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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그리스도 중심 레위기 읽기 개론 영상

아래 영상은 레위기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귀중한 안내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신약의 백성들이 구약의 규례와 율법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해야 하는지 원리를 가르쳐 줍니다.

레 1

1~6:17: 다섯 가지 주요 제사 규정

1장: 번제

1절은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로 시작합니다. 히브리어 성경은 이것을 따라 “바이크라” (여호와께서 부르시니) 로 시작합니다. 70인역 성경이 Leviticus 라고 제목을 달았기에 이를 따라 지금 성경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레위기는 성막이 완성된 후 한달 동안 주어진 율법에 대한 말씀입니다.
1장에 번제에 대한 규정입니다. 각 규정 끝에는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가 반복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드린 것을 “향기로운 제물” (엡 5:2) 라고 했고, 그리스도인의 너그러운 물질의 헌신역시 “향기로운 제물” 이라고 바울이 말했습니다 (빌 4:18).

레 2

소제의 예물을 드리는 규정

소제에 대한 규정입니다. 소제에는 화덕에 구운것 철판에 구운것 냄비의 것으로 드리는 것이 있습니다.
13절에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고 규정하며 ‘언약의 소금’이라고 말하는데 부패를 막는 소금의 기능에 따라 하나님과의 언약의 영원함을 가리칩니다.

5대 제사

저는 <번, 소, 화, 속, 건> 이라고 입으로 외웁니다.
제, 제, 제, 죄제, 속제를 줄여서.

레 3

화목제의 예물을 드리는 규례

제물로 드리는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 드리는 자와 예물을 일치시키는 행위
잡은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리는 행위 ⇒ 정결하게 함, 속죄, 언약 체결
예수의 십자가의 피는 대신 죽은 자의 죄를 속죄하고 깨끗하게 씻음 (정결)과 언약을 체결한 것
짐승의 피가 아니라 대신 예수의 피로 새 언약을 맺음⇒ 새 언약의 중보자
7장에 화목제물 드리는 규례가 다시 나오는데 ‘화목제물을 먹는 것’ 은 인간이 가장 거룩한 분과 친교를 나눔을 상징합니다.

레 4:1-5:13

속죄제 규례

제사장, 이스라엘 온 회중, 족장, 평민이 여호와의 계명을 범하였을 때 죄를 사함받는 속죄제 규정입니다. 속죄제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
제사장이 죄를 범하였을 때는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희생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인간 제사장의 연약함을 보며 자신의 죄를 위해 속죄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으신 완전한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죄를 범한 자들을 속죄제사를 통해 죄 사함의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게 합니다.
속죄제를 위해 수송아지나 염소나 양을 드릴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는 비둘기나 곡식으로 드릴 수 있게 한것은 하나님께서 각 가정의 형평을 돌보시는 분이심을 알게 합니다.

레 5:14- 6:7

속건제를 드리는 규례

속건제는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에 대한 보상의 의미를 가진 제사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것은 하나님의 성품이 율법에 드러나 있기에 하나님의 성품과 명예에 손상을 가한 것입니다.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값을 치루어야 용서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께 드리는 ‘속건제’ 의 성격을 가지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죗 값을 대신 치루시고 하나님께 가한 손해를 보상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10절에 그 의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리스도께서 그의 영혼을 우리를 위한 ‘속건제물’ 로 드리셨기에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 받았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찬양의 이유입니다.할렐루야!

레 6:8-7:38

5가지 제사 규례의 추가적 규정

번제 (6:8-13), 소제 (6:14-23), 속죄제 (6:24-30), 속건제 (7:1-10), 화목제물 (7:11-34) 에 대한 규례가 다시 반복됩니다.

제사장의 위임과 임무에 대해 (8:1-10:20)

레 8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제사장 위임식입니다. 그들의 속죄와 정결을 위한 것입니다.7일 동안 위임식을 행하고 이때는 회막 밖에 나아가지 못합니다.

레 9

위임식 기간이 끝난 후 8일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 직무를 시작합니다. 이것을 위해 먼저 그들의 죄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고 백성들의 죄를 위해 제사를 드립니다. 인간 제사장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때문입니다.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자신의 죄를 위해 속죄제를 드릴 필요가 없으신 무죄하신 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으실 수 있는 유일한 중보자가 되십니다.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백성들 가운데 나타나고 백성들은 하나님의 옆광 앙페서 두려워하고 떱니다. 강복 선언의 기원이 여기입니다. 민수기 6:24절에 나타나고 고후 13:13절의 복을 선언하는 것의 기원이기도 합니다.

레 10

다른 불을 드리다 죽임당한 나답과 아비후 (1-7)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한 다른 불을 분향했다가 불 사름을 당한 나답과 아비후의 범죄 사건이 1-7절에 나옵니다. 하루 아침에 아들 둘을 잃어버린 아론의 심정이 조금은 전달됩니다. 다른 불을 드린 행위가 무엇이었길래 즉시 죽임을 당했을까요? 9절의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보면, 그들이 술을 마시고 제사를 드렸을 것이라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를 경홀히 만홀이 여긴 것입니다. 제가 술을 먹고 예배를 인도하거나 설교하는 것과 비슷한 행위일 것입니다. 물론 모세때처럼 당장 죽임을 당하진 않겠지요.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으로서 우리 모두는 실제로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제사장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떤 마음과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의식을 늘 지니고 살아가게 하는 말씀입니다.

제사장이 회막에 들어갈 때의 규례와 거룩한 곳에서 제물을 먹지 않는 엘르아살과 이다말 (8-20)

남은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도 죽을 뻔한 위기에 처했습니다. 거룩한 곳에서 제물을 먹지 않고 불살랐기 때문입니다 (16, 17). 거룩한 제물을 먹는 규정을 어긴 것입니다. 하지만 동기를 듣고 모세가 좋게 여깁니다. 여호와를 의식한 행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중요한 점은 모세가 좋게 여김으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인정하셨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모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의 직분을 확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백성의 정결법 (11:1-15:33)

레 11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 구분과 음식 규정

모든 짐승 중 먹을 만한 생물에 대한 규정을 상세히 말해 줍니다. 육지 짐승 중, 수중 생물 중 조류중, 곤충, 땅에 기는 길짐승 중에서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분하고 정한 것만을 먹으라고 합니다.
구분의 기준은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그렇게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음식 규정을 주신 이유는 거룩함입니다. 구별됨이 거룩의 중요한 개념입니다. 생물 자체가 거룩하거나 부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규정하셨기에 거룩하고 부정한 것입니다. 정한 것만을 먹음으로 거룩하게 되고 부정한 것을 먹음으로 부정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음식 규정은 단지 그림자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대학부때 지체들과 제가 한 때 좋아했던 “선지국밥”(피를 응고한 선지가 들어 있는 국밥) 을 먹는게 죄냐 아니냐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 재미있는 기억이 있습니다.^^

레 12

아이를 낳은 여인에 대한 부정과 정결 규례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차별하시는게 아닌가 하고 시험에 빠질 수 있는 장입니다 ^^. 아이를 낳은 여인에 대한 규례인데 남자아이를 낳으면 7일동안 여자아이를 낳으면 2주간 부정한 상태에 있습니다. 부정한 기간이 마치면 정경을 위한 제사를 드려야 정결하게 됩니다.

악성 피부병과 정결에 대한 규례 (13:1-14:57)

레 13

제사장이 나병 여부를 진찰하고 판정하여 조치를 내립니다. 나병환자들이 예수님께 치유된 것을 “깨끗함을 받았다” 라는 표현을 씁니다. 눅 17장에서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사람 나병 환자를 고치신 후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고 선언하십니다. 구약의 나병은 죄의 부정함을 상징합니다. 정하게 되었다는 것은 죄에서 깨끗하게 된 것을 가리키죠. 예수님께서 제사장으로서 영적인 나병에 걸린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죄인을 죄에서 정하게 하셔서 치유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냅니다. 우리 모두 영적인 나병 환자들이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라 죄에서 ‘정하다’ 고 구원받은 자입니다.
13절을 보면, 나병의 정함과 부정함이 그 사람이 무슨 큰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병에 걸린 상태를 하나님께서 부정하다 규정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을 가르치시기 위함이죠. 나병에 걸려도 온 몸에 퍼졌으면 정하게 되는 것이 그렇습니다. 성경은 섞인 것을 부정하다, 하나로 된 것을 정하다고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부패와 죄의 확산을 상징하는 누룩도 마찬가지이죠. 누룩없는 삶, 죄와 섞이지 않는 삶이 거룩한 삶입니다. 그렇게 살려고 몸부림치지만 안됩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전신을 내면까지도 그분의 피로 정하게 하셨기에 우리는 존재론적으로 ‘누룩 없는 자들’ 입니다. 그러니 누룩없는 정결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13장의 내용을 요약하면, 피부병을 진찰하는 제사장 (1-8), 나병환자의 ‘정, ‘부’ 의 판정 (9-17), 화상입은 피부에 대한 판정 (24-28), 머리, 수염, 환부의 나병 여부 판정 (29-37), 피부의 색점의 나병 판정 (38-44), 나병 환자에 대한 조치 (45-46) 일종의 자가 격리같네요, 그리고 의복에 나병 색점 발생시 정, 부 결정하는 규례 (47-59)의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레 14

나병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의 규례 (1-32)와 어떤 집에 나병 색점 발생시 정과 부정의 규례 (33-53) 에 대한 내용입니다. 54-57절에서 전체 내용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의 역할은 질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판별하는 것입니다. 규정에 따라 나병인지 아닌지 판별하여 거룩과 부정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나병으로 판정된 환자는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격리 되어야 하고, 나병 색점이 생긴 의복이나 가옥은 빨거나 태우거나, 긁어 내거나 빼내고 폐쇄해야 했습니다.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의 규례 역시 복잡한 절차와 시간이 걸린 후에야 정결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거룩함을 얼마나 중하게 여기시는지 알 수 있으며, 하나님 백성 공동체를 거룩하게 보존하려는 하나님의 열심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 내의 거룩성을 보존하고 지켜내는 것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누가복음 설교시에 자세히 다루지 않았지만 5장 12-16절은 오늘 본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병 들린 자가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간구한 것은 자신은 의식하지 못했을지라도, 대제사장되신 예수께 나아가서 거룩과 부정함을 진찰받고 판정받으러 나온 것입니이다.
나병환자와 접촉하면 부정하게 되는 규례를 넘어 예수께서는 그의 몸에 손을 대시며 (아마 환부를 어루 만지셨을 것입니다) 그를 정하다 판결하기 위해 그의 나병을 깨끗이 치유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율법의 규례를 지키도록 명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영적으로 나병환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자들이었죠.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신의 피로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의 병든 심령을 고치셔서 거룩한 백성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부정하다 판결하지 않으시고, 부정함의 근원적 원인인 영혼의 나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 한없는 감사와 사랑을 드리지 않을 수 없게하는 말씀입니다.

레 15

15장은 유출병이 있거나 피의 유출이 있는 여인과 설정한 자의 부정함과 깨끗해 진 후의 정결에 대한 규례에 대한 내용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누가복음 8장 설교부분 (눅 8:43-48) 에서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고 즉시 치유를 받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부정한 여인과 접촉한 예수님이 부정해 지신 것이 아니라, 역시 부정한 여인이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옷 자락을 만짐으로 정결하게 되었습니다. 하물며 부정한 자였던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옷 가가 아니라 예수 안에 거하는 자가 되었으므로 얼마나 정결한 자들이겠습니까? 날마다 죄를 지음으로 부정하게 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날마다 정결한 자로 여김받는 복된 자들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한없는 은혜입니다.

레 16

대속죄일(히브리어: 욤키푸르)에 대한 규례입니다. 속죄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년중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일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자기 죄와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는 날입니다.
대제사장이 예표하는 인물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어 자신의 몸을 희생제물을 바쳐 단번에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완성하고 하늘 지성소로 들어가셨습니다.
아사셀 염소는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죄를 아사셀 염소에게 전가시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땅인 광야로 보냅니다. 거기서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들의 죄를 전가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신 아사셀 염소였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가져가고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켜 주셨습니다 (증거궤 위 속죄소, 시은좌). 또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가 아사셀 염소가 광야로 보내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죄가 사라졌습니다.
죄사함의 결과가 평강 (샬롬) 이며, 안식입니다. 그래서 속죄일 다음의 안식일은 안식일 중의 안식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날인 주일은 안식일 중의 안식일입니다. 우리는 매주일 예배에서 죄사함의 은혜를 누리는 안식일중의 안식일을 매주 경험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대속죄일을 히브리어로 “욤 키푸르” 입니다. “키페르”는 “덮는다” 는 뜻의 단어입니다. 언약궤위의 속죄소 위에 짐승의 피가 뿌려짐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어긴 죄를 덮어 줍니다. 그래서 자비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인이지만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위해 뿌려졌기에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서 덮어 주시고 의롭다 여기시는 것입니다. 신앙이 깊어진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속죄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죄를 위해 영단번에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만을 오직 사랑하는 하루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레 17

소, 어린 양이나 염소를 잡으면 반드시 성막 앞에서 여호와께 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게 된다는 규정입니다 (1-9). 이어서 피를 먹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의 내용입니다 (10-16).
11절에서 피를 먹지 말아야 할 이유를 제시하시는데,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다. 피를 제단에 뿌려 속죄하게 하신 이유가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피 제사의 원리” 입니다. 히 9:11-22, 10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피흘려 죽으셔야 하셨던 이유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죄를 속하신 것입니다.

레 18:1~ 22:33 거룩함(Holiness) 으로의 부르심

레 18

주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 땅의 풍속과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때 그곳 사람들의 풍속이나 규례를 행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와 명령을 주십니다. 오직 주께서 주시는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것이 살길임을 명령하십니다 (2-5).
금지된 성 관계에 대한 많은 경우를 나열하십니다. 대부분은 소위 근친 상간에 대한 금지 명령이며, 성적 순결에 대한 명령입니다.
22절은 동성애 금지, 23절은 수간 (짐승과 성관계 하는 것)을 금지시킵니다.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일 뿐만 아니라 땅이 그 악 때문에 토해낼 정도의 악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들의 이런 가증한 죄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진멸하신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한 이유도 동일합니다.
신약의 저자들도 동생애를 죄로 규정하고 금하였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로마서 1:27, 고린도전서 6:9, 디모데전서 1:9-10절에도 분명히 나와있습니다.
이런 금지 조항들을 주셨다는 것은 그들이 나왔던 애굽에도 들어갈 가나안 땅에도 이런 가증스러운 악이 팽배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이방인들과 구별된 거룩한 백성 만들기 위함이라는 걸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의 풍속을 따르거나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한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기독교인들조차 동성애를 지지하고, 불륜을 로맨스로 미화하고 성적 순결에 있어 세상처럼 된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런 악들이 단순히 논쟁의 문제나 시대의 조류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가증스러운 죄이며 땅이 토해내는 악행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종말에 시행될지 아니면 그전일지 모르지만 반드시 있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한 판단 기준이 오직 성경에서 세상의 풍속과 시류가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짓는 죄가 하나님께 짓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 진노하신다는 것을 너무 가볍게 안이하게 여기며 살고 있지 않은지 깊이 돌아보게 하는 말씀들입니다.
골로새서 3:5–6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레 19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서 거룩을 요구하는 장입니다. 거룩해야 할 이유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 (2절) 이시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이 담고 있는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에 대해서와 이웃에 대하여 살아가야 할 삶의 원리와 지침입니다.
부모 공경, 우상 숭배 금지, 가난한 자와 사회적 약자들의 배려와 돌봄, 정직, 공정 거래, 공의, 땅의 보존, 타인의 성의 보호, 난민에 대한 태도 (33-34), 정직한 상거래 (36) 등에 대한 명령과 규례들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세상 속에서 지키며 사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14절) 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란 주일 예배나 말씀 읽기와 기도나 교회 봉사와 섬김처럼 종교적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영역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웃과 사회에서의 삶에서도 경외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매 규정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를 덧붙이면서 이 명령을 지켜야 할 근거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과 언약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임을 강조하십니다. 36절에선 결론적으로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라고 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이 모든 규례를 지켜야 함을 강조합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세상 가운데서 구속 받은 새 언약의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에 우리도 거룩한 백성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하겠습니다.

레 20

약속의 땅과 하나님 나라 백성 공동체에서 제거되는 ‘사형’ 에 해당하는 죄에 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나라와 거룩한 백성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철저하셨는지를 보여 줍니다.
반드시 죽는 죄에는 ‘인신제사(자녀를 몰렉이라는 이방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것)’ 죄, 그 행위를 하는 자에 대해 모른척 하는 죄, 신접한 자, 죽은 영혼을 불러오는 마술사(박수 무당), 부모를 저주하는 자, 간음하는 모든 자 (특히 근친 상간하는 자), 수간하는 자 (짐승과 성관계 하는 자)
주목할 것은 이 모든 죄악들을 이방 나라들이 행하는 것이기에 이스라엘은 그들과 구별된 거룩한 백성이기에 금하시는 것입니다.
23절: 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 그들이 이 모든 일을 행하므로 내가 그들을 가증히 여기노라”
24b: “나는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세상 사람들이 죄라고 여기지 않으면서 행하는 죄악들을 우리는 본받거나 동일한 가치관으로 주장하거나 짓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분명히 죄라고 규정한 동성애, 간음, 혼외 정사, 낙태, 안락사를 세태로 받아들이며 교회에서도 추세를 따라 교회 헌법을 바꾸고 성경 해석을 왜곡하고 신앙 고백을 바꾸는 것은 성경과 하나님의 권위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민중에서 구속하여 자기 소유 삼으시고 구별된 거룩한 백성 삼으셨습니다, 세상 속에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거룩한 무리들입니다. 나는 세상 속에 살면서 진정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자꾸 자꾸 돌아보며 살아가야 할 때라는 생각입니다.

레 21

사장의 거룩과 관련된 명령과 규례들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자이기에 거룩한 자이며 거룩한 삶을 지켜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을 거룩히 여겨야 하구요.
제사장의 자격으로 결혼에 있어서나 신체에 있어 흠이 없는 상태 (온전함)를 요구한 것은 그렇지 못한 경우를 낮추심이 아니라 거룩한 제사장의 구별됨을 위해서입니다.

레 22

성물을 먹는 것에 대한 규례

제사장들에게 주는 성물을 대하는 규정. 부정한 상태에서 성물을 먹거나 가까이 하면 죽을 것임 (1-8).
일반일들이 성물을 먹는 것에 대한 규례 (1-16)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에 대한 규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시려면 결점이나 흠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기준에 정확하게 맞아야 합니다 (23).
우리에게 있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세와 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헌금을 할 때, 나의 시간과 마음과 삶을 드릴 때 우리는 얼마나 결점 투성이와 흠 많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자원하는 마음,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지 못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고, 남는 것을 대충 드리고 있진 않는지 돌아봅니다.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산 제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주께 드립시다.
레위기 22:32–33
32 너희는 내 성호를 속되게 하지 말라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함을 받을 것이니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요
33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자니 나는 여호와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도 동일합니다.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거룩한 백성삼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세상 속에서 거룩한 삶을 살 때 세상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게 되고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삶 역시 복음 증거의 삶입니다.

레 23:1~25:55 거룩한 시간들 (절기들) (Holy Times)

레 23

23장에는 하나님이 제정하신 절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삶의 빛을 풍성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레위기의 맛입니다. 누가 레위기를 지루하다 했단 말입니까? 누가 레위기로 설교를 하면 교인이 준다했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구속사와 리딩 지저스의 관점으로 레위기를 읽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의 풍성함에 흠뻑 빠지게 됩니다. 이 맛을 함께 누리시는 자리로 초청합니다.
여호와께서 제정하신 유대인의 3대 절기에 대한 내용입니다.
1.
유월절 (무교절):
a.
유월절: 이스라엘의 해방 기념
b.
무교절: 이스라엘이 황급히 애굽을 빠져 나온 것을 기념
2.
초막절= 장막절
a.
한 해의 추수를 마친뒤 지키는 일종의 추수 감사제 이며, 출애굽 후 광야에서 장막 생활을 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b.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막에서 지내며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나그네처럼 살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 (도성)를 바라보면서 나그네처럼 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약의 성도들 역시 완성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이땅에서 장막(텐트)에 거하듯 나그네와 행인처럼 살아야 합니다. 이땅에 것에 집착하고 이땅에 무엇을 쌓고 남기려 하며 사는 것은 성도의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1.
칠칠절 (= 맥추절= 오순절)
a.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b.
초실절: 유월절 후 첫 안식일 다음날에 약속의 땅에서 생산된 첫 곡물을 바치는 절기이므로, 이건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새 생명 가운데 부활의 첫 열매로 하나님께 드려지심을 상징한다.
c.
칠칠절은 초실절에서 7주(49일)을 세고 50일째가 되는 날에 지킨 절기인데, 이날은 성령이 강림하신 오순절과 같은 날입니다. 이날은 보리 추수를 마치고 새로운 밀 추수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i.
칠칠절인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의 사역이 완성된 후 (초실절로서) 새로운 추수가 시작되는 것처럼 성령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추수가 시작됨을 (신약의 교회의 탄생) 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ii.
성령 강림 이후 베드로의 한 번의 설교로 3천명이상이 신약의 교회의 성도가 되었고 이후 놀라운 속도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주님의 교회로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전 세계의 교회의 복음 사역을 통해 주의 백성들이 구름떼처럼 추수되고 있습니다. 이 추수는 종말에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추수가 막을 내리고 완성될 것입니다.
2.
일곱째 달에 집중된 절기들 (23-44)
나팔절 (1일), 속죄일 (10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 예표, 초막절 (15일)
3.
성회
a.
거룩한 모임 (지정된 때, 여호와의 절기)
i.
안식일로 지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ii.
구약의 안식일은 신약에선 주님이 부활하신 주일에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기념하여 지키는 날로 승화되고 발전되어 지키고 있습니다.
iii.
크리스챤의 안식일인 주일은
노동을 하지 않고 쉬면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구원 사역을 기억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참된 안식과 완성될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일에 바쁘게 노동을 하거나 오락을 즐기는 동안에는 안식의 참된 의미를 묵상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레 24

항상 켜 두어야 할 등잔불과 여호와 앞에 진설할 떡에 대한 규정 (1-9)에 대해서 입니다.
10-23절까지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자가 받을 형벌은 돌로 쳐 죽이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소위 “동해보복법” 에 대한 규정이 나오는데,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으로 잘 알려진 법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것은 가장 거룩하시고 존귀한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에 손상을 가한 것이므로 사형에 처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동해 보복법은 당시 사회에서는 공의로우며 자비로운 처사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한 것 보다 더 큰 보복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산상 수훈에서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축복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거나 함부로 여기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 알게 합니다. 우리는 무심코, 무의식적으로 “오 마이 갓” 이라든지 “지저스 크라이스” 와 같은 추임새나, 감탄사를 결코 남발해선 안 됩니다. 십계명의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는 계명을 어기는 범죄입니다. 주기도문의 첫째 간청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받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얼마나 중하게 여기는지를 잘 알고 하나님 이름에 대해 경외감과 존경과 최고의 경배의 마음을 가지며 살기를 원합니다.

레 25

안식년과 희년에 대한 규정

사람도, 땅도, 가축도, 식물도 쉬어야 합니다. 일을 한 후에 쉬지 않는 것은 창조 질서에 반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주일을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고 쉬는 것은 재충전의 의미와 함께 내가 일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도록 자리를 내어드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 고백입니다. (20, 21)
희년
쉼, 해방, 회복,속량, 자유라는 키워드로 표현할 수 있을겁니다. 희년은 "Fresh Start"이며, "리셋" 의 해입니다.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 50년째 누리는 자유와 해방의 해입니다.
희년이란? 초실절에서 일곱번의 안식일이 지난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이 다시 하나님 나라인 에덴으로의 회복이 일어난 것을 표상하는 구약의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가리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경제적 정의, 사회적 정의, 자연의 회복을 이루어가게 하시는 하나님 백성들의 삶입니다.
땅의 회복(지력의 회복): 자기 땅으로 돌아감, 신분의 회복(종-> 자유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 명령을 지키는 한 그들이 들어가 살게될 가나안 땅(약속의 땅)에서의 삶은 천국의 삶이었을 겁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희년(Jubille)을 영적으로 누리며 영원한 안식의 날(희년의 날)이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하나님께서 죄와 사망 가운데 사탄의 나라에서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신 주의 백성들입니다.

레 26

레위기 전체 내용의 요약과 결론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서 살때 하나님이 주신 모든 율법을 마음을 다해 지키고 순종하면 복을 주실 것이고,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불순종하면 받게 될 저주(형벌)을 에 대한 말씀입니다.
순종시 받을 복은 하나님 나라의 땅에서의 번영과 안녕과 거주이고 불순종시 받을 저주 혹은 형벌은 칼, 기근, 전염병과 하나님 나라에서 추방당해 포로가 될 것 (34) 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참회하고 (41)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그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셔서 (44)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신명기적 사관> 이라고 합니다. 이후 이스라엘 역사는 정확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가 70년만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해서 성전을 재건합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이미 들어간 이후에 그들의 반역과 불순종의 역사를 확정된 것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언제나 현재적으로 관계하시지만 하나님의 영원하신 예지, 예정, 선택과 작정 가운데 모든 것을 섭리해 가시는 분이심을 다시 한번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약속의 성취는 궁극적인 이스라엘의 왕과 이스라엘의 백성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을 통해 성취됩니다.
레위기 전체는 복음의 전형을 담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모형을 보여주며 가리키고 있습니다. 레위기를 읽고 해석하면서 우리는 이미 우리가 알고 믿고 있는 복음에 대해 더 세밀하고 풍성하게 배우며 믿음의 성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한 백성, 거룩한 삶을 살아가며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자유롭게 나아가는 주의 백성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큰 그림

민수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큰 그림을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 (에덴)를 회복하시기 위해 노아 홍수 대심판 이후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부르십니다. 그와 언약을 맺으시면서 세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창 12, 15, 17). 많은 자손, 땅, 복 (하나님의 다스림). 그 약속중에 가장 먼저 “자손” 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십니다. 독자 이삭을 통해 그리고 야곱과 열두 아들을 통해 12 족장을 이루시고 그들이 애굽으로 들어갔다가 430년간 애굽이 엄마의 자궁이 되어 이스라엘이라는 큰 민족을 출생시키십니다. 하나님 백성 만들기 프로젝트를 완수하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할 처소로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 보내는 여정에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에는 그분의 성품이 드러나 있기 때문에 율법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복을 누리게 됩니다. 레위기는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복을 주시기 위한 약속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의 처소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시기 전 하나님께서는 성막과 제사 제도를 통해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할 처소를 허락하십니다. 이동식 에덴 동산입니다! 이제 남은 건 하나님의 백성 (국민)들이 하나님의 처소인 약속의 땅 (영토) 에 들어가는 것만 남았습니다. 그곳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다스림 (율법) 가운데 살면 복을 누리며 영원토록 살게 될 것입니다 (주권). 물론 그들의 불순종으로 이 영원은 깨어지고 다시 그들은 하나님 나라인 가나안에서 쫓겨 나죠.
시간적으로 레위기는 한달 동안입니다. 출애굽기 40장 17절에서 출애굽한 지 2년 1개월 하루 되었다고 했고 민수기 시작이 ㅈ년 2개월 하루 (민 1:1) 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레위기는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대로 회막을 완공한 후 시내산 아래에서 한달간 머물면서 받은 율법입니다. 이 율법에는 제사법 (제의), 시민법, 도덕법 (십계명)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민수기 10장 10절까지 여전히 시내산 아래에 있습니다. 민 10:11절에서 드리더 둘째해 둘째 달 스무날에 (출애굽한지 2년 2개월 20일 후) 성막위의 구름이 움직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