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소개
바른 교회 소개

느헤미야 (7월 7일 ~ 13일)

바벨론 포로기에서 유다로 귀환은 3차에 걸쳐 일어납니다.
1차: 스룹바벨과 예수아 (주전 538) → 예루 살렘 성전 재건 (bc 520-516)
2차: 에스라 (주전 458) → 재건된 성전 시대에 이스라엘 공동체의 율법(말씀)의 회복
3차: 느헤미야는 (주전435) → 예루살렘 성벽 재건
이런 순차적 역사와 재건 활동들을 기억하고 읽어나가시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느 1

느헤미야가 바벨론에 거주할 때, 그의 형제 하나니를 통해 예루살렘의 참상을 듣습니다. 이에 슬퍼하고 근심하며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느헤미야서는 하나님이 세우신 참된 지도자(리더)의 면모를 잘 보여줍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민족이 당한 환난과 참상을 슬퍼하며 하는 애끓는 기도였습니다. 느헤미야의 기도의 특징을 6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민족의 죄를 자신의 죄로 자복함 (6)
2.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기도 (5)
3.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한 기도 (5)
4.
언약을 기억하며 하는 기도 (8)
5.
하나님의 구원에 근거한 기도 (9,11)
6.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 (11)
하나님께 기도를 어떻게 어떤 내용으로 하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기도의 모델입니다.

느 2

느헤미야가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 왕의 은혜를 입고 예루살렘 성벽을 중수하기 위해 총독으로 돌아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마자 은밀히 상황을 파악하고 백성들에게 동기를 부여하여 성을 구축하기 시작하려 합니다.
그가 비록 이방 땅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서 이방 왕의 신뢰와 총애를 얻었던 것을 보면,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2장에는 몇가지 중요한 사항들을 깨닫게 해 줍니다.
1) 거룩한 근심, 경건한 근심은 하나님의 일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민족을 위한 근심이 그를 예루살렘으로 가게 하였습니다 (2-3)
2) 하나님은 일을 행하실 때 한 사람의 마음에 소원을 두셔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12).
3)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에게 근심의 이유를 물을 때 느헤미야는 대답하기 전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답했습니다 (5). 찰나의 기도입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이런 찰나의 기도(묵도)가 참 필요합니다. 순간 순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뜻을 묻고 어떤 말을 하기 직전 조차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비결입니다.
4) 하나님께서 소원을 두시고 행하게 하시는 자를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도우신다는 사실입니다 (8, 18, 20).

느 3

예루살렘 성벽을 중수하는 자들의 이름과 중수한 부분의 이름들이 3장 전체의 내용입니다. 이 기록에 들어간 가문과 사람들은 이 기록을 읽을 때마다 자부심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가문의 영광이죠.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반성의 기회이기도 할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의 많은 사람들이 성벽 중수에 참여했음을 알게 됩니다.
한 번 돌아봅니다. 우리 바른교회에는 비록 시작된지 일년 조금 남짓 지났지만, 영적으로 교회적으로 무너진 성벽을 없는가? 그 무너진 곳을 발견하고 중수하려하는 리더십이 나에게 있는가? 모든 성도가 함께 성벽 재건을 위해 동참하고 있는가? 같은 묵상을 하게 됩니다.

느 4

성벽 재건 사업이 얼마나 고되며 위험하고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를 보게 됩니다.
산발랏과 도비야같은 강한 대적자들의 조롱과 저주, 방해공작과 살해 위협으로 인해 생명과 안전의 위협을 무릎쓰고 해야 하는 사업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참 대단한 지도자 (왕같은) 입니다. 백성들의 안전을 도모하면서도 주어진 성벽 재건을 진행해 갑니다.
한 손에는 무기를 들고 언제 공격당할 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고, 한 손에는 연장을 들고 성벽 재건을 해 나가게 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 하나님이 싸우시리라는 믿음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20). 이 모습이야말로 신약의 성도가 이 세상에서의 삶의 핵심을 잘 가르쳐 줍니다. 지상의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입니다. 영적인 전투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진리의 교리로 무장하고 영적 전투를 수행하면서도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의 삶을 신실하게 감당해 나가는 모습이야 말로 성도의 지상의 삶의 태도입니다.

느 5

이스라엘의 역사가 언제나 그렇지만 현실의 어려움을 만나면 늘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느헤미야는 외적으로는 산발랏과 도비야라는 대적이 내적으로는 백성들을 불평과 원망으로 위기를 맞이합니다. 그러나 그의 공의로운 리더십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개혁을 단행합니다. 귀족들이 자기 백성들에게 고리대금을 받아 사리 사욕을 채우는 걸 꾸짖고 금지시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과 성벽의 재건을 위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총독의 월급을 백성들을 위해 그리고 재건 사역의 성공을 위해 받지 않습니다. 모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이스라엘 백성의 왕같은 지도자가 나왔습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의 왕같은 리더십을 보면서 우리도 이런 리더가 되자거나 이런 리더십을 개발하자로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가리키는 참 왕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5장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중 하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참된 자비와 정의와 사랑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은 삶 속에서 연약한 자를 돌아보며 불쌍히 여기고 공의와 사랑을 추구하며 사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들의 삶에 이런 마음과 행동이 표현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름을 돌아볼 시간입니다.

느 6

성벽을 다 메꾸고 성문 문짝을 달지 못할 때 원수들의 대적이 극에 달합니다. 느헤미야를 유인해 그를 암살하려고 합니다. 대적자들은 사람을(스마야)를 뇌물로 매수해 느헤미야가 범죄하도록 해서 비방거리를 만들려고 했지만 실패로 돌아갑니다.
사도행전에서 23장에서 바울 암살 결사대 사십인이 바울을 죽이려고 음로를 꾸몄지만 바울의 생질의 보고로 무마된 사건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원수들의 공작과 위협과 공격을 막고 드디어 성벽 재건의 52일만에 역사를 마칩니다. 예루살렘에 가보진 않았지만 무너진 성벽과 문을 52일만에 중수했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지 않으셨다면 (주권적으로 성취하게 하심)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과정 속에 한 사람 왕같은 하나님의 백성의 지도자 느헤미야와 그의 기도와 리더십이 있었습니다.

느 7

성벽 중수 이후 느헤미야는 리더들을 각개각처에 세웁니다. 그리고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명단이 5절부터65절까지 이어집니다. 온 회중의 합계가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인 걸보면, 많은 유대인들은 바벨론에서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 눌러 앉았음을 봅니다. 이 적은 숫자로 하나님 나라를 재건해 가는 과정이 험난하지만 새로운 소망과 기대로 가득한 시대입니다.
2절에서 느헤미냐는 하나냐를 지도자로 세우는데 그에 대해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 말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지도자(리더)의 자격에서 이것보다 중요한 것 없을 것입니다. 나는 목회자로서 하나님께 진정으로 충성스러우며 하나님 경외함이 회중가운데서 뛰어난 자인지를 깊이 돌아보며, 저의 자격없음과 부족함을 절절히 깨닫습니다.
느헤미야의 주도 면밀하고 철저함이 성벽 완공과 예루살렘 통치에 진정으로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가진 특성과 장점을 들어 사용하시며 그와 함게 하며 일을 행하시고 이루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 주권이지만 인간의 편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느 8

유다 총독 느헤미야의 주도 아래 예루살렘 성과 성벽이 재건된 후 이스라엘 자손들 모두가 광장에 모여 율법의 말씀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는 집회를 합니다. 새벽부터 정오면 6시간을 성경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되자 그들 가운데 놀라운 회개가 일어나고 이는 공동체 전체적인 말씀의 순종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참 감격적인 장면입니다. 이런 놀라운 회개가 일어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고 그 의미를 제사장과 레위인들에 해석해서 깨닫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말씀의 낭독과 설교를 통해 일어납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예배중에 설교의 권위를 높이 두고 말씀 중심의 예배를 추구한 이유였습니다.
12절에서 모든 백성이 크게 즐거워한 이유가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즐거움은 말씀을 밝히 깨달을 때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경험하기를 원하는 ‘즐거움’ 입니다. 개별적으로서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말씀을 듣고 즐거워했다는 것은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각자 삶 속에서 말씀을 통해 즐거워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교회가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밝히 깨달음으로 함께 즐거워하고 교제하는 것이 참 감격적이고 함께 추구해야 가야할 우리 교회의 모습입니다.

느 9

다시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공동체적인 회개를 합니다. 자신의 죄 뿐만 아니라 조상들과 이스라엘 전체의 죄를 자복하며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9장 전체는 예루살렘성의 재건 (하드웨어) 을 이룬 후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 사이의 언약을 갱신하는 역사입니다. 이 과정에서 무너진 예배가 회복된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언약 갱신의 순서를 요약해 보면 1) 회중이 모입니다(1) → 2) 말씀을 낭독하고 해석합니다 (성경 봉독과 설교) (3) → 3) 회개가 일어납니다 (2,3) → 4)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3-6) → 5) 이스라엘 전 역사를 회고하며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과 은혜를 다시 기억합니다 (7-32) →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결단합니다 (33-38). 발견하셨겠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예배의 모든 요소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일 공예배는 매 주일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사이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옛 언약이 아닌 새 언약을 갱신하는 시간입니다. 주일 공예배 시간이 얼마나 풍성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감격적인 시간입니까!

느 10

9장에서 언약을 체결한 문서를 봉인하고 인봉한 자들의 이름을 나열합니다. 이후 실제로 언약의 말씀을 준행합니다. 이방이과의 결혼을 금지하고, 안식일에 매매를 금하고 희년제도를 회복하며 헌물과 십일조를 회복합니다. 이를 통해 그들 가운데 무너져 있던 성전의 제사와 예배가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이 장에서도 역시 참된 개혁과 회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임을 봅니다. 첫째도 말씀! 둘째도 말씀! 셋째도 말씀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흔들리지 말고 붙잡고 가야할 참되고 바른 교회를 이루어가는 힘의 원천이며 동력입니다.

느 11

백성의 지도자들을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예루살렘에 거주할 자들을 제비 뽑아 10분의 1을 거주하게 합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하나님이 택한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재건 공동체의 종교의 심장일 뿐만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신정 국가적 면모 때문에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부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지도자들이 거주하는 건 당연했고, 성전과 제사를 유지 보존할 제사장 그룹, 레위인 그룹들이 상시 거주하며 일을 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돌아온 이스라엘 (유다) 백성들의 신앙과 삶의 중심이 성전이었듯이 우리의 신앙과 삶의 중심은 성전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된 교회입니다. 이런 그리스도 중심, 교회 중심의 삶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누리는 삶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