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리딩지저스 강의 영상>
열왕기상
왕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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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너무 늙을 때 또 다시 아도니아와 다윗의 신복 요압에 의해 왕위찬탈극 (쿠데타)가 일어날 뻔 했지만, 나단 선지자의 절묘한 타이밍과 용기와 지혜로 솔로몬이 약속대로 왕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과정이 참 드라마틱해서 실제로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있을법한 사극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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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과정이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것 같아보여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속에서 작동되는 하나님의 역사를 분명히 봅니다. 삼하 7장에서 다윗에게 하셨던 약속이 이렇게 일차적으로 성취되어 갑니다.
왕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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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의 전반적인 내용은 다윗이 솔로몬에게 올바른 역사 청산을 부탁한 것입니다. 유언으로 남긴 것이 의인, 악인을 행함대로 보응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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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반역의 주역이었던 아도니야, 아비아달, 요압이 처형당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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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도망갔을 때 다윗을 저주했던 시므이는 살 기회가 있었지만, 그의 탐욕과 방자함으로 죽임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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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공의로운 역사 청산 이후 새로운 내각을 구성하고, 솔로몬의 왕국은 견고해져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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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서 삼하 7장에서 다윗 언약이 완전한 성취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을 통해 번영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되죠.
왕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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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나타나신 하나님께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자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구한 그를 칭찬하시며, 구한 것 뿐만 아니라 구하지 아니한 부귀, 영광을 덤으로 주십니다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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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지혜롭고 총면한 마음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의 왕으로 백성들을 공의롭게 재판하는 왕의 지혜는 지혜의 보고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이며, 최후 심판날에 재림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혜롭게 만민을 선악간에 판단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듯, 솔로몬 왕도 예수그리스도의 그림자 (예표)로서의 왕입니다. 솔로몬 왕의 이름이 ‘평강의 왕’ 이듯,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원수된 죄인을 화목하게 하는 평강의 왕이시며, 멜기세덱이라는 ‘살렘 왕’, ‘평강의 왕’ 의 계열을 따라 왕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타이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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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기 두 여자의 아기를 찾아주는 솔로몬의 재판은 그가 하나님께 받은 지혜의 증거를 나타내는 실례입니다 (16-28)
열왕기상 2:3
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열왕기상 3:14
14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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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솔로몬에게 형통을 유언으로 남긴 것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형통하리라는 것이었듯이 (2:3), 하나님께서도 복을 주시면서 다윗처럼 율법을 잘 지키면 왕위를 보장하는 형통을 약속하십니다(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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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솔로몬은 율법을 잘 지켜서 그의 왕위와 이스라엘 왕국을 끝까지 보존할까요?
왕상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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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왕국의 영화입니다.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은 인구 (20), 주변 모든 나라를 다스리고 주변 나라들이 조공을 바쳐 섬기며(21), 이스라엘과 주변국에 평화와 평안을 누립니다 (24,25). 또한 솔로몬의 많은 지혜와 총명으로 다스립니다. 그의 지혜를 모든 민족과 나라들이 듣고 그의 지혜를 들으러 올려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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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벅찬 장면이죠.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 많은 민족이 네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되고, 별처럼 셀 수 없는 후손과 땅을 주시리라는 약속이 솔로몬과 그의 왕국에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당연히 아브라함과 다윗과의 언약의 일차적 성취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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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은 식물학, 동물학 박사였고 (33),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통달한 당시의 AI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 모든 지혜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에게 부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지식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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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솔로몬보다 더 큰 이, 즉 더 지혜로운 이, 모든 지혜와 총명의 근원이시며, 보고이자 지혜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은 정죄를 받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31
31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왕상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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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이 두로 (Tyre) 왕 히람과 함께 성전 건축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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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8절은 성전 건축의 거대한 규모와 동원된 인력을 보며 솔로몬 왕국이 얼마나 부국(rich nation) 이었는지를 가늠하게 합니다. 짐꾼 칠만 명, 산에서 돌 뜨는 자가 팔만 명 (15), 일을 감독하며 관리하는 자가 삼천삼백명이니 말 다했습니다.
왕상 6: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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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과 자신의 왕궁을 건축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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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의 역사 기록에 의하면 BC 966년이므로 애굽 땅에서 나온 지 480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출애굽 연대는 BC1446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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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건축에는 7년, 자신의 솔로몬 궁 건축에는 13년이나 (6:38, 7:1) 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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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건축, 성전 내부 장식, 지성소 제작 (6: 19-22), 지성소 안의 그룹 제작 26:23-28), 솔로몬 궁 건축 (7:1-12), 히람에 의한 놋 기둥, 바다, 놋 받침 수레와 물두멍 및 성전 기구들을 제작한 내용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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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에 관한 긴 내용들을 읽다보면 그림이 잘 안그려질 겁니다. 아래 몇 가지 그림을 보시면서 읽거나 읽고 나서 보시면 성전의 모양과 내부등의 구조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 될 겁니다.
솔로몬 시대의 예루살렘, ESV Study Bible, 781p
솔로몬 성전, ESV Study Bible, 711p
왕상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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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에게 주신 십계명 두 돌판이 들어 있는 언약궤를 성전의 지성소로 옮깁니다. 이 일을 제사장이 마칠 때에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광으로 충만합니다 (8: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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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택하신 곳 예루살렘, 시온 성에서 살렘왕 평화의 왕 다윗의 후손 솔로몬이 하나님의 임재하하시며 자기 백성과 만나는 곳인 성전 건축을 완성한 것은 다윗 언약의 직접적인 성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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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언약의 그림자입니다. 최종 성취는 다윗의 몸에서 날 씨인 다윗의 후손, 아브람의 자손 (씨)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성전을 지으신 것에서 완성 되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전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의 임재 가운데 하나님과 교제합니다. 우리가 매주 주일예배때 발생하는 영적인 현실이 이와 동일합니다. 우리는 주일 예배시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가장 가까이 경험할 수 있기에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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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궤가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언약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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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기도 (8: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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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바벨론 포로로 잡혀갈 것을 예상한 듯, 적국에 사로잡혀 갔을 지라도 뉘우치고 성전향해 회개하고 기도하면, 들으시고 죄를 사하시며 구원해 달라는 내용입니다. 실제로 멸망한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 중에 하나님의 경건한 자들인 남은 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하나님께 진실되게 간구했습니다. 대표적 인물이 다니엘이죠. 그 기도를 들으사 70년 후에 다시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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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향해서나 교회당 건물이 있는 곳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 어디서나 기도할 수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죄사함 받은 용서받은 죄인으로 회개하며, 언제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 우편에서 간구하시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얼마나 복된 구원입니까!
왕상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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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솔로몬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적 복이 왕과 이스라엘의 순종의 지속 여부에 따라 이루어질 것에 대해서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가 하나님 나라에서 복과 저주를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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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서의 복과 저주에 대한 선언과 동일합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신명기적 (역) 사관” 이라고 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의 전 역사가 이 신명기적 역사관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언제나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과 왕이 지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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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28절까지는 성전과 궁의 건축 이에 다른 업적들에 대한 내용인데 솔로몬은 참으로 건축가였습니다.
왕상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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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와 그 지혜가 실현된 성전과 이스라엘을 보고 찬양하고 축복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약속이 일차적으로 이루어진 나라의 부강함, 풍부함, 지혜, 주변국들의 경배와 복종등은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었을 때의 속성을 보여 줍니다. 이런 어마한 영광의 나라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미리보기 이며 그 나라를 대망하게 하는 역사입니다.
열왕기상 10:24 (NKRV)
24 온 세상 사람들이 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를 들으며 그의 얼굴을 보기 원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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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시대에 경험한 이런 모습들은 열방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받은 백성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온 것에서 그려집니다. 복음서에서도 수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지혜를 칭송했고, 그의 지혜로운 가르침을 들으려고 모든 지방에서 몰려 들었습니다.
왕상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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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범죄와 하나님의 심판의 예고 (11:13), 사사기때처럼 하나님께 범죄한 이스라엘에게 대적들을 붙여 괴롭게 했듯이 솔로몬에게 대적을 붙여 벌을 내리십니다 (11: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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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찢어서 솔로몬의 신하에게 주시겠다던 하나님의 징벌대로 (11:12) 여로보암에게 기름을 붇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십니다 (11:26-40). 이스라엘이 나누어진 원인은 솔로몬의 범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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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다윗과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 완전히 멸하지는 않고 한 가닥 소망을 남겨 놓습니다. 유다 족속을 보존하시겠다 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유일한 소망이죠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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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에서 우리는 솔로몬이 그렇게 하나님께 전부를 받았음에도 여호와를 떠나고 불순종한 이유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여호와에게서 마음을 돌려 떠났기 때문이며 (9), 눈에 보기 좋은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1). 세상의 여자들을 사랑해서 통혼하자 그들이 섬기던 신을 섬기게 되고 이는 하나님을 반역하는 우상숭배로 이어진 것입니다. 항상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잘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마음 하나님으로 채워져 있지 않는 마음은 세상에 대한 사랑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왕상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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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이 죽고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를 물려받지만, 그의 어리석음때문에 결국 나라가 둘로 분열됩니다. 이 일은 이미 예정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의지의 문제가 다시 드러나는 장입니다. 르호보함의 악함을 통해 이스라엘을 분열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악을 조장해서 이루신 일이 아니라 르호보암 자신의 스스로 선택한 악을 사용하셔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함의 결과입니다. 르호보암이 다윗의 노장의 신하들의 말을 거부하고 자기의 소시적 친구들의 말을 듣게 되어 나뉜 것이 하나님의 경륜였습니다 (1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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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약속된 이스라엘 왕국은 북이스라엘 열지파와, 남유다 두 지파로 분열 왕국이 되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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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자격도 안 되는 여로보암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으나, 이 자도 겸손하게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께 크게 범죄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결국은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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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여호보암의 중차대한 범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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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정하지 않은 곳에 제단을 세웠습니다 (벧엘). 이스라엘을 두고 두고 우상숭배하게 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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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인이 아닌 자들 아무나 제사장의 직무를 맡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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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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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마음대로 절기를 지정하고 지키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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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기독교 사이비’, ‘유사 기독교 종교’ 를 창설한 겁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참담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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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보암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제사를 얼마나 멸시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왕상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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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여로보암의 범죄를 책망하기 위해 한 선지자를 보냅니다. 그러나 이 선지자는 여로보암의 청은 거절하였지만, 한 선지자의 거짓말에 속아서 (12:18) 초대한 선지자의 집에 머물며 떨과 물을 마시면서 사자에게 물려 죽는 불행을 겪습니다. 하나님이 사명과 함께 지시사항을 어겼을 경우 그에 대한 벌을 말씀하실 때는 말씀을 어기면 무조건 그대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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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저자가 나래이터처럼 여로보암의 죄를 다시 기술하며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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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말씀과 제사를 멸시함으로 하나님을 멸시했습니다. 우리도 예배를 멸시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렇지 않게 불순종한다면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과 진배없습니다.
왕상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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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여로보암집에 저주를 예언하고, 그의 아들이 병들어 죽게함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임을 미리 선행적으로 징벌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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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종교적, 윤리적, 사회적 타락상을 24절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남색이란 성전에 공인된 남창 (남성 창녀)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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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왕 르호보암의 죄는 유다백성을 범죄하게 하였고, 하나님께서 거룩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쫓아내신 가난안땅의 이방인들으 문화와 정치와 생활을 본닫아 따라했습니다. 그들과 동화되어 구별없이 살았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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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들과 교회가 세상에 동화되어서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을 사랑하고 그들의 문화와 관습과 가치관을 쫓아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싫어하시는 지를 봅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지만, 세상에 동화되지 않고 빛과 소금의 고유성을 잃지 않고 그들에게 침투해서 복음으로 세상에 빛을 비추고, 거룩한 삶을 통해 세상의 부패를 막는 소금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겠습니다.
왕상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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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아비얌→ 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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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전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돗보입니다 (15:5). 평생에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했고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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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왕은 다윗처럼 그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여 (15:14) 유다를 부강하게 통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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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왕: 바아사→ 나답→ 엘라→ 시므리→ 오므리 /디브니 → 아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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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이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악녀 이세벨을 아내로 삼았고 바알 숭배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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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왕은 하나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한번씩 아들에게 승계되기도 하지만, 주로 왕위의 계승도 모반과 암살등으로 점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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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4절에 북이스라엘 수도인 사마리아 건축의 시초를 알게 됩니다. 오므리 왕이 세멜에게서 산을 사 성읍을 건축한 뒤 주인의 이름을 따라 ‘사마라아’ 로 불렀습니다.
왕상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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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7장부터 왕하 2장까지는 엘리야의 사역이 중점내용입니다. 아합 왕에게 가뭄을 선언하는 때부터 엘리사에게 사역을 이양하고 승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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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밧 과부에게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게 하는 기적을 베풀고 또 죽은 아이를 살리는 놀라운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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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적의 의미는 여인의 고백을 통해 드러납니다.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때 행하셨던 모든 기적의 의미는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사람들에게 확증하는 것이며, 예수님이 가르치셨던 모든 말슴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왕상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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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장은 엘리야를 죽이려는 아합왕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가 8백오십명과 엘리야 선지자 한 명과의 대결로 유명한 장입니다. 신의 대결이죠. 결국 죽은 우상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바알과 아세라가 살아계신 하나님께 박살납니다. 이사야의 명령에 의해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합니다. 우상 숭배자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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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장에서 드러나신 하나님은 1) 살아계신 하나님, 2) 역사하시는 하나님, 3) 전능하신 하나님, 불가능을 가능케하시는 하나님, 4)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5) 자연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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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을 신앙한다곤 한지만 현실에서는 죽은 우상, 즉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마음을 차지하는 모든 것 세상에게 절하고 기도하고 섬기고 있는지 깊이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왕상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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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승리 뒤에 이세벨의 살해 위협에 두려움에 빠진 엘리야는 깊은 영적 침체에 빠집니다. 자기 생명을 위해 도망하죠 (3). 그렇게 큰 능력을 받고 큰 영적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었던 선지자가 자기 목숨을 위해 사명을 버리고 숨으려 했습니다. 주님께서 “자기를 위해 목숨을 구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주님을 위해 목숨을 잃는 자는 찾으리라” (마 10:19, 16:26; 눅 8:35) 라고 하셨던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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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그를 어루마지고 먹을 것을 주셔서 살리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며 새롭게 사명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하사엘, 예후, 엘리사에게 각각 기름을 붓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이스라엘을 우상숭배에 빠지게 한 악한 아합과 이세벨을 진멸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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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절에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르는 과정이 누가복음에서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을 때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눅 6:61)” 라고 했던 사람과 동일한 반응을 합니다. 예수님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네요. 엘리야와 엘리사라는 인물과 그들의 사역은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그리고 그들의 선지자의 직분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성취되면 반복되는지를 생각하며 읽으시길 바랍니다.
왕상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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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하닷 왕이 이끄는 아람 왕과 아합의 이스라엘과의 싸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악한 아합과 이스라엘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아람과의 전쟁에서 그들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전능으로 아람을 패하게 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도 모르고 아합은 자기 숭배적 교만을 나타내고 벤하닷 왕을살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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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그는 죽게 될 것이라는 예고를 듣습니다. 42절에 보면 하나님이 왜 악한 이스라엘을 이기게 하시고 아람을 멸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악한 자를 들어 더 악한 자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바벨론을 들어 이스라엘을 심판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왕상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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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과 이세벨의 악함의 극치가 드러납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너무 갖고 싶어서 살인 모의를 하고 거짓증인들을 세우고 그들의 사법 시스템을 합법적으로 사용해 무고하게 나봇을 죽입니다. 그리곤 포도원을 차지하죠. 나봇의 억울함의 피가 하늘을 향해 부르짖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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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이런 악행에 대해 얼마나 진노하셨는지 모릅니다. 이런 인간의 악한 마음과 악행은 인간 역사에서 변하지 않고 지속되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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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아합이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듣고 회개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십니다. 정확하게는 유보시키십니다 (29). 하나님께서는 어떤 악한 자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자비를 베푸시는 인자하신 분이심을 알게 됩니다.
왕상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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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함께 길르앗 라못을 치러가는 문제를 놓고 선지자들을 불러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이때도 아합에게 치부하는 거짓 선지자 4백명과 미가야 선지자 한 명의 대결입니다. 이렇게 참된 하나님의 사람은 소수임을 반복해서 보여 주십니다. 미가야를 때리고 옥에 가두며 핍박하고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따라 대패하고 아합은 무심코 쏜 화살에 맞아 죽게 됩니다 (34). 우연이 아니라 우연을 옷입고 나타난 필연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충동해서 그들로 전쟁터에 나가게 하고 아합을 죽이신 것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악을 조장하고 일으킨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악한 마음과 행위들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렇게해서 열왕기상이 막을 내립니다.
열왕기하
왕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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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왕이 죽고 아하시야가 왕이 됩니다. 난간에서 떨어졌을 때 치유 여부를 하나님이 아닌 ‘에그론의 신인 바알세불’ 에게 묻습니다. 이에 하나님이 엘리야를 보내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십니다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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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대해 아하시야가 50명씩 사람을 보내지만 여호와의 불로 살라짐을 당합니다. 세번째 50명 부대의 오십부장은 그의 겸손과 간구로 생명을 보존합니다. 아하시야는 예고대로 죽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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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문제, 선택과 결정을 할 때 세상의 방식, 내 마음의 원대로, 세상의 지혜나 지식을 구하고 결정하는 것도 하나님께 동일한 행위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없어서 세상의 지식, 사람, 방식에 의지하는 것입니까? 나의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께가 아닌 세상께 묻고 그에 따라 살았던 삶이 참으로 후회되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왕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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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사역을 넘겨주고 승천하는 기사입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이런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빼죠. 이런 초자연적 역사는 인간의 이성으로 수용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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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지팡이 홍해를 가르고 홍해를 마른 땅으로 이스라엘을 건너서 구원한 것처럼, 여호수아의 제사장이 요단강에 발을 놓자 요단강이 갈라져 마른 땅으로 가나안 땅으로 이스라엘이 들어갔던 것처럼 엘리야도 그의 겉옷을 치자 요단강이 갈라지고 마른 땅으로 건넙니다. 이런 사건들에는 동일한 패턴과 가리키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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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와 사망을 정복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흑암과 죽음의 강을 건너 사탄의 나라에서 생명의 나라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건너간 구원의 사건의 그림자입니다. 엘리야가 승천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 가운데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엘리야와는 달리 그분은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만유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어 통치하시는 왕으로 계십니다. 할렐루야!
왕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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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의 승천이후 엘리사의 사역이 시작됩니다. 모압이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자 이스라엘 왕 여호람, 유다왕 여호사밧과 에돔 왕이 동맹하고 모압을 치러갑니다. 하지만 많은 군사들을 먹일 물이 없자 엘리사를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해 그들에게 물을 주며 모압을 넘겨 주겠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말씀대로 모압이 패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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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이기기 위해 왕의 아들을 인신제사하는 악행을 저지르는 걸 보면 이들이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민족인지를 드러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죄악된 민족을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 치신 것입니다.
왕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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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의 놀라운 기적을 행하는 능력들이 나옵니다. 선지자 제자 중 한 여인이 남편이 죽자 생활고로 인한 빚독촉에 시달리고 두 아이까지 빼앗길 지경에 처합니다. 엘리사가 그 집의 전 재산인 기름 한 그릇으로 많은 그릇에 계속해서 기름을 채우는 기적을 행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습니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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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없었던 수넴 여인이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이 역시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이삭이 태어났던 것처럼 불가능 속에 아이를 가진 것이기에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에 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사역을 통해 나타내신 전능입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시며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은 마침내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으로 잉태하게 하셔서 우리 가운데 보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얻은 아들이 죽자, 엘리사는 다시 이미 죽은 아이를 살리는 능력을 행합니다 (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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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단락에서는 독이 든 국을 가루를 던져 해독을 시키는 능력과 과부의 기름 그릇때처럼 보리떡 이십 개와 채소로 백 명을 먹이고 남기는 기적을 행합니다. 예수님의 오병이어 사건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드러냅니다. 총량을 시간적 과정이나 에너지, 추가적 힘을 투입하지 않고고 배가시키는 능력입니다. 천국에서는 어떤 자원도 부족하지 않을 것임을 짐작해 봅니다. 엘리야에게 구했듯이, 엘리야에게 임한 성령의 능력보다 갑절의 능력을 받고 행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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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통해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경제적으로 나락에서 고통받는 자기 백성들을 엘리사의 기적의 사역을 통해 돌보십니다. 엘리사야말로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사람임을 확증하기도 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라는 인물과 그의 모든 사역은 모세가 예언한 내 뒤에 나와 같은 선지가, 최후 선지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과 연결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왕하 4장은 한 위대한 선지자 엘리사의 놀라운 능력에 놀라는 수준에서 끝이 나게 됩니다. 성령을 기름붓듯 부음 받으시고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선지자 마지막 엘리야와 엘리사입니다.
왕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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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에게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엘리사를 찾아와서 그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번 잠그자 나병이 나은 사건입니다. 레위기에서 나병 환자는 부정한 자로 여겨졌습니다. 나아만이 치유된 사건은 이방인이었던 (어떤 면에서 이스라엘의 대적) (이방인 역시 부정한 자 취급) 부정한 자가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의 능력으로 나암을 입고 깨끗하게 (정결하게) 된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가 무례해 보인 엘리사의 행동에 처음엔 화가 났으나 종들의 권유에 귀 기울며 겸손하게 엘리사의 터무니 없는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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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믿음의 순종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구원의 근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근거로 우리의 믿음을 수단으로 해서 구원하십니다. 요단강에 처음 들어가는 것도 믿음의 순종이 요구되었지만, 일곱번가지 한번씩 나올 때마다 아무런 변화 없는 자기 몸을 보면서 매번 믿음의 순종을 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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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낫자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가 섬기는 신을 버리고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결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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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 후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사례하려하자 엘리사는 거절합니다. 그의 종 게하시가 몰래 나아만에게 가서 엘리사가 시켰다고 거짓말 하고 돈과 옷을 받아내고 엘리사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그의 모든 거짓과 죄가 밝혀져 엘리사의 심판의 말로 나병이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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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하시의 죄는 ‘아간의 범죄’ 나 사도행전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의 범죄와 형태가 유사합니다. 탐욕이 원인이었고, 게하시는 공짜로 일한 것이 억울해 거짓말로 돈을 뜯어냈고, 그 과정에서 스승의 명예를 크게 손상시킵니다. 자기 사환에게 거짓말하게 하고, 스승에게도 속입니다. 이처럼 탐욕은 거짓에 거짓을 낳고 타인의 명예에 손상을 가하며 결국 관계마저 파괴하는 무서운 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예수님께서도 탐욕은 우상숭배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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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눅 4.27에서 자기를 배척하는 고향사람들에게 나아만이 치유된 사건을 인용하면서 오직 택함 받은 자만 예수님을 받아들인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고향 사람들이 예수를 배척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구원받도록 택함 받지 못해서 거부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후 눅 5.12-13와 눅 17:12절에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치유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아만을 치유했던 엘리사는 이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병환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왕하 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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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의 선지자 학교가 부흥합니다. 학생 수가 늘어 학교를 확장합니다. 이스라엘을 치러 온 아람군대를 엘리사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사마리아로 이끌어 물리칩니다. 죽이지 앟고 원수를 배불리 먹여 살려 보냅니다. 이런한 평화 조치로 한 동안은 아람이 침공하지 않습니다. 자기들도 양심이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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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시 군대를 모아 사마리아를 에워싸는데, 이때 사마리아 성안은 모든 걸 차단당해 기아에 시달립니다. 자기 아들을 삶아서 허기를 면하는 끔찍한 일일 실제로 이스라엘 내에 발생합니다. 어떻게 이런일이! 아무리 선한 인간이라도 상황과 조건이 만들어지면 더 할 수 없이 악해질 수 있는 것이 인간 존재의 실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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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가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임을 예언하지만 이스라엘 왕의 한 장관은 이를 믿지 않고 조롱하고 엘리사로부터 죽음의 예고를 듣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고 조롱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고 조롱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사형에 해당하는 벌을 받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불신하고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자들은 종말에 이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지금은 인과응보로 바로 바로 심판하시지 않으시며 예수님의 재림때까지 심판을 유보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죄를 범할 수 있을 뿐입니다.
왕하 7: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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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 군대가 하나님이 일으킨 군대 소리를 듣고는 기겁을 해서 혼비백산 달아납니다. 이스라엘의 기근이 그치고 인플레이션으로 치솟았던 물가가 안정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고 하나님의 예언을 조롱하던 한 장관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임을 당합니다. 구약 성경 전체의 내용이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단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다 그대로 이루어짐을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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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것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속히 이루어 질 것입니다.
왕하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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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사엘이 벤하닷 왕을 죽이고 왕이 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동일한 죄악에도 다윗과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 유다를 멸하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보존하십니다. 이는 다윗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작정된 뜻이기 때문입니다. 유다에게 어떤 보존 될 만한 선이나 그 무엇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왕하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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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가 제자를 통해 예후에게 기름을 붓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웁니다. 이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대로 그와 아내 이세벨과 아합 집안의 악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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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당한 하나님의 심판은 참혹하기 그지 없고 멸문지하당했습니다. 그 어떤 성경의 장보다도 하나님의 공의가 진노의 불처럼 아합집에 쏟아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은 결코 악을 간과하시거나 악한 자에 의해 무고하고 억울하게 당한 약자를 그냥 두시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알게 됩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아합과 이세벨에 자행했던 잔학상을 알 것입니다. 총체적 악의 집합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까지도 다 갚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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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의 아들 요람과 이세벨과 아합의 아들 칠십명과 유다와 아하시야와 그의 형제들까지 예후의 손에 죽임 당합니다. 그고 바알숭배하는 모든 자들까지도 죽임당합니다. 여기서도 하나님은 악인을 들어 악한 자들을 진멸하심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예후 역시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고 죽었으니 그 또한 하나님의 합당한 심판을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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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이시라는 것, 최후 심판이 있다는 것이 성도들에게는 위안입니다.
왕하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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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달랴의 왕자들 학살로 인해 유다 왕의 계보가 끊어질 뻔 한 위기에 처하지만 유모에 의해 요아스가 생존하게 됩니다. 다윗언약이 깨질 뻔 하였지만 하나님의 비상한 섭리로 그 씨가 보전되죠. 신실하고 지혜로우며 담대한 제사장 여호야다에 의해 요아스에게 왕권이 돌아오고 역사 청산이 이루어 집니다.
왕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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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왕이 된 요아스는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이루어 냅니다. 그것은 성전 보수를 통해 하나님과의 제사와 만남을 회복한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2절에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그것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왕하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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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사사기의 패턴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불순종한 이스라엘에게 대적 하사엘을 붙여 괴롭게 하시고 고통으로 회개하면 구원해 주시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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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구약의 선지자 엘리사도 병들어 죽습니다. 마지막까지도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을 염려했던 참 선지자였습니다. 마지막까지 그의 무덤에 던져진 시체조차 살아나는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생명과 구원이 하나님의 말씀과 순종에 달려 있음을 보여 줍니다. 마른 뼈가 살아나고, 무너진 교회가 회복되고 죽은 영혼과 교회가 생명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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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말미에서는 옛 족장들과 맺은 언약에 신실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조차도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하심을 보게 됩니다.
왕하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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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왕 요아스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어 아버지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합니다. 그는 말씀에 순종하였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형통하였습니다. 반복적인 주제는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지키고 정직한 왕이면 그 백성이 형통하고 복을 받습니다. 언제나 이스라엘의 실패는 세운 왕의 실패에서 비롯됩니다. 언제나 실패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다 지켜 행하며 자기 백성을 다스릴 왕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 왕을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형통은 (이땅에선 영적으로) 말씀에 완전히 순종하신 그리스도의 왕되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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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요아스와 동일하게 어떤 면에서 거의 선한 왕이 아마샤도 자기백성들의 무리의 반역에 의해 살해 당해 죽습니다 (19). 단순히 반역을 당해 죽었다고 이스라엘 왕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당한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의로운 자를 무고하게 죽이는 악한 무리들의 범죄의 희생자입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자기 백성 유대인들에 의한 것과 동일합니다.
왕하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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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샤를 이어 왕이 된 유다 왕 아달랴도 그의 아버지와 같이 선한 왕이었습니다. 산당을 제거하진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는 52년간이나 장기 통치를 하는 특권을 누립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모두 악한 왕이었고, 몇몇을 배고는 모두 짧게 통치하다가 반역으로 자리가 바뀌었습니다. 이스라엘 왕 스가랴→ 살룸→ 므나헴이 그렇습니다. 특히 므나헴은 참으로 악한 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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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유다 왕들 중에는 장기 통치자가 유독 많았음을 봅니다. 그리고 언제나 혈통을 따라 아들이 왕이 됩니다.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왕을 치셔서 나병이 들게 합니다. 별궁에 거하며 요담이 섭정을 합니다. 아마샤가 어떤 죄를 범했기에 치신 것일까요? 성경은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그런 일이 있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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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히야를 죽이고 왕이 된 르말야의 아들 베가가 왕으로 있던 때는 국제 정세가 요동치던 때였습니다. 디글랏 빌레셀이 왕으로 있던 앗수르가 세계적 강국으로 급 부상합니다. 그리고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 베가가 연합군을 형성해 유다를 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유다에게 행하신 것입니다 (37).
왕하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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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왕 아하스는 악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패역한 제사장 우리야와 함께 하나님께 다른 제사, 우상의 제단에 감탄하여 그걸 이스라엘에 도입한 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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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왕 르신과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연합해서 예루살렘을 침공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앗수르 왕 디글랏 벨레셀에게 구원을 요청합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모두 용병을 써서 동족간에 전쟁을 치루는 어처구니 없는 분열의 모습입니다.
왕하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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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왕 호세아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앗수르에 멸망당합니다. 이때가 BC 701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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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의 대식민지 정책은, 타민족들을 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에 이주시켜 그곳 사람들의 문화를 혼합시켜 말살하는 것입니다. 일제치하에서 일본이 일본 사람들을 한국 땅에 거주시키며 한민족의 말과 글과 문화를 말살하려는 것과 유사한 정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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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사마리아인들은 이방족속들과 혼혈민족이 되어 유다 사람들이 사마리아인을 그렇게 멸시를 하게 되는 역사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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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족속들이 이스라엘 땅에 거주하며 만들어낸 혼합주의는 종교 혼합주의를 통해 예배와 윤리를 무너뜨립니다. 이스라엘의 정통성은 깨어지고 하나님과 자기들의 신을 함께 섬기는 가증한 일을 자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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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재물을 둘 다 섬길 수 없다고 하셨는데, 하나님과 세상 (맘모니즘, 물질주의)을 함께 섬기는 혼합신앙은 하나님께 가증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인위적 것을 통원해 인간의 만족과 함께 하나님을 추구하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예배입니다.
왕하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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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해 가는 유다왕국의 또 다른 개혁의 아이콘인 히스기야 왕이 등장합니다. 그의 개혁과 함께 그의 교만은 유다가 멸망하는 빌미와 이유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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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의 랍사게의 하나님과 유다에 대한 모욕은 골리앗이 다윗을 상대하며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모욕한 것과 흡사합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그렇듯이,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께 범죄하고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우상을 섬기며 말씀에 불순종할 때, 하나님은 세상을 들어서 하나님의 교회를 욕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되어 있는 교회가 수치를 당함으로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훼손됨을 허락하십니다.
왕하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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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의 침공에 무너지기 직전 히스기야의 기도로 앗수르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죽고 패하여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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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에서 활동한 이사야가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국가적 재난 앞에서 하나님께 의지하며 겸손히 나아오는 히스기야 왕의 모습이 돋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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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한 영을 보내 그의 행동을 제어하시며 그를 심판하실 것을 이사야를 통해 히스기야에게 예고하십니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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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9절은 히스기야의 기도인데, 유다의 왕으로서 구원을 간구하는 중보적 기도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존재, 성품, 속성, 능력을 찬양하며 그 하나님에 의지하여 구원을 요청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와 함께하시고 승링하게 하실 때 세상은 하나님을 인정하게 됩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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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의 한 가지 중요한 주제는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간구하는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교회나 항상 기도해야 하지만 위기, 고난과 역경을 만날 때 마음을 겸비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함이 참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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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는 자나 국가를 하나님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이사야를 통해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말슴은 하나님은 한 나라에 왕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며 한 나라를 강하게도 하시고 망하게도 하시는 역사의 주권자와 통치자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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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역사는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계획, 작정하신 뜻을 실행하시는 것입니다 (25).
왕하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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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장은 ‘그때에’ 라고 시작하는데 18장과 19장에서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유다를 침공했던 BC 701년 때 보다 12년 앞의 일에 대해 적고 있습니다. BC 713~712년때이고, 히스기야가 죽기 15년 전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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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생명을 연장해 달라고 통곡하며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15년을 연장시켜 주십니다. 히스기야는 눈물로 기도하는 왕이었음에는 틀림없습니다. 눈물로 기도하면 목숨도 연장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라고 공식처럼 대입하면 안 될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생명 연장을 구한 건 아마도 단지 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댜의 운명과 안위에 대한 왕으로서의 탄식과 사명때문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윗의 언약을 기억하며 유다를 보전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마음이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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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때 해가 머물러 있었던 사건처럼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하스의 해시계의 그림자를 뒤로 십도 물리는 초자연적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천체의 시스템을 흔드시는 일을 행하시고도 여전히 우주와 지구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운행해 가시는 창조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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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낫자 교만해진 히스기야는 자신의 부를 자랑하는 어처구니 없는 죄를 범하고 이로 인해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의 유다 심판의 예언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중심적 왕으로 굳어져 버린 듯, 자기 때에는 평화로울 것이라는 사실을 좋게 여깁니다. 결코 완전한 왕은 없습니다. 다윗 왕 이후로 그 어떤 이스라엘의 선한 왕도 하나님의 기준에 합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올 왕을 계속 기다리게 합니다.
왕하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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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왕들 중에는 이스라엘 왕들과는 달리 중간 중간 선한 왕들이 있었습니다. 히스기야의 아들인 므낫세는 가장 악한 왕이었습니다. 여러보암보다 아합보다 더 악한 자였습니다. 바알, 아세라 우상 뿐만 아니라 해, 달, 별등 온갖 잡신들을 성전에서 섬기고, 하나님이 가장 혐오하고 금지시킨 점치고, 신섭하고 사술, 박수를 신뢰하며 여호와의 진노를 일으켰습니다. 게다가 인신제사인 자기 아들을 불에 태우는 제사를 하였습니다 (3-7). 종교적 범죄 외에 사회적으로 죄없는 자를 많이 죽였습니다 (16). 여호와의 진노로 결국 유다는 더 이상 소망을 상실하고 심판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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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장기집권을 합니다. 오십오 년간 다스렸고, 죽을 때도 평안하게 죽었습니다. 물론 다윗 성이 아니라 웃사의 동산에 장사되어 다윗 왕의 계보에서 제거되기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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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뒤를 이어 아몬이 등장하나 그 역시 악한 자였고 웃사의 동산에 장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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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들의 역사가 보여주듯 인간은 악만행하는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할 수 없는 절대 불능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출애굽시키셔서 구원하시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셔서 하나님나라를 살게하신 이 백성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탄식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이 없이는 인간은 영원히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구약의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런 잔혹사 가운데 “다윗의 후손으로 왕이여 속히 오소서” 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왕하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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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스처럼 요시야도 나이 팔 세라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됩니다. 그는 선왕이었습니다. 요아스처럼 그의 개혁은 성전 보수 작업에서 시작합니다. 종교 개혁의 핵심이 중세 천년의 잘못된 예배를 개혁했듯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과 하나님이 만나는 장소인 예배의 개혁은 지금도 개혁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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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 힐기야 율법책 발견→ 서기관 사반에게 전달 → 요시야 에게 보고합니다. 이때 요시야가 낭독되는 율법책의 말씀을 들을때 깊은 회개와 통회 자복합니다. 유다 가운데 그동안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없이 살아왔는지가 드러납니다 (13). 예배의 개혁과 함께 말씀의 재발견은 회개를 촉구하고 하나님께 그 백성들을 돌아오게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성경 봉독이 되는 것만으로 온 성도가 듣고 마음의 옷을 찢으며 통회 자복하는 영적 각성과 부흥이 일어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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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참딘 회개로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고 통회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뜻을 돌이키시고 심판을 지연시키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불완전해서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참된 회개의 기도라는 수단까지도 예정하셔서 하나님의 돌이키고자 하는 원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심령을 찾으시고 이런 기도를 들으시길 원하십니다.
왕하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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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야 왕의 혁혁한 개혁의 내용들입니다. 요시야의 개혁은 1) 말씀 낭독, 2) 성전 청결, 3) 우상 파괴, 4) 지도자의 청결 & 척결, 5) 우상숭배자 처벌, 6) 예배와 절기 회복과 개혁, 7) 이방풍습의 금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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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개혁은 철저했습니다. 미세한 것부터 큰 것까지, 한 지역에서 유다 전역으로의 광범위한 개혁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종교 개혁이었습니다. 요시야의 개혁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교회 개혁의 핵심은 말씀으로 돌아가 말씀 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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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야의 대대적인 종교 개혁에도 불구하고 누적된 유다 왕들과 유다 백성들의 죄악과 므낫세 왕의 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 뜨지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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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점에서 요시야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보내신 사역에 순종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왕입니다. 그는 유다 백성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 앉히지 못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려 진노를 누그러 뜨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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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한 애굽의 노예국으로 다시 전락한 유다의 비참한 말로가 보입니다. 요시야→ 여호아하스 (애굽에 잡혀가 거기서 죽음) → 애굽이 세운 여호야김 (요시야의 아들) 이 바지 왕이 되어 조공을 바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왕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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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이 세운 파피킹 여호야김은 바벨론이 부상하는 시대를 읽지 못하고 배반합니다. 그가 죽자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지만 역시 악을 행하는 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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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국제정세는 이집트는 바벨론에 의해 약소국이 되고 유다는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점령당하고 맙니다. 바벨론의 점령국 정책은 앗수르와 달리 자기 나라고 유능한 자들 지도자들을 포로로 끌고 갑니다. 이때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대신 여호야긴의 숙부 맛다디야를 꼭두각시 왕으로 세우고 시드기야라고 이름을 바꾸어 줍니다. 그런데 이 파피왕이 또 바벨론을 반역합니다. 유다의 운명은 풍전등화입니다.
왕하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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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장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처참한 멸망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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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한 유다를 침공하러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합니다. 이 망할 시드기야 왕은 지 살자고 백성들을 버리고 밤중에 몰래 도망을 가는 망할짓을 압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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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왕 앞에서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에 결박시켜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7). 이것보다 비참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민족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세운 왕이 받은 심판은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큰 것인지 보게 됩니다. 이 모습은 우리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갖은 모욕, 조롱, 수치를 당하며 십자가에 사형수로 돌아가신 예수님의 모습 (이사야 53장)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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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족속이 진멸당하듯, 유다가 바벨론에게 그들의 죄에 대한 심판으로 진멸됩니다. 끔찍하고 처참합니다. 성전이 파괴되고 화염에 뒤덮여 잿더미가 됩니다. 성전의 기구들은 모두 빼앗기고 유다의 많은 자들이 도륙과 살육의 수준으로 죽임당합니다 (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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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이 그달리야를 유다 땅의 지도자로 세웠으나, 반역의 무리들이 그달랴와 그와 함께한 유다 사람들과 바벨론 사람을 학살합니다. 전적으로 불능하고 부패한 인간 잔상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다윗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은 파기되고 마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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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5장은 마지막 27-30절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간 유다왕 여호야긴이 회복되는 것으로 결말을 맺습니다. 희망의 불씨를 남겨 놓는 것입니다. 그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예루살렘과 유다를 회복시키십니다. 일차적으로는 포로생활 70년 이후 예루살렘과 유다로 귀환해서 제2성전을 재건하는 것에서 성취됩니다.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며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참 성전을 재건하시고 하나님의 교회가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처이며, 재건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