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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월 1일~16일)

그리스도 중심 읽기 창세기 1 영상입니다. 10분짜리 영상이지만 창세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읽어가야 할지에 대한 좋은 안내의 역할을 해 줄겁니다.

창세기 그리스도 중심 읽기- 창세기 1

창 1

우주와 세계의 시작(창세기 1장) 과 인류의 시작(창 2장)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이처럼 명료하게 제시되어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인 것은 그분이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런면에서 내가 누구인가? 우리는 또 누구인가? 에 대한 답을 주고 오늘의 삶의 의미를 주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1장 26-27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는 것에서 감동이 있었습니다. 26절의 "우리의 형상" 이란 하나님이 복수입니다. 여기서도 창 1:1절에서 처럼 삼위 일체에 대한 개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타락전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존재였나에 다시금 놀라게 됩니다. 비록 타락으로 깨어진 형상이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담지하게 남겨두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창 2

창 3

창세기 3장은 인간의 타락을 보여 줍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왜 이런 세상인지를 설명해 주죠.
3장 15절은 최초의 수신자들은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바라보진 못했지만, 여자의 후손 (단수- 그리스도)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Crush) 할 날을 고대했을 것입니다. 이 선언이 뱀에게는 저주였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에겐 복음입니다.
창세기 3장 이후 요한계시록까지의 모든 이야기는 여자의 후손이 어떻게 뱀의 (사탄) 머리를 깨부쉬는지의 구속의 드라마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사탄의 모든 권세를 깨뜨리셨고 승리하셨으며, 재림시에 그리스도께서 심판주로 오셔서 사탄을 불과 유황못에 던져넣고 (20:10), 사망과 음부까지도 불못(the lake of fire)에 던져 버릴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뱀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는 시대를 살고 있기에 고난과 환난을 당하지만, 이미 승리한 싸움을 싸우고 있기에 강하고 담대하며 계속해서 전투적 교회의 성도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창 4

1.
인류 최초의 살인 현장과 살인자의 후예에 대한 기록이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시기심 때문이었다. 그는 사탄에게 귀 기울여 타락한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 지를 여실히 보여준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아벨을 미워했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향해 분노한 것이다.
2.
지금 세상이 그렇지 않은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세상이지 않은가! 죽어 마땅한데 그런 가인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신다. 그를 유리 방황하는 악한 세상의 사람들로부터 보호를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반역하고 죄악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가 성경 전체에 뒤덮여 있고, 이 하나님의 은혜가 죄인인 우리를 용서하셔서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신 구속으로 이끄신 것이다.
3.
예수님께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한 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정확한 지적이시다. 법과 우리 안에 작동하는 일말의 양심의 기능이 마비된다면 인간은 시기하고 미워하는 자들을 죽이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남을 시기하거나 미워하지 않도록 마음을 얼마나 주의해서 지켜야 하는지 경종을 울리는 말씀이다.

창 5

아담에서 시작해서 노아와 노아의 세 아들까지의 긴 족보입니다.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기록자의 의도가 담긴 문학적 표현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족보에서 주목할 것은 긴 수명, 그러나 모두 살고 죽었다로 끝납니다. 모든 인간은 죽는 다는 것을 강조하는 겁니다. 아담의 반역의 결과죠. 히브리서 9장 27절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로 깔끔하게 정리를 해 줍니다.
그러나 한 사람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지 않고 하나님이 데려가십니다. 인간이 죽지 않고 영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샘플로 보여주신 은혜의 표식이었습니다.
노아의 이름의 뜻이 히브리어 “안식, 쉼”과 비슷합니다 (29) 그가 저주받은 땅에서의 일과 수고에서 안식을 줄 자로 소개됩니다. 노아는 그리스도의 모형적 인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시며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류에게 안식을 가져 온 분이시며 안식으로 이끄시는 여호수아와 같은 분이십니다.

창 6

3절의 120년은 인간의 평균 수명이 120년이 될 것이라는 해석보다는 120년 후에 노아 홍수의 심판까지 지상에 사람들이 살 것이라는 해석이 더 문맥에 적합하다. 왜냐하면 노아 홍수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120년을 넘게 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악함으로 인해 사람 지으심을 후회하시고 한탄하신다 (1-8). 성경의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말해 주는 부분이다. 11-12절에서는 전적인 부패 (corrupt) 를 말함.
그 가운데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다 (8). 그에게 은혜를 입을만한 조건, 선행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시고 은혜를 주신 것이다.
6장 9절 이후는 하나님이 노아에게 홍수를 준비해서 방주를 짓는 사양을 말씀해 주시고,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한다.
온 세상의 악이 관영한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에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길이 살 길이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 참 악하다. 하나님을 대적하며 성경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에게 소돔에 사는 의인 롯처럼 고통이다.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며 지금을 사는 것이 곧 방주를 짓는 삶이다.

창 7

하나님께서 악한 인간으로 인해 홍수로 온 세상을 심판하셨다. 노아와 그의 가족 본인 포함 8명을 남겨 놓으셨다.
노아는 악한 세대에서 하나님 앞에 의롭게 여김 받았다.
심판을 통해 세상을 정화시키시고 (죄악을 제거)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노아를 통해 다시 새롭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류를 만들어 가신다.
여기서도 구원의 패턴이 발견된다. 한 사람 의인 노아를 통해 그의 온 가족이 구원받는다. 한 사람 의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를 믿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 노아의 가족이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노아로 인해 구원받았다. 그리스도는 마지막 노아이다.
노아의 홍수 심판은 최후 심판을 미리 보여 준다. 그때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은 모두 구원을 받고 새창조의 세상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 성경에서 심판하시고 구원하시는 패턴을 계속 반복된다.

창 8

1-19: 홍수가 그치고 하나님이 땅을 말리신 후 노아와 그의 가족과 방주에 탓던 짐승들이 방주에서 나온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후 처음 한 것이 정결한 짐승으로 제사를 드렸고, 하나님께서 흠향하셨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 주시고 그와 (인류의 대표로) 언약을 맺는다 (9;1-17). 노아는 제사장이었고, 그 세대에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선포하는 선지자였고 홍수 이후 땅을 다스리는 왕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모형적 인물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월절 어린 양이 되어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의 희생 제사를 드리고 새 언약의 중보자로 예수를 믿는 새로운 인류의 머리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가 되신 분이시다.

창 9

노아에게 창세기 1:28절과 동일한 명령을 주신다.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8.17; 9.1, 7)”. Fresh Restart 이다.
구름 속의 무지개를 언약의 표징으로 주신다. 무지개를 볼 때 마다 노아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시며 영원히 지키시는 것이다. 세례와 성찬 역시 새언약의 표징 (표와 인) 이다. 성례에 참여할 때 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는 심판이 없으며 영원한 생명을 누림을 깨닫고 확신을 갖는 것이다.
새로운 인류의 대표인 노아는 다시 죄를 짓고 그의 죄로 인해 그의 아들 가나안이 죄를 범하고 저주가 선언된다. 그러나 셈과 야벳의 아버지의 죄를 가려 주는 행위로 그들에게 복이 선언된다.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고 노아 홍수 심판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죄성을 지적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8.21).

창 10

노아의 아들들 셈, 함과 야벳의 족보이다.
함의 후손들을 보면 가나안 족속이다.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원수로서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괴롭히던 악한 종족 블레셋, 가나안 족속이 함의 후손이다. 노아에게 범죄했던 함은 하나님의 경건한 계열 (여자의 후손) 을 대적한 것이 되어 역사 속에 뱀의 후손의 계열이 되어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족속이 되고 만다.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패배하는 것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그들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십자가의 구속의 패턴을 점진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아담→ 노아→ <셈, 함, 야벳>→ 홍수 이후 새로운 인류의 기원을 말해 준다. 구체적인 자손들의 이름의 기록은 성경의 내용이 문학작품이 아니라 인간의 실제 역사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과 사람을 만드시고 역사를 운행하시는 참된 하나님이시다.

창 11

1~9: 바벨탑 사건
인간이 뭉치면 하나님을 대적한다. 벽돌과 역청은 지금으로 치면 당시의 AI 기술이다. 돌과 진흙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기술 덕분에 바벨탑을 하늘로 높이 쌓을 수 있었다. 언어를 혼잡하게 하고 흩어지게 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에 바벨탑의 심판이 역적된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흩어졌던 각 나라 방언으로 통역되어 선포된다. 복음 안에서는 한 주, 한 성령 아래 같은 말을 하게 된다. 복음의 언어다. 지금은 AI 자동 번역, 통역 덕분에 언어가 하나가 되고 있다. 분명 인간은 다시 하나님처럼 되려고 할 것이다. 인본주의의 극치로 치닫을 게 불보듯 뻔하다. 하나님이 어떤 식으로 그런 인간들을 심판하실지 모르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지 않는 인간의 기술과 노력에 의한 통합과 통일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기억하자.
10~26절은 셈의 족보다.
셈의 계보는 데라를 거쳐 아브람으로 이어진다.
27~32: 데라의 족보
데라→ 아브람, 나홀, 하란 (→ 롯)
아브람의 아내: 사래, 나홀의 아내:밀가 (하란의 딸)
30절에 사래가 자식이 없다는 것은 복선이다. 이것 때문에 이후 드라마틱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장소 이동: 갈대아 우르→ 하란 (경유지), 목적지는 가나안
창세기 저자는 서서히 하나님의 구속의 시작의 서사를 시작하려고 시동을 걸고 있다. 주인공 아브라함이 등장하는 배경을 깔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