 경계와 각 지파에 따라 땅을 분배할 지휘관의 명단들입니다. 총 책임자는 제사장 엘르아살과 여호수아입니다. 모두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후에 대한 것입니다.

민 35

레위인에게 줄 성읍들 (도피성 포함)에 대한 말씀

도피성 규정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피하게 하기 위한 목적임. 요단 동쪽 서쪽 각각 세 성읍씩. 이스라엘 자손, 타국인, 거류하는 자의 도피성
고의로 살인한 자는 반드시 죽여야 하고 피를 보복하는 자가 죽여야 합니다. 그러나 고의가 아닌 실수로 죽인 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도피성입니다. 도피성 규정안에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로운 속성이 함께 있습니다. 살인자를 반드시 심판하되 그렇지 않은 자를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도 살인이 자행되었음을 알 게 됩니다.
도피성에 피한자는 대제사장이 죽기까지는 도피성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 전에 돌아다니면 피를 보복한 자가 죽일 수 있습니다.
33절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피 흘림을 받은 땅은 그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함을 받을 수 없느니라”
인간이 남의 생명을 죽이는 것은 끔찍한 범죄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인간이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인자를 반드시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분이시라는 것에 안심이 됩니다. 살인은 땅(피조세계)을 더럽히며 땅이 신음하고 탄식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 살인만 없다해도 얼마나 안전하고 살만한 세상이 되겠습니까? 주께서 완성하실 공의로운 하나님 나라를 대망합니다.

민 36

민수기 마지막 장인 36장은 슬로보핫의 딸들 (27장 참고)이 자기 종족에게만 시집가서 자기 종족의 땅을 보존하는 규정으로 막을 내립니다. 광야 40년 여정을 마치고 요단강 동쪽 앞 모압 평지에서 두 번째 인구 조사를 마치고 땅 분배를 합니다. 이때 슬로보핫의 딸들처럼 아들이 없는 경우 딸에게 땅 상속권을 넘겨 주기로 했습니다. 27장에서 36장까지는 “슬로보핫의 딸들” 에 대한 내용으로 열고 닫는 구조이네요.
이렇게 한 이유는 므낫세 지파 자손들의 기업을 보존하기 위함입니다. 땅에 대한 공평한 분배입니다. 일종의 토지의 공개념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살게 될 백성들은 영원히 자기의 땅을 잃어버리지 않는 나라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부동산 불로 소득으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을 가질 일도 없을 것이고 그로 인한 빈부 격차가 커지며 사회적 계층화가 될 일도 없으며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재림 후 완성될 천국에서도 부활한 육체를 입고 땅을 딛고 살 것입니다. 천사처럼 날개달고 날아다니는 세상이 아닙니다.^^
민수기의 히브리어 원제는 “광야에서”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에서 약속의 땅까지의 광야의 여정이 “In Between” 이듯,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세상의 죄와 사망가운데서 출애굽한 성도의 삶 역시 천성을 향해 가는 광야의 삶이고 순례자의 길입니다.
그 길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를 거울 삼아 불순종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 죄악가운데 빠져 있을 때마다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무에 달리 불뱀을 보고 살았던 것처럼, 나무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죄 사함 받고 영혼의 온전한 치유를 경험하며 살아가야 겠습니다.

작년에 그려 보았던 민수기의 광야 여정과 이스라엘과 우리와의 관계 도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