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소개
바른 교회 소개
🍊

시편

아래 두가지 영상을 꼭 시청하십시오. 지금까지 시편에 대한 이해와 해ㄴ석에 바른 변화와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시편 그리스도 중심 읽기 개론

모세 오경을 따라 5권으로 분류된 시편 150편 중에 대부분은 다윗이 기록하였습니다. 다윗이 73편, 모세 1편, 고라 자손 11편, 아삽이 12편, 솔로문 2편을 지었습니다. 50편은 작작 미상입니다. 시편을 읽고 묵상할 때 바로 내 자신의 삶에 일대일 대입을 해서 이해하고 적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시를 지은 저자의 위치, 상황, 인물을 고려한 뒤 그의 입장에서 시편을 이해하는 선단계가 필요합니다.

시 1

시편 전체의 서론격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은 히브리어로 “복되어라” 입니다. 산산수훈의 “복 있는 자는~” 으로 시작하시면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과 평행을 이룹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 즉 말씀을 즐거워하며 항상 묵상하는 자들이 복 있는 자라고 선언합니다. 그 자가 의인이며 의인들의 길을 가는 자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따라 가는 삶은 신자의 삶의 요체입니다. 성경을 함께 꾸준히 읽어 가고 있는 여러분이 “복 있는 사람” 임을 믿습니다.

시 2

“메시아 시편” 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걸 제왕시라고 분류합니다. 이 시편을 신자 개인의 삶에 대입해서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의 큰 그림에 맞춰 메시아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적용하면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찬양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우리의 왕 되신 주의 이름을 높이는게 우리의 적용이 될 것입니다.

시 3

대부분의 시편에는 제목이 있습니다. 제목 역시 성경의 일부분입니다. 읽을 때 빠뜨리지 말고 읽습니다. 제목을 통해 시편 저자의 상황과 시편의 용도등을 알려 주는 단초가 되어 이해에 큰 도움 됩니다.
다윗이 압살롬을 피할 때 지은 시라는 표제가 있습니다. 그 상황을 기억하며 바탕에 두고 시를 이해한다면 더욱 풍성하겠죠.

시 4

3편과 같이 압살롬의 반역을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4편은 그 환난에서 벗어난 후에 회고한 시로 추정됩니다. 8절은 유대인들의 저녁의 기도입니다. 우리도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이 시편을 우리의 기도로 삼을 수 있겠죠.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8)

시 5

하나님은 악일을 미워하시고 정죄하시며 멸하시고 의인은 보호하시고 복 주시는 분이심을 고백하며 간구하고 있습니다.
다윗을 대적하는 자는 일반적 의미의 원수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름부은 왕 (메시아)로 세우신 황을 대적하는 세력입니다. 메시아를 대적하는 세력이죠. 그러므로 이 원수는 대적 마귀이며 적그리스도를 모형하는 것입니다. 시편의 원수 멸하기를 간청하는 기도는 구속사의 의미에서 이해할 때 제대로 파악됩니다. 창세기 3:15절의 원시복음이 진행되는 상황입니다. 뱀의 후손 사탄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일이죠.

시 6

시편에 나오는 7대 참회시 (6, 32, 38,51, 102,130, 143) 중 첫번째 시입니다. .참된 회개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자신의 죄로 침대보를 적시며 뼈가 떨리는 고통을 합니다. 죄를 얼마나 슬퍼하고 아파하며 뉘우쳤으면 이렇게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를 정죄하는 악인을 물리치는 선포는 회개 기도하는 성도의 모델입니다.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죄를 뉘우치고 아파하지만 돌이킨 후에는 죄 사함의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사탄이 우리의 죄를 가지고 끊임없이 정죄하는 목소리와 양심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승리를 외쳐야 합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시 7

베냐민 구시의 말로 인해 억울함에 빠지 다윗이 자신의 의로움과 정당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의를 주장했던 욥의 모습과 교차합니다. 사도 바울도 그의 평생의 사역에 대한 떳떳함과 선한 양심을 에베소 장로들에게 주장했던 것과도 교차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와 악인이 받을 심판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 8

히브리서 기자가 시편 8편을 인용하며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하였습니다. 그 이전에 이 시편은 창세기 2장을 떠 올립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에덴을 창설하신 후 아담에게 다스리게 하신 것의 복기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높은 지위, 위엄과 영광을 노래합니다. 인간의 왕적인 지위를 말합니다. 원래 인간이 가졌던 인간의 모습입니다. 타락으로 인해 잃어버렸으나 예수 그리스도가 참 인간으로 이 형상을 회복하셨고 우리는 다시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자입니다.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는 이 지위 이 영광을 영원토록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아담→ 이스라엘 → 예수 그리스도 → 성도

시 9

9편은 시편 10편과 짝을 이루는 하나의 시편입니다. 9편은 감사시라면 10편은 탄식시입니다. 의인의 구원과 악인의 심판을 호소하면서 그렇게 하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로서 승리를 거두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시 10

탄식시입니다. 분명 시인이 악한 자에 의해 지속적인 환난 가운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악인들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부와 권력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일 것입니다. 악인의 악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이 마음에 없는 자는 못할 것이 없습니다. 거짓과 포악과 살인과, 입술의 저주로 가득합니다 (6, 7,8). 자신이 악을 행할지라도 하나님이 마친 못 본척 넘어가시듯 잊으시고 얼굴을 가리시고 보지 않으신다는 (11, 13) 대담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12~18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공의와 그분의 왕 (재판장) 되심에 호소하며 악한 자를 심판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 세상도 면밀히 보면 악인이 마음껏 악을 행해도 처벌받지 않고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입니다. 악한 자가 가난하고 연약한 자를 압제합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폭력을 행사하고 살인도 불사합니다. 그들에겐 하나님이 없습니다. 자신의 권력과 명예와 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하늘 위에 너무 먼 것 같습니다. 성도는 그래서 탄식합니다. 공의의 하나님이 세상을 정의와 공평으로 심판해 주시기를… 하나님의 최후 심판이 있기에 우리는 믿음의 인내를 하며 주를 신뢰하며 이 땅에서 의로운 삶을 살려고 몸부림 칩니다.

시 11

다윗이 악인에게 고통을 당할 때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는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쓴 것인지는 나오지 않지만 사울에게 고난 당한 어떤 사건일 수도 있겠지요.
7절에 “정직한 자가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라는 시인의 고백은 정직이 하나님께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닫습니다. 12편과도 연결되지만, 악한 자는 거짓말과 속임수를 밥 먹듯 하지만, 의인은 ㅌ입술과 마음에까지 정직을 지켜나가려고 애쓰는 자입니다.
이 시는 까닭없이 나를 핍박하는 자로 인해 고통 당할 때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기도입니다.

시 12

악인의 거짓된 말로 인해 고통당하는 상황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에서 제 9계명이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입니다. 타인을 모함하거나 거짓 증거하는 것은 한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악인의 특징은 아첨, 자랑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 말의 중요성을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참 인간이신 예수님의 말씀은 순결하며, 진실되며, 거룩하며 온전하였습니다. 경건한 자는 말의 사용에서부터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거룩의 귀한 영역입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말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반사하는 일입니다. 늘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시 13

원수의 공격에 오래동안 고통당하는 상황에서 계속 침묵하시는 하나님께 탄식하는 시입니다. 다윗의 탄원시에서 우리는 욥이 고통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기도와 결을 같이 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악한 자가 형통하면, 그들은 예수 믿는 자를 조롱할 것입니다 (4). 5-6절은 시인의 상황이 해결되어서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을 전제로 미리 찬양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시 14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자, 인간의 전적 부패함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간구합니다.

시 15

하나님을 의지하며 구원을 기뻐하는 경건한 성도의 말과 행위가 어떠해야 함을 노래합니다. 성경은 이자 놀이, 공동체의 지체들에게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들은 이자를 받지 못하도록 가르쳤습니다. 물론 오늘날 은행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합법적으로 이자를 받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동기입니다. 돈을 빌리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을 상대로 이자를 받아 이익을 취하는 것은 착취이며, 탐욕이며 자비의 결핍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시 16

11절 말씀이 큰 감동을 줍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 흔히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밥먹고 합시다” 라고 말합니다. 요즘 세상 모든 사람들은 즐기기 위해 올인하며 사는 듯 보입니다. “다 즐기며 살자고 하는 데 우선 즐기고 봅시다” 가 대세입니다. 시편기자는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이 주의 앞에 주의 오른쪽에 있음을 노래합니다. 충만하고 영원한 최고의 향락은 주와 함께 거하는 데 있습니다.
시편 기자인 다윗은 2절에서 자신의 복은 오직 주님밖에 없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이 나의 복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16:8-11절 부분은 사도행전 2:25-28절에서 인용되었습니다. 이 부분을 조금 어려운 말이기도 하지만 “예표적 메시아의 기도” 라고 부릅니다.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시 17

시인의 의로움을 주장하며, 그것을 근거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악인의 손에서 건져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악인의 형통함 (14) 을 목도하며 고통중에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판하시고 자신을 구원해 주실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기까지 겪었던 고난과 죽음의 위협, 왕이 되고 나서도 경험한 반역의 반역등 언제나 악한 자들에 둘러싸여 살았습니다. 그런 다윗의 삶을 이해할 때 시편의 구절 구절들이 와 닿습니다.
우리의 구주께서도 하늘 영광 다 버리시고 지상에 사시며 죽기까지 고난으로 점철된 인생이었고, 악인에게 둘러 싸여 그들의 대적으로 몸서리칠 정도로 고통 당하셨음을 봅니다. 그분의 고난당하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음에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시 18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의 시편을 읽을 때는 다윗이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왕으로서인지, 하나님을 신앙하는 경건한 신자로서인지를 구별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문자적으로 다윗을 오늘의 나의 삶의 정황에 대입시켜 적용하는 것에는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우선 18편은 시 제목에 나와 있든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들과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신 날에 대해 쓴 다윗의 노래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시를 읽으면 그 의미들이 더 잘 와 닿습니다.
시 18편은 확실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위에 세운 왕의 직분자로서의 시입니다. 자신의 의로움과 완전한 순종을 주장하는 20-24절은 왕되신 그리스도의 완전한 율법 준수와 순종을 미리 보여주는 표시(예표)입니다.
다윗의 원수는 이스라엘의 원수이며 하나님 나라의 원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원수 사탄과 그의 자식들을 가리킵니다.
43-50절 부분은 다윗 왕국을 통해 일차적으로 부분적으로 일시적으로 성취되지만 궁극적이며 완전한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질것입니다. 열방이 주께 돌아와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구속 사역과 복음 전파를 통해 현재 진행 중이며 종말에 완성될 그림입니다.

시 19

제가 참 좋아하는 시편입니다. 저는 말씀을 참 사모합니다. 말씀을 배우고 말씀의 체계인 교리와 신학을 공부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단순히 지적 욕구를 충족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혜롭게 하고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하며 거룩하게 하며, 죄를 멀리하게 하는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7-9,12-13).
19편은 하나님의 말씀의 탁월함과 기능을 찬양하고 그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함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금보다 더 사모하고, 음미하고 말씀을 지키는 것이 말씀에 대한 신자의 태도입니다.
14절은 찬송의 가사로 탁월한 고백입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공교롭게도 19 앞에 1을 붙이면 119인데, 시편 119편도 말씀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십니다. 창조시에 말씀으로 창조하신 창조의 매채입니다.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자신의 말씀과 자신의 영이신 성령으로 교회와 신자를 다스리십니다. 시 19편에 말씀에 대한 모든 내용들이 예수 그리스에게서 온전히 드러납니다.

시 20-21

짝이 이루는 제왕시입니다. 하나님께 왕 (다윗 왕) 이 전투에서 승리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21편은 20편의 기도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입니다.

시 22

시인은 무고하게 악인 (대적자)에 의해 극한 고통을 당한 상황 속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영혼에 있는 고통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탄식하고 탄원하고 있습니다 (1-21).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 가운데 영혼의 깊은 감정과 고뇌까지도 토로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22절부터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할 것을 소망하며 기뻐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앞에 모든 족속이 모여 예배하는 인류의 완전히 회복된 구원을 바라보며 선포합니다 (22-31)
22편은 메시아의 수난과 죽음을 예언한 시편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신약의 복음서 기자들이 이 시편을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사건을 묘사하는데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마태복음 27장과 마가복음 15장을 보십시오.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마 27:35→22:18)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마 27:39 → 22:7)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마 27:43→ 22:8)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 27:46→ 22:1)
무고하게 고난당하는 성도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탄원하는 시입니다. 시인이 당하는 고통은 다윗이 사울왕과 압살롬, 요압등 그의 대적들로부터 받은 평생의 고난을 말씀을 통해 알면 이해가 됩니다. 이 정도로 악인으로부터 받는 고난은 일반적 성도가 당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박해와 지금도 이슬람 무장 폭력 단체, 힌두교, 북한등에서 박해를 받는 성도들은 이 시편이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을 것입니다.다윗의 기도는 성령의 감동 가운데 메시아의 십자가의 고난을 예언하는 내용을 담게 되었고, 신약의 복음서 저자들은 이를 무고하게 고난받은 예수님의 죽음을 묘사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또한 이 세상 가운데 무고하게 세상으로부터 악한 자로부터 고난당할 때 이 기도를 동일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 23

다윗은 주께서 함께하심으로 여호와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노래합니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목자’ 는 왕의 보호를 상징하는 메타포로 흔하게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지키고 보호하며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다윗 자신도 목자로서 양떼들을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추위로부터 지키고 보호하고 인도하였죠. 임마누엘의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세상 가운데 살 때 우리의 영혼을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시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환난 가운데서도 ‘안위’ 해 주십니다.
5절에서 주께서 원수의 목적에 상을 차려 주시며 함께 식사하는 장면은 왕이 베푸는 식탁 앞에서 왕과 교제하며 기뻐하는 모습이 떠 오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자기의 원수들이었던 형들을 용서하고 그들에게 식탁을 베풀고 그들과 함께 화해의 기쁨을 누린 장면이 교차됩니다. 지금 우리는 성찬을 동일한 은혜를 누립니다. 성찬은 제사도 아니고 슬픔을 기억하는 날이 아닙니다. 성찬을 식사이며 잔치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살이 찢기시고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마시며 주께서 차려주신 식탁에서 왕와 함께 기쁨을 주의 백성들이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시 24

기럇여야림에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온 사건을 기념한 시입니다. 삼하 6장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온 세계를 창조하신 우리의 하나님이 영원토록 찬송받고 영광받으실 영광의 왕이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이 창조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 복을 누리는 장면 (2-6)을 통해 이것이 우리가 가진 성도의 복이며 세상에 전할 복음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시 25

예배에 참석한 예배자 개인이 각자가 처한 여러가지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탄원시입니다. 이 시는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첫 구절을 연속적으로 구성한 시입니다.
그 예배 가운데는 우리가 회개의 기도를 하듯 하나님께 죄 용서를 간구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7).

시 26

배경은 순례자가 성소에 들어갈 때 부르는 입당송의 한 부분이라는 견해가 타당해 보입니다.
시인 (다윗) 은 자기 백성들과 함께 예배하는 성소를 사랑하였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 8절).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였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자신의 무죄와 의로움을 주장하며, 또 의인의 모임에 있기를 다짐하며 (9-11), 예배 가운데 죄 사함의 은혜를 구합니다 (11).
이 시편은 오늘 우리의 예배가운데 예배자로서 적실한 내용입니다. 시편은 모두 이스라엘과 회당의 예배에서 불려진 찬송인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의 예배의 입당송으로도 좋은 찬송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로 모이는 예배를 사랑함이 경건한 신자의 부인할 수 없는 특성입니다.

시 27

원수들, 악인들에게 둘러싸여 큰 위협과 두려움 가운데 처해 있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 구원해 주시기를 간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라고 자신을 향해 명령함으로 끝맺습니다.
4절: 다윗은 하나님께 바라는 한 가지 일을 구하는데, 부와 명예와 장수와 쾌락이 아니라 “평생 성소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 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함은 하나님의 ‘뷰티’ 와 그분과의 교제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분과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과 이것을 누립니다. 개인적으로든 교회로서든 말이죠. 나는 이 세상의 “것들 (things)” 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들을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의 아름다움, 영광, 존귀하심, 능력과 같은 성품과 존재 자체를 사랑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내 평생에 바라는 한 가지 일” 인지 깊이 돌아봅니다.

시 28

자신의 간구와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시기를 간절히 탄원하는 시입니다. 악인들을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하여 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4). 6절부터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이미 응답하신 것을 상정하고 여호와를 찬송합니다 (6-9).
여기서 우리는 “기도의 중요한 모델” 을 또 다시 발견합니다. 우리의 고통, 억울함, 괴로움등을 토로할 때에 기도의 마침은 이미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응답하셨음을 신뢰하고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8절에서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가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은 시인이 이스라엘의 왕 (왕의 후손) 임을 말해 줍니다. 다윗의 후손이신 왕되신 예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이 시편을 자신의 시편으로 많이 묵상하고 부르셨을 것입니다.

시 29

주의 백성들을 예배로 초청하며 ‘여호와의 소리’ 가 피조 세계를 통치하시는 것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가 영원히 왕 되심을 선포하는 노래입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과 ‘여호와의 소리’ 로 창조하신 것들을 여전히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합니다.

시 30

시의 타이틀이 성전 낙성가입니다. 다윗의 때에는 성전이 없었습니다. 이는 이 시편을 성전 시대에 편집하여 제목을 붙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3절에서 다윗은 놀라운 계시적 고백을 합니다. 시인은 자신이 죽은 자들이 거하는 스올에서 살리셨다고 고백합니다. 한글 사도신경에 생략된 지옥 강하 (지옥에 내려가시고) 와 같은 내용입니다.
원수에 의해 죽임당하지 않고 구원하여 주심에 감사하며 찬송하는 시입니다. 분명 다윗은 자신이 죽음에서 살림받아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게 되는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11절: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제자들과 그를 사랑하는 많은 자들이 슬퍼했지만,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고 기쁨의 춤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인생의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자의 삶은 이 땅에서 삶 전체가 슬픔일지라도 최후에는 춤이 되고 기쁨이 되는 인생입니다. 주와 함께 사는 이 땅에서의 신자가 경험하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이 소망 안에서 마주할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시 31

역시 대적들로 인해 고통 중에서 탄식하며 구원을 호소합니다. 대적들은 시인을 죽이려고 매복해 있고 시인은 일생을 슬픔과 탄식으로 보내고 있다고 부르짖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뼈가 쇠할 정도’ 이겠습니까?
시인의 고통은 일반 신자들이 자신의 욕심이나 지혜의 부족, 잘못된 선택과 같은 자신 스스로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적국의 압제나 핍박 가운데 있는 국민들도 유사한 고통을 지나갈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공감하기에는 동떨어진 고난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진정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유사한 고통을 영적으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이 경험한 고통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그분의 일생이 슬픔과 탄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시 32

7대 참회시 가운데 하나입니(6, 32, 38,51, 102,130, 143). 죄사함의 복에 대해서 감사하는 시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죄 가운데 있을 때의 고통을 표현하며 죄를 용서받은 후의 환희를 노래합니다. 죄를 얼마나 진실되게 아파하고 통회하고 있는지를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은 상태에서는 신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죄와 의에 대한 새로운 성향 (desposition) 과 마음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신자의 삶을 회개하는 삶입니다.

시 33

시 34:15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도다"
내 마음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내 모든 마음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이 큰 위안을 줌과 함께 두려움이 됩니다. 그래서 마음 가짐이 참으로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바라고 그를 즐거워하며 (18,22, 20, 21), 마음에 간사함이 없으며 (32:2) 죄로 인해 아파할 때 (33:3-5) 하나님께서는 그런 마음을 가진 자 (경건한 자)를 복되다 (32:2, 33:12) 하십니다.

시 34

제목은 이 시의 저작 동기와 시기를 말해 줍니다. 삼상 21:10-15 부분입니다. 다윗이 가드 왕 아기스 앞에서 미친 체해서 위험에서 벗어납니다. ‘아비멜렉’은 가드 왕의 별칭일 것입니다. 위험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여호와께 피하고 숨는 것이 안전함을 노래합니다.
7절: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있음이 놀랍습니다. 성경은 하늘의 보이지 않는 천사가 성도들을 지키고 있음을 자주 말합니다. 얼마나 든든합니까? 마치 대통령이 경호원을 대동하고 다니듯, 우리는 하늘의 천사를 경호원으로 데리고 다닙니다 :)
18절: 악인으로 인해 마음이 낮아지고 상한 자, 주님이 아니면 의지할 것 아무 것도 없이 철저히 낮은 자, 자신의 죄로 통회자복하는 자,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사랑하시며 구원하십니다. 물론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 앞에서 이런 마음이 나타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20절: 다윗의 노래는 성령의 감동 가운데 메시아를 예언한 말씀이 됩니다. 출 12:46절과 결합해서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 양이시며,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고난받은 의인임을 강조합니다.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뼈가 꺽이지 않고 보존되셨습니다 (민 9.12; 요 19.36).

시 35

사울과 그의 일당들에게 쫓기는 것 같은 상황에서 여호와께 구원을 호소하며 악인의 심판을 간구합니다.
4-8절에는 천사의 역할을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이 악인의 복수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며 개인적인 복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이기에 정당하며, 믿음에 기초한 호소이기에 정당한 기도입니다. 마치 악한 사회에서 정의가 구현되기를 위해 악한 자들이 심판을 받아 벌을 받기를 원하는 것과 같습니다.
13-14절: “악을 선으로 갚고,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 것” 은 성도들의 원수에 대한 태도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셨고, 주님의 십자가가 원수를 위해 목숨을 내어 놓신 원수 사랑의 극치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원래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자들이었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17-28절의 기도는 욥의 기도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무고하게 고난당한다고 여기는 욥이 자신의 의로움을 정당화하며 하나님께서 호소하였습니다.
이 시편은 성도들이 악한 자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갖은 공격을 가할 때 어떻게 기도해야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시 36

악인이 죄를 담대하게 짓는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으며 그들의 죄가 절대 심판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악인은 잠자리에서도 죄를 지을 생각을 하는 자들입니다 (4).
그런 가운데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의 풍성함을 찬송합니다 (5-8). 생명의 주가 마음이 정직한자, 의로운 자를 위해 악인을 쫓아내고 멸하실 것에 대한 확신으로 시를 마칩니다 (9-12).
이 시편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악인의 공격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해 주실 것을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이 시편을 ‘악한 세상’, 주변의 악한 자들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죄를 지으며 당당하게 사는 모습, 그들이 오히려 더 잘 사는 것 같은 모습을 바라볼 때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 37

악인의 형통을 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나이 많은 노인이 젊은이에게 가르쳐 주는 지혜시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여호와께서 악인은 멸하시고 의인은 영원히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라는 소망을 줍니다.
반복적으로 나오는 구절과 강조는 “의인이 땅을 차지한다는 것” 입니다. 온유한 자, 주의 복을 받은 자, 정직한 자가 땅을 차지합니다. 예수께서도 팔복수훈에서 “온유한 자가 천국이 저희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땅은 종말론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천국을 말합니다. 지금은 예수 안에서 영적으로 이미 땅을 차지했지만 종말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이때 악인은 하나님 나라에서 쫓겨나 영원히 주의 나라 밖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울게 될 것입니다.
한편 이 시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을 끝까지 구원으로 이끌며, 일시적으로 실패할지라도 영원히 보호하실 것을 말합니다.
적용으로 그러니 악을 떠나 선을 행하며 살라고 촉구합니다 (27).

시 38

7대 참회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6, 32, 38, 51, 102,130, 143).
죄를 참회하며 죄로 인한 고통을 표현, 하나님께 용서로 구원해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죄 사함을 구원함으로 기도). 이 시는 우리에게 진실된 회개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참된 회개로 이끕니다.

시 39

인생 말년에 지난 삶을 돌아보며 인생의 덧 없음과 짧음 앞에서 이 땅이 아니라 주께만 소망을 두겠다고 고백합니다. 전도서를 기억하게 하는 표현들이 나옵니다 (4-7). 또한 자기 삶의 고통과 고난을 하나님의 섭리로 인정합니다 (8-10).
다윗은 눈물이 많은 왕이며 성도이며 기도자입니다 (12).
12절에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헛된 인생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은 인생에서 오직 주께만 소망을 두고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로 살아가는 참 소망을 가진 자로 살아갑시다.

시 40

지난 날의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을 회상하여 현재의 고난 가운데서도 구원하실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시편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시인은 여호와에 대한 찬양을 멈추지 않습니다. 종교적 형식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원하시는 주님을 말합니다 (6). 시인의 찬양은 홀로 하는 찬양이 아니라 공동체 가운데 (회중), 예배 가운데 여호와의 성품과 구원하심과 은혜를 찬송하고 있습니다. 이는 역시 우리가 교회로 모여 예배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우리의 구원에 중요한 일인지를 보여 줍니다.

시 41

악인은 시인(의인)이 병들고 죽기를 간절히 원하는 자입니다. 가까운 친구가 대적자입니다 (9).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열두 제자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이런 자였죠.
다윗이 저자인 이 시는 이스라엘의 기름부음 받은 왕으로서 대적자에게 받는 고난을 그린 시입니다. 악인에게 보응해 달라는 간구나, 주 앞에서 영원히 세워달라는 기도등 다윗 왕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형하는 인믈로 보면 다윗의 고난과 기도의 내용이 더 잘 이해가 됩니다.

제 이 권

42편부터는 시편의 제 2권이 시작됩니다. 저자도 다윗에서 ‘고라 자손’ 으로 바뀝니다.

시 42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나 현재는 뵙지 못한 상황. 그래서 그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해 합니다 (1-2).
하나님의 부재를 세상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이는 성전이 파괴된 후 바벨론의 포로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그 전에 이방인의 나라에 압제를 당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을 상정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재한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불안해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찬송할 것을 촉구합니다.

시 43

42편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린 것 같은 상황에서 부르짖습니다.
42, 43편의 적용 구절입니다.
시편 43: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 속에 언제나 신실한 남은 자, 경건한 자는 이스라엘의 반역과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을 때 이런 기도를 올렸습니다.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민족의 죄로 인해 그 안에서 받는 버림과 죄의 형벌로 인한 고통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들어서, 원수의 손을 들어서 자기 백성들의 죄악과 반역을 심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은 지난 2천년 교회사 속에서도 지금 한국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언제나 참된 믿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자들은 탄식하며 이 시인처럼 부르짖습니다.

시 44

시인은 아마도 가나안 땅의 이방 족속들을 몰아내시고, 그 땅을 조상들에게 주었던 때를 회상하며, 현실의 고통에서 구하여여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여러 민족 중에 흩으시고 넘겨 주셨다는 것은 앗수르나 바벨론에게 침공을 당하고 패배하여 포로국에 끌려 간 상황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고통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말하며, 더 이상 자신들의 고난과 압제를 내버려 두지 마시고 구원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이 기도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심판을 받아 바벨론에 포로로 가게 된 상황에서 고통받는 의로운 자, 한 경건한 신자가 민족의 고통을 끌어하고 하는 탄식시로 보면 시의 내용이 이해가 잘 됩니다.
이 시편을 예배 때 부른다면,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과 그 때의 복을 기억하며 자신들의 고난의 원인을 돌아보며 회개하게 할 것입니다.

시 45

시의 제목이 ‘사랑의 노래’ 입니다. 왕의 결혼식에 대한 찬양입니다.
왕에 대한 찬양과 왕비에 대한 아름다움, 존귀와 영광을 순서대로 찬양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에 대한 찬가는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왕되신 그리스도에 대한 찬양으로 이어집니다. 곧 이 찬양은 신약의 성도가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할 때 예배 중에 적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편입니다.
왕이 가까이 하는 여인들, 왕들의 딸, 왕후의 존귀함에 대한 노래도 나오는 데 시의 분위기와 내용이 ‘아가서’ 와 유사한 것을 느낍니다.
6-7절은 히브리서 1:8-9절에서 저자가 이 구절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직접적으로 그리스도 메시아를 예언하는 시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서 1:8–9 (NKRV) 8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9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 하였고

시 46

본 시편은 시온을 하나님이 지정하신 특별한 도성, 시온을 통해 세상에 복을 주시는 곳으로 축복하고 있는 찬양입니다.
하나님의 성: 시온, 교회, 하나님의 나라, 회복될 에덴 동산, 새 예루살렘, 새 하늘과 새 땅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
하나님께서 교회 가운데 함께 하심 → 예수 그리스도의 임마누엘의 약속 (성육신→ 공생애 → 성령 → 재림시 영원히 하나님의 성, 새 예루살렘에서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그의 성소 가운데 함께 하시므로 우리가 두려워 하지 않으며 그를 피난처 삼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교회야 말로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처소가 되며 세상이 교회를 통해 (교회가 전하고 선포하는 복음을 통해) 복을 받게 되는 통로입니다.
교회로 함께 모이는 것을 사모함은 그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시 47

온 땅과 하나님의 백성의 왕되신 하나님을 찬송할 것을 촉구하는 시입니다.

시 48

이 시편도 46편처럼 시온의 영광과 그 가운데 높임 받으시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시온은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 가운데 성취되었고 교회는 시온의 현재를 누리는 곳입니다. 동시에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의 도성, 새 예루살렘,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는 곳입니다.
교회는 우리 하나님의 성이며 (8), 교회가운데 찬송받으실 이시며, 우리가 즐거워할 분이시며, 우리가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시 49

온 세상 사람들에 대해 모든 인간은 동일하게 죽는다는 사실을 상기 시키며 인생의 허상, 허무와 결말을 가르칩니다. 잠언의 많은 주제들, 전도서의 주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히 9:27에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으니” 의 말씀을 모든 인생이 깨닫는다면 지금의 삶이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 지혜와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20절에서 결론적으로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우리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형상의 얼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우리들은 영원히 빛나는 존재들입니다! 창조주를 알고 죽음이후 창조주에게로 돌아감을 알고 확신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멸망하는 짐승이 결코 될 수 없음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재물을 의지하거나 부유함을 자랑하지 말고 (6), 건강, 장수에 목숨 걸지 말고, 죄를 멀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갑시다.
기회가 되면 이 시편을 가지고 복음전도 설교를 해 보고 싶네요~

시 50

시인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형식으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의 삶을 이야기 하고, 언약 밖의 악인들에 대한 책망과 심판을 말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그들이 마땅히 행해야할 바인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배할 것을 촉구합니다 (23).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을 기억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 삶이야 말로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의 자연스러운 삶이 될 것입니다.

시 51

7대 참회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6, 32, 38, 51, 102,130, 143).
제목이 이 시의 배경을 잘 말해 줍니다. 다윗의 참회는 밧세바와 동침한 후 자기 충신 우리아를 교사한 끔찍한 범죄 뒤에 나단의 지적 (하나님의 책망) 을 들은 후입니다 (삼하 12:1-14).
그의 참회는 사투입니다. 이런 완악하고 끔찍한 죄 조차도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는 자비가 더 놀랍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에서 죄 사함을 간구하며 하나님과의 회복된 관계와 임재 가운데 살아갈 것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다윗의 기도는 우리의 참회 기도의 전형이 되기도 합니다.
늘 회개하고 죄와 씨름하는 우리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의 은혜와 확신을 누리며 사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 의 핵심은 ‘아무 것도 한 것없이 태산같은 우리의 죄를 사함받는 것’ 입니다. 이로 인해 의롭다 여김 받으며 (칭의),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입양), 거룩하게 되고 (성화),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영화).

시 52

〔다윗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에돔인 도엑이 사울에게 이르러 다윗이 아히멜렉의 집에 왔다고 그에게 말하던 때에〕
제목이 이 시의 배경을 잘 말해 줍니다. 사무엘상 21:1-7절의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위기에 처해 추격당하는 다윗에게 아히멜렉이 선을 행한 것(다윗과 그의 무리들에게 진설병의 떡을 내어 준 것때문에 아히멜렉 뿐만 아니라 제사장 전부가 학살 당하는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에돔인 도엑은 ‘악인’ 의 전형입니다. 의인을 거짓 증거하고 죽이려 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재물과 힘과 꾀를 의지하는 자입니다. 그런 자에게 당하면서도 성도로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주의 이름을 사모하리라는 결단으로 시를 맺습니다.
이 시편 역시 악한 세상에서 악인에 둘러 싸여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기도와 찬송으로 불릴 수 있습니다.

시 53

시편 14장과 동일한 시입니다. 성경적 인간론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세상에서 의인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죄와 허물로 죽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세상의 인간에 대한 판단입니다. 로마서 3:10-12 에서 바울이 인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아 죽음의 상태입니다. 그 가운데 구원받은 시온의 이스라엘 (성도) 들은 구원으로 인해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6).

시 54

〔다윗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노래, 십 사람이 사울에게 이르러 말하기를 다윗이 우리가 있는 곳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던 때에〕
제목을 통해 삼상 23:19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더 강한 자, 권력자에게 약한 자, 힘 없는 자를 고자질 한 겁니다. 자기들의 이득을 위해서입니다. 세상의 논리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이 원수를 갚아주시고 심판하실 것을 소망하며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 구주께서도 자신을 대적하는 원수들에 대해 동일한 삶을 살아가셨고, 이 자세가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시 55

다윗을 치는 대적자는 그의 가까운 친구, 동지, 신하, 백성들의 배신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고통이 더 고통스러운 것이빈다. 그는 그 상황에서 완전히 벗어나길 갈구했습니다. 그의 영혼이 얼마나 침체했고, 우울했으며, 벼랑 끝에 서 있었는지를 감지합니다. 비둘기가 되어 날아가고 싶을만큼….
시인은 하나님의 정당한 심판을 탄원합니다. 그들의 죄악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루도록, 하나님의 공의에 자신을 맡기며 하나님께 피합니다.
13절: 다윗의 배신자는 그의 동료, 친구, 친우입니다. ⇒ 예수께서 그의 제자 중 가룟 유다의 배반을 예언한 구절입니다 (요 13:18).
22절: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인에게 동일한 권면을 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를 돌보심이라” (벧전 5:7)
예수의 대적자들은 자기 백성들 유다백성들이었고,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며 인도하던 지도자들인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이었습니다. 가까운 제자 가룟유다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시편 55편을 읊조리며 고난을 이기셨을 것입니다.
저에 경우도 저를 더 큰 고통에 빠뜨리는 건, 믿었던 사람, 가까운 친구와 지인, 저를 그토록 좋아하며 따르던 사람들의 갑작스런 반대, 비난과 단절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 시편은 우리 구주의 시편이면서 우리의 시편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시편을 주셔서 우리의 모든 삶의 정황 속에서 경험하는 영혼의 상태를 묘사할 수 있고 하나님께 정당하게 바르게 토해내며 기도하고 찬양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시 56

시편 34편과 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다윗이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해 블레셋의 가드왕 아기스로 피해 갔다가, 신하가 고발하자 미친척 하고 침을 흘리며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일을 겪고 쓴 시입니다 (삼상 21:1-10)
그때의 고통에 대해 삼상 21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여기서 다윗의 고통의 깊이와 크기를 가늠하게 됩니다. 8절의 표현이 기가막힙니다. “자신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해 달라고 간구하고, 자신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아달라” 고 그림 언어로 표현합니다.
그런 중에 그는 여전히 하나님만을 신뢰 (의지) 하며, 자신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을 믿으며 감사를 잊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비탄시 (탄식시) 이기에, 신자가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는 세상에서, 악한 사람들로부터 무고하게 고난 당할 때 아뢸 수 있는 노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먼저 이런 고난 당하셨기에 우리의 모든 고통을 동정하실 수 있는 분이십을 기억하고 주를 의지해야 겠습니다.

시 57

제목이 사울을 피해 굴에 있던 때에 기록한 시라는 정보를 제공해 줍니다. 이때 사울이 뒤를 보고 들어가서 죽을 수도 있었으나 다윗이 살려 주었습니다 (삼삼 24:3).
5절과 11절이 동일구가 반복되면서 시를 구성합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하나님께 이런 시와 찬송을 올릴 수 있을까요? 그의 시를 읽다보면,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형하는 인물임을 알고 메시아의 입술이 되어 말하고 고백하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듯 합니다.
다윗만큼 하나님과 이토록 친밀함 속에서 영혼을 토로하고 의지하며 기도하고 찬송한 인물은 없었습니다.
다윗이 영광받기 전 이토록 고난의 삶을 산 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고난을 미리 보여주는 그림자였기 때문입니다.
시편을 읽으면서 나도 다윗처럼 믿음의 사람, 찬송의 사람, 기도의 사람이 되자보다 다윗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인격과 사역을 바라보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더 사랑하며 의지하게 됩니다.

시 58

공의로 다스리지 않는 통치자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1-2), 악인의 행위와 악한 특질에 대해 열거합니다 (3-6). 6절부터 10절까지 하나님이 공의로 악인을 심판해 달라는 간구를 합니다. 10-11절에서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것을 확신하며 의인이 누릴 결과를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공의로 심판하신다는 사실이 죄악된 세상의 악과 고통을 경험하며, 바라보며 신음하는 성도에게 큰 위로입니다. 사랑의 하나님만을 강조한다면, 우리는 결코 참된 위안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시 59

제목이 주는 배경은 “사울이 사람을 보내 다윗을 죽이려고 그 집을 지킨 때에” 입니다.
사무엘상 19:11 사울이 전령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어 그를 지키다가 아침에 그를 죽이게 하려 한지라 다윗의 아내 미갈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이 밤에 당신의 생명을 구하지 아니하면 내일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다윗이 당하는 고통은 일반인이 당하는 고통과는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분명 이스라엘의 왕 (기름부음 받은 자) 으로서 당하는 고난입니다. 이 고통을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로서 당하는 고통과 연결시키지 않으면 다윗이 많은 탄식시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뱀의 후손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사건은 십자가 이전에도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고, 주님 오실 때까지 그럴 것입니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머리를 상하셨지만, 깨진 머리로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물고 다닙니다. 재림시에 완전히 멸망당할 것입니다.
시편 59:4 내가 허물이 없으나 그들이 달려와서 스스로 준비하오니 주여 나를 도우시기 위하여 깨어 살펴 주소서
그가 사울 왕에게 당하는 고통은 분명 다윗의 죄와는 상관없는 것입니다. 사울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자행된 죄악때문입니다.
사울의 악행이나 바리새인, 서기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예수께 대한 악행이 평행을 이룹니다.
시편 59:16–17 16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17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다윗의 이 노래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시 60

〔다윗이 교훈하기 위하여 지은 믹담, 인도자를 따라 수산에둣에 맞춘 노래, 다윗이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소바와 싸우는 중에 요압이 돌아와 에돔을 소금 골짜기에서 쳐서 만 이천 명을 죽인 때에〕
⇒ 제목이 있는 시편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시를 기록한 배경에 대한 정보가 이해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 시편에는 목적까지 제공하네요. ‘교훈’ 이라고요.
제목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분명 성령의 감동 가운데 제목까지도 정경에 포함된 말씀임을 믿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원어 성경에는 각 시편의 1절이 제목입니다. 번역성경은 제목이후 1절을 붙이지만 말이죠.
사무엘하 8:13–14 (NKRV) 13 다윗이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이고 돌아와서 명성을 떨치니라 14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전쟁에 나가기 전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어떻게 하나님께 승리를 위해 기도해야 할 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전쟁의 승패가 여호와께 달려 있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이 전쟁을 이끄시고 대적을 물리쳐 달라는 탄원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사탄과의 영적 싸움을 치루기 전,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세상의 가치관과 철학, 사상, 이념과 주의등과 싸울 때, 복음을 전할 대 이 시편을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시 61

1-5절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의지하는 시인 개인의 고백이라면, 6-8절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왕의 장수, 보호를 위한 기도입니다.
시편은 개인의 노래이지만 공동체가 예배할 때 사용된 노래, 예배 찬송이라는 용도를 잊지 말고 읽어 나가야 합니다.
공동체가 예배시에 이 고백을 함께 낭독할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들으시겠습니까? CCM과 같은 감정적 고백과 얄팍한 신학과 단순 반복의 가사와는 차원이 다른 찬양입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들은 그들의 예배에 시편을 가르치고 찬송해 왔습니다.
예배시에 시편 찬송만을 해야 되는 건 아니지만, 시편 찬송을 하게 될 날들을 계속 품고 사역해 나갑니다.

시 62

유명한 시편이죠.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라는 찬양을 많이 불러 외울정도 입니다.
9-10절이 왜 시인이 구원이 여호와께로만 나며, 왜 여호와만이 피난처이신지를 말해 줍니다.
시편 62:9–10 9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10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성도들이 세상에 살며 사람들의 속임수, 포악, 거짓, 물질과 돈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이 시편을 노래해야 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그를 의지하며 마음을 토하라 (마음을 부어냄) 고 명령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합법적으로 하나님께 다 쏟아붇고 그를 의지하며 그에게 피하는 자는 얼마나 복된 존재입니까?

시 63

다윗이 유다 광야에 있을 때에 기록한 시라고 제목이 힌트를 줍니다. 다윗은 유다 광야에 한 두번 있었던 것이 아니기에 어떤 특정한 사건을 지칭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신자들이 고난 가운데 처해 있을 때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하고 나아가야 하는지를 제공하는 시편입니다.
시편 63:5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참 멋지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으로 인해 나의 영혼이 “최고의 음식을 먹고 기뻐하고 좋아하는 것처럼” 만족하는 것. 이것이 진정 모든 신자가 추구해야 할 영적 체험입니다.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유다 광야에서 고난 당한 것 (시험 받으신 것) 과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성령의 기름부음 받으시고 부활의 영광직전가지 고난 당하시며 유다 광야에 있었던 것은 유비를 이룹니다.
성도의 영광도 고난을 지나 영광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 고난없는 영광의 신학은 성경적이지 않으며, 성도의 삶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결코 이 땅에서 현실에서 고난을 면하고 영광받는 것이 아닙니다. 장차받을 영광의 중한 것을 바라보며 현재의 고난을 인내로 참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이 신자의 삶의 본질입니다.

시 64

시인을 괴롭히는 악인은 특히 말로 공격하는 자입니다. 악한 자가 마음 먹으면 한 사람을 말로 죽일 수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거짓 증거, 중상 모략, 비방등은 타인을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신자라면 정말 삼가서 하지 말아야 할 죄입니다. 하나님이 종국엔 심판하실 것입니다 (7).

시 65

목가적이며, 전원적인 분위기입니다. 한 해를 소출을 수확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노래입니다. 추수감사절에 예배공동체가 함께 부를 수 있는 시편입니다.
연말 주일이나, 신년 주일에 또는 매주일 예배때마다, 또는 각 가정에서 생계를 유지시켜 주시고, 생업을 지키시며 소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로 찬양할 때 사용할 시편입니다.

시 66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인정할 것을 촉구하는 시입니다. 이것이 원래 모든 인간이 하나님게 마땅히 돌려야 할 모습니다. 온 세상의 창조자, 섭리자이신 하나님은 왕이시며 통치자이십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존재를 없다하며 인간이 주인이 되어가는 세상의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시의 하반부는 자신들을 출애굽의 구원을 하신 하나님이 자기들을 시험, 연단하였음을 언급하며,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유지를 위해 죄악에서 멀리하기를 다짐합니다 (18).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수단이므로 죄 가운데 있다면 (죄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 기도는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틈과 단절을 초래합니다.

시 67

하나님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어서 주의 도와 구원을 온 세상에 알리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 중 ‘반사적 영광’ 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인격, 말과 삶의 거울을 통해 반사되어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 선하심, 아름다우심, 공의로우심등 하나님의 성품을 반사적으로 드러내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1-2)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고 땅 위의 모든 나라를 다스릴 때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주여 오시옵소서. 그래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임하게 하소서.
모든 만민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날이 오기까지 교회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일을 멈출 수 없습니다.

시 68

5- 6, 10 : 고아와 과부와 고독한 자들, 갇힌 자들, 가나한 자들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묘사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시에 늘 사회적 약자와 소외자들 (아웃캐스터들,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 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18절: 전쟁의 승리자가 포로들을 끌고가고, 전리품을 자기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모습. 에베소서 4:8절에서 바울은 승리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선물 (은사)을 나눠 주시는 것에 이 구절을 사용합니다.
21절: 죄를 짓고 다니는 자가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시인은 원수의 멸망과 심판을 간구하고 기대하고 선포합니다.

시 69

시인은 수 많은 원수들에 둘러 싸여, 아무 이유없이 미움받으며 조롱, 수치와 능욕을 당하는 환나 가운데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게서 구원해 주시고 대적자들, 악인들을 공의로 심판하시며, 그들이 하나님의 의인들의 회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30-31: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는 일이 제사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배시에 하나님을 노래로 찬송하는 일을 하나님께 기뻐하신다는 걸 알 때, 어떤 마음과 자세로 찬송을 부를지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성인 시온을 구원하셔서 그곳에 하나님의 종들, 하나님을 찿는 자들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거하도록 기도합니다 (35-36).
신약의 저자들이 그리스도께 직접적으로 적용한 구절들이 있습니다.
9절: 예수께서 성전 정화하시는 모습을 본 제자들이 이 말씀을 기억해 내었습니다 (요 2:17).
21절: 십자가 사건을 기록한 여러 복음서에서 (예:마 27:34) 십자가에 달려 계신 예수님께 쓸개 탄 포도주와 초 (신 와인) 를 준 일.
시인의 환난은 한 개인이 당하는 고난에도 적용할 수 있으나 내용상 하나님의 백성들의 대표자로서 당하는 고난 속에서 그의 백성들을 품고 하나님께 심판과 구원을 호소하는 기도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대표이며, 왕이었고, 그가 사울에게 당한 고난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에 대한 대적입니다.
예수님이 고난 중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런 내용의 기도를 하셨을 것이라고 추정해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시 70

시 70 & 71편 두 시편은 동일한 상황 속에서 기록한 듯 보입니다. 시인은 자신을 죽이려는 대적자들의 추격을 피해 다니는 환난 속에서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며 의지하며, 대적자들의 손으로부터 구원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시 71

시인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어려서 부터 하나님께 배웠고, 교제했으며, 하나님과 동행해 온 사람입니다. 시 전체에 하나님께 철저히 의존되어 있는 시인의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대적자들이 보기에 하나님이 시인을 버린것처럼 보였습니다 (11). 시인은 환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하고 어려서 부터 배운 주의 교훈을,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전하는 일을 지속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평생에 자신을 버리지 말 것을 구하며, 하나님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사역을 다 감당하기 까지 그렇게 하여 주시기를 구합니다 (18).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천국 복음을 가르치고 전파하신 예수님의 사역으로,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라는 지상 명령으로 이 사역을 이어집니다.

시 72

솔로몬의 시인데 20절엔 “다윗의 기도가 끝나니”라고 하면서 시편의 제 2권을 마치고 있습니다. 시 72편 자체를 언급하기 보다 2권 전체가 주로 다윗의 시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편을 모세 오경을 따라 5권의 책으로 나누어 편집하였는데 매 권의 마지막 시편에는 여호와를 찬양하는 구절로 맺고 있습니다.
이 시는 솔로몬이 자신의 후대 왕들이 어떻게 백성들을 통치하며, 그의 공의로운 통치로 인해 백성들이 받게 될 복과 그들이 왕을 위해 기도하고 찬양하게 해 달라는 간구의 내용입니다.
공의와 지혜와 자비와 능력으로 자기 백성을 다스리는 의의 왕은 그의 백성들의 복과 안녕을 보장합니다. 이런 복을 누리는 백성은 모든 사람들에게로 확장됩니다. 이 시편에서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으로 확장됩니다. 이 기도는 만 왕의 왕, 만주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에 의해 완성됩니다.
신자의 기도는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가 온 세상을 완전히 다스리고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 되어 영원토록 복과 즐거움을 향유하는 나라입니다.

제 삼 권

시 73

73-83편까지는 아삽의 시입니다.
73편은 지혜시인데, 비신자가 세상에서 걱정, 근심없이 형통하게 사는 것을 보고 신자가 비신자처럼 살려는 유혹에 빠질 때 권면하는 시입니다.
시인은 악인의 형통과 교만함을보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경건하고 의롭게 살려고 하는 것에 회의를 느낍니다. 악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없이도 잘 사는 것을 보며 스스로 교만해 질 것이고, 하나님이 어디있냐?라고 하면서 믿는 자들을 조롱할 것입니다.
악인의 형통에는 죽을 때 고통이 없고, 마치 모세처럼 건강한 상태에서 죽고, 보통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도 없고, 재앙도 없으며, 재물은 점점 불어납니다.
하나님 없이도 더 잘 사는 세상 사람들을 볼 때, 신자는 흔들리고 유혹을 받게 됩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 섬기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삶이 손해 보는 것 같고,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적당히 신앙 생활하고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가려는 마음이 생기게 되죠.
시인이 성소에서 예배할 때 종말의 악인들의 운명과 의인들의 복을 깨닫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신자는 이 세상을 살면서 항상 종말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최후 심판과 구원의 시점을 현실을 판단하는 잣대로 삼고 세상의 일들, 신자와 비신자의 일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찬양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시 74

시인은 민족이 당한 재난의 상황을 놓고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시기를 탄원하고 있습니다.
성전은 파괴되고 불탔으며, 숲과 나무들이 잘려져 나가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분명 바벨론의 침공으로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된 사건을 말할 것입니다. 1절에서 보듯 시인은 이런 진노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임을 말하며, 악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행한 일이 주의 이름을 훼손하는 것이기에 그들을 멸하여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12절부터 시인은 창조주 하나님, 출애굽의 구원의 하나님을 다시 말하며 기도의 근거로 삼아 민족의 구원을 탄원하며 시를 마칩니다.
우리는 이 시편으로 교회 안의 거짓 목사와 교사들과 지도자들에 의해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하며 세상의 지탄을 받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교회의 영광의 회복을 위해, 교회 때문에 세상에서 훼손된 하나님의 이름의 회복을 위해 탄식하며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 시에서는 이런 심판을 당한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 나오진 않지만 이스라엘이 받은 심판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과 죽음을 가리킵니다. 참 이스라엘로 자기 백성의 모든 죄를 지고 대신 심판의 형벌을 당하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응답은 부활로 응답되셨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주의 회중인 교회가 새롭게 되어 영원히 보존될 것입니다. 주께서 다시 지으신 성전과 나라는 영원히 멸망당하지 않으며,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 되어 주의 백성들이 영원토록 그분의 빛 아래 살게 될 것입니다.

시 75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노래합니다.
6: 사람이 높아지고 낮아지는 것은 하나님의 소관 (주권) (6) 임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교만한 자, 악한 자 모두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은 우리를 찬송으로 이끕니다.
시편의 큰 주제 중 하나는 공의의 하나님, 하나님은 반드시 그의 행위를 따라 악인을 심판하시고 멸하시고 의인은 구원하시고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의 불의와 악인의 형통 앞에서 심판의 하나님을 바라볼 때 위로를 얻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합니다. 주께서 천사들과 함께 불같이 다시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 고백이며, 이 때를 기다립니다.

시 76

하나님이 유다의 원수를 물리치고 다시 그들 가운데 좌정하셔서 다스리는 것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모든 사람에게 만왕의 왕되신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명령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주님은 온 세상의 모든 통치자이 두려워해야 할 주와 그리스도이십니다. 주의 백성들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마땅이 주님을 경외해야 하며, 그 앞에 경배해야 합니다. 지금도 주께서 다스리며, 영원히 다스릴 왕이십니다.
모든 민족과 열방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복종하며 주의 이름 앞에 무릎꿇는 그날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시 77

시인은 환난 가운데 괴로워하면서 지난 날 하나님이 행하셨던 일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잊어버리신 건 아닌지, 은혜 베풀기를 그치신 것 아닌지, 인자하심과 약속들까지도 폐하신 건 아닌가 의심하며 간구합니다 (1-9).
시의 절반 이후부터는 여호와께서 자기들을 구원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구원의 하나님이 창조와 섭리의 하나님임을 선포하며 자기 백성들을 다시 인도하시기를 노래하며 시를 맺습니다 (10-20).
아주 짧게 환난의 원인이 자기의 잘못이라 (10) 언급한 것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죄로 인해 당하는 환난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시는 교회 공동체나 개인이 환난을 당할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알려 줍니다. 지난 날 하나님이 행하신 은혜의 일들을 기억하고 그것을 작은소리로 읊조리며 하나님 앞에 괴로움을 토로하고 구원의 하나님과 창조의 하나님께서 다시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시 78

시인은 공동체를 향해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며 드러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자녀들에게 여호와 신앙을 전수하고 조상들의 죄악된 것을 교훈 삼아 동일한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당부합니다 (3-8).
조상들은 하나님 앞에 정직하지 못한 마음과,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았던 세대였습니다 (8).
9절의 에브라임 자손이란 ‘북이스엘 왕국 전체’ 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들의 패망의 원인은 망각입니다 (11).
12-22절은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인도하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반역했던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고발합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일,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오게 하신 일등을 언급합니다. 그들의 죄의 본질은 불신이었습니다 (22). 하나님께 지속적인 불평, 원망, 불충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있어도 거듭나지 않은 사람입니다.
23-37절부분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식으로 불평 원망하던 사건을 복기하며 그들의 악한 행위를 지적하고 그들이 멸망한 이유를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향하는 마음에 정함이 없었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7). 마음에 정함이 없다는 것은 불신이며, 우상숭배와 동일합니다.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며 하나님과 자기 욕심 사이를 오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시인은 하나님이 얼마나 오래 참으시고 용서하신 긍휼의 하나님이시니지를 말합니다 (38).
40절부터 72절까지는 다시 이스라엘의 역사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이 출애굽의 구원사건 (10가지 재앙) 과 광야의 인도와 가나안 땅을 주시고 땅을 분배하게 하셨으나 그들의 반역과 우상 숭배로 인해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시고 대적들의 손에 넘기셔서 심판하실 일을 기술합니다. 내용상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사건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유다 지파와 시온 산을 택하시고 다윗 왕을 세우셔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신 것을 선포합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를 말씀과 성령으로 다스리며 인도하시는 것에서 최종 그림이 완성됩니다.
우리는 교회로서 이스라엘의 범죄와 불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마음에 정함이 없고 불충하여 멸망한 그들을 거울 삼아, 늘 하나님께 마음을 고정시키고 신실하게 섬겨야 하겠습니다. 다윗 왕의 후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로 고백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분의 인도와 다스림 가운데 살아가기를 다짐합니다.

시 79

이 시는 내용상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후라는 것이 가장 타당합니다. 시인은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처하게 된 유다 (이스라엘)의 모습으로 인해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실추되지 않도록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구원하실 것을 호소합니다 (9).
교회는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에 직결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부패와 부도덕과 교회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함으로 인해 교회의 명성과 인정은 바닥입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과 이름이 함께 땅에 떨어졌습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이름을 회복하시기 위해 교회가 다시 일어나길 기도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로, 세상의 참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할 때 이 시편으로 기도함이 적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반역과 죄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신 담당시키셔서 심판하셨습니다. 교회의 구원과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이름과 존귀와 영광은 교회가 그리스도를 붙들 때,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께 복종할 때 이루어 질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우리 교회는 항상 바른 말씀을 통해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시 80

내용적으로 이 시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침략으로 멸망당한 역사 속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간청하는 기도로 볼 수 있지만, 유다의 멸망 또한 배제할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담을 허셔서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따게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방 제국으로부터 자기 백성을 보호해 주시지 않았음을 가리킵니다 (8-16).
“주의 얼굴빛,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구원하여 달라” 는 구절이 반복됩니다 (3, 7, 19).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비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하나님을 아는 것이 구원받은 자입니다.
죄로 인해 이스라엘은 (유다) 하나님의 면전에서 쫓겨 났고 임재에서 벗어났습니다. 주의 얼굴 빛의 비추임을 받는 것은 죄의 문제가 해결된 이후입니다. 유다가 70년 바벨론 포로 생활로 최값을 다 지불했을 때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자기 백성들의 죄 값을 다 지불하자 주의 백성들이 주께 돌아왔습니다.
17절에 “주의 오른쪽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인자 (사람의 아들)” 란, 오른손의 아들인 베냐민을 가리킬 수도, 이스라엘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예수님을 인자라고 묘사하였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참 이스라엘로서, 진정한 다윗의 후손으로서 모든 것을 성취하시는 분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 81

이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을 상기시킴으로 언약에 신실하도록 도전하고 있습니다. 먼저 언약의 기본 역사를 개관하고 (1-7),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 책망하며 (8-12), 마지막으로 언약에 충성하도록 권면과 그에 따른 복으로 권면합니다 (12-16).
하나님이 완악한 마음을 그대로 내 버려 두는 것이 심판입니다(12). 우리가 죄를 지을 때 매일 말씀 읽기를 통해 설교를 통해 성경 봉독을 통해 죄를 지적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가장 두려운 순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완악한 마음은 하나님이 터치 하지 않으시면 한없이 악해지며, 돌이키지 않으며 하나님을 등지는 길로 나아가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소리를, 즉 언약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11, 13).

시 82

인간 세상에서의 통치자, 왕과 재판관들은 하나님께 위임받은 대리 통치자들입니다. 고대에는 이들을 ‘신들’ 이라고 여겼습니다. 이 시편은 세상의 권세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공의로운 재판, 사회적으로 약자들에게 정의를 행하라는 권고입니다.
세상의 불의로 고통당하는 성도들이 이 시편으로 기도하고 예배시 노래할 때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사실상 예수님의 공생애에 함께 하셨던 많은 무리들은 사회적 약자였고, 소외된 자들이었으며, 비주류였습니다. 박해 가운데 있었던 초대 교회 성도들, 핍박 받는 그리스도인들, 지금도 복음 때문에 손해보고, 희생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가난하고 궁핍하며 갇힌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최후 심판이 있다는 것은 언제나 의로운 자들, 성도들에겐 큰 위안이 됩니다. 시인도 8절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의뢰하며 마칩니다.
사도 신경의 고백에 있듯, 우리가 믿고 고대하는 바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을 믿습니다.

시 83

시인은 현재 이스라엘이 대적자들에 의해 환난을 당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대적자들을 멸하신 사례들을 내세우며, 그때처럼 대적자들을 멸하시고 그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시편 2편의 대적자들과 유사한 상황입니다.
역사속에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열거합니다. 에돔 (야곱의 형), 이스마엘(이삭의 형), 모압 (롯의 딸), 하갈, 그발, 암몬, 아말렉, 블레셋..앗수르, 미디안 (사사 기드온때의 대적자)들을 뭉쳐서 ‘동매’ 이라 표현하며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손에 멸하였는지를 떠올립니다.
18절: 그를 통해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렇습니다. 온 세계에 주(Lord)는 여호와라 이름하는 스스로 계시며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지극히 존귀하시면 찬송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이심을 찬송합니다.
이 시 또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하며 그분을 대적했던 모든 원수들을 향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노래하실 수 있는 시편이겠죠.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지만, 그들에게 배척당하고 모욕과 조롱과 침뱉음 당하며 떼거지로 예수의 원수가 되어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을 저들을 멸하소서라고 말하시는 대신, 저들이 알지 못하고 하는 것이라며 용서의 기도를 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과 교회를 적대시하고 반성경적인 법, 사상, 철학, 가르침에 대해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들의 시도를 무너뜨리시고 멸하소서. 온 세상 사람들이 오직 하나님만이 이 세상의 주이심을 알고 그 분 앞에 무릎꿇게 하소서!
개인적으로 사탄이 영적으로 유혹하고, 정죄할 때 사탄을 대적하며 이 시편으로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궁극적 원수는 결국 사탄이며, 재림시에 영원히 멸망당할 존재입니다. 결국 이 기도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의 기도와 맥이 닿아 있습니다.

시 84

아삽의 시에서 다시 고라 자손의 시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인 성소에서 머물때 누렸던 복을 상기하며 다시 성소에서 하나님의임재 앞에 있기를 간구합니다.
시인이 성소를 사모한 것은 그 장소 자체때문이 아니라 그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주께 힘을 얻고 (5, 7), 기도하며 교제합니다. 그래서 주의 궁성에서 하루가 다른 곳에서 천일을 보내는 것보다 좋다는 멋진 고백을 합니다 (10).
우리는 교회로 모이는 것, 주일 예배를 얼마나 사모하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며 성소이고 하나님의 집입니다. 개인적으로 6일동안 하나님과 함께 하며 살아가지만 주의 모든 백성들이 한 곳에 모일 때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공동체에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들려 주시는 말씀, 기도, 찬양과 교제는 개인적으로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시인이 주의 궁정과 성소를 사모하는 것과 주일 예배를 사모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배에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과 만나며 대화하며 언약을 확인하고 갱신하며 누리는 시간이기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의미를 알 때 우리는 참으로 주일을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시 85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을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것으로 연결짓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다시 그들에게 진노하지 마시고 그의 백성이 다시 죄를 짓고 심판당하는 일이 없게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이 시는 분명 공동체의 보존과 미래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기도입니다.
인애와 진리가 만나고 의와 화평이 입맞추었다는 표현이 마음에 깊이 와 닿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신 헤세드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죄를 간과할 수 없는 진리의 하나님 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바벨론 70년 이후 포로 귀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죄값을 다 치루었고, 하나님이 그들을 용서하셔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 패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의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모든 죗값을 치루시고, 죄 사함을 통해 의롭게하시고 구원하신 것에서 성취됩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의지함으로 받으며 지속되는 것입니다.

시 86

시편 제 3권 (73-89편) 중 유일하게 다윗이 저자인 시입니다. 교만하고 포악한 대적들의 공격에서 (14),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탄식시입니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주되심, 하나님이 베푸신 행위를 찬송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시인을 하나님의 손으로 구원하셔서 원수들이 보고 부끄럽게 하고 수치스럽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신원하여 주신 것이며, 예수를 대적하던 자들과 사탄을 수치스럽게 만드신 승리의 사건입니다.
예수님과 복음으로 세상에서 가난하고 궁핍하며 신음하는 성도, 영혼이 상한 성도들이 이 시편을 들고 낭독하며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 87

고라자손답게 시온의 영광을 노래합니다. 그곳이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거하시는 처소이기 때문입니다. 시온은 이스라엘이며, 예루살렘성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 시온은 종말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예루살렘 성으로 주와 주의 백성들이 영원히 함께 거하는 하나님 나라로 완성될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신자의 비전이며 소망이며 궁극의 목표입니다.
4절의 ‘라합’ 은 애굽을 상징합니다.

시 88

3-5절을 보면 시인이 처한 상황은 거의 죽음을 방불하거나 죽을 것 같은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죽음의 환난이 하나님께서 두신 것임을 말합니다 (6). 자신 혹은 민족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 받은 심판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7-8). 그러나 시인은 죽고 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토로하며 구원을 부르짖습니다 (9-13).
이 시도 하나님이 고난을 주신 것이고, 그로 인한 고통 중에 있는 개인이나 공동체의 기도에 귀를 막고 침묵하신 하나님께 탄식하고 있습니다 (15-16).

시 89

하나님의 약속이 파기된 듯한 현실에서 이스라엘이 언약을 파기 (죄악)했기에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올리는 공동체 탄식시입니다 (물론 개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이스라엘 또는 유다 공동체가 역사 속에서 유사한 상황이 있어 왔습니다.
북이스라엘이 애굽 왕 시삭에 의해, 앗수르 왕에 의해, 바벨론에 의해 심판 당한 역사를 배경으로 할 수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애굽 왕 시삭의 침공을 배경으로 한다고 합니다.
본문이 길어서 내용에 따라 크게 몇 단락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을 찬양 (1-14)
주 하나님은: 성실하심, 인자하심, 두려워 할 분, 능력 있으심, 의와 공의로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사는 자의 복 (15-18)
하나님이 택한 자 다윗과의 언약(19-29)
다윗 언약은 다윗이 모형하는 그리스도와 맺는 언약이며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성취되고 또한 그리스도의 나라의 모든 백성에게 성취됨.
언약을 파기하면… (형벌의 경고)(30-37)
하나님의 심판 (38-48)
하나님이 언약을 지키시는 “인자와 성실” 을 찾아 볼 수 없는 현실. Why? 이스라엘의 죄를 범함으로 언약을 파기했기에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것을 탄원 (49-52)
이런 시편의 경우 아래처럼 연결해서 읽어 보세요. 개인적 삶에 적용하기 보다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십자가의 복음의 렌즈로 최종 해석하시면 더욱 풍성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이스라엘 (교회) ⇒ 참 이스라엘인 예수 그리스도를 모형
이스라엘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 ⇒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하나님의 침묵 ⇒ 십자가에 달린 예수께 침묵하신 성부 하나님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 (교회) 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죗값이 지불되었고, 주의 백성들이 속량되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89편제3권의 마지막 시편입니다.

제 사 권

90편부터는 제사권이 시작됩니다.
90편은 시편 전체의 전환점입니다. 이전까지는 탄식시가 주였는데 이후부터는 찬양시가 주가 됩니다. 다윗 왕조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을 때조차 하늘의 왕이신 하나님이 여전히 다스리며 그분의 백성든 그분께 피할 수 있습니다.
4권의 초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약속의 성취와는 너무 먼 현실에서도 약속을 소망하며 살아가라는 것을 말합니다.

시 90

모세의 기도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에 비하여 인간의 미천함, 덧없음과 순간성, 수고로움, 고생스러움과 허무함을 드러낸 후 여호와로부터 인생에 복을 주시고 은혜를 구하는 지혜시입니다 (3-6, 9,10,12).
4절: 주께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고,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 인간의 시간 개념과 영원한 하나님의 시간 개념은 다릅니다. 인생은 티끌일 뿐입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100세, 건강하게는 80세-90세 정도인 인생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의지하는 것만이 허무한 인생을 충만하고 의미있게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시 91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사는 자!
참 멋있는 시적 표현입니다. 우리 모두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 (다스림, 보호와 인도) 살아가는 행복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두려움, 환난, 공포 가운데서도 두려워 하지 않고 평안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 피하며 피난처로 삼는 길만에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천사는 성도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께 보냄을 받은 존재입니다.
5,6절은 세상과 인생에서 경험하는 모든 두려움들을 총망라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에게 피하는 자는 두렵지 않습니다.
12절은 마귀가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 도용한 구절로 유명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참된 이스라엘로 알아차린 것입니다.
13절 역시 시인에게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사탄의 머리가 예수님의 발에 짓눌려 깨지는 것을 최종 가리킵니다.
14-16절에서 그는 시에서 언급하는 한 사람이겠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높이신 그리스도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이스라엘이 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이 시는 극한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피난처 삼아 의지하며 하나님이 악인으 반드시 심판하실 것을 바라보고, 기도에 응답하실 하나님을 확신하며 두려움을 극복하고 마음의 평안의 확신을 갖기 위해 간구할 수 잇는 기도입니다.
우리 모두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살아가는 자” 임을 누리며 살아갑시다.

시 92

제목이 <안식일의 찬송시> 이므로 이스라엘의 안식일 예배에 부는 찬송일 것입니다.
예배에는 하나님이 성품과 행하신 일, 은혜와 지혜를 찬송하고 (1-5), 세상에 대한 탄원과 승리를 노래하고, 의인에 대한 종말의 소망을 노래합니다.
의인의 영구함 (12-15) 은 종말에 결실합니다. 회복된 에덴에 심긴 생명 나무의 심상과 일치합니다. 시편 1편의 중심 주제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 시는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의롭게 살며 세상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 이유를 줍니다. 그러면에서 이 시편은 신자에게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며 살도록 권면하는 노래입니다. 주일 예배는 함께 종말을 소망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집에 심긴 의의 나무들입니다. 영적으로 번성함을 이미 누리고 있으며 영원히 누릴 것입니다.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게 될 것입니다 (14)”.

시 93

여호와의 왕되심과 그분의 다스림을 찬송하는 시입니다.
주 (여호와)는 영원한 존재, 창조와 섭리의 주이십니다. 천하 만물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신성과 능력과 영광을 증거하고 선포합니다 (5).

시 94

하나님의 공의에 의지해서 하나님께서 악인의 심판을 간구하며서 하나님께 피하여 안전을 도모하는 시입니다.
시인이 하나님의 심판을 간구하는 악인은 7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공동체 (교회) 안에 있습니다. 그들은 주의 백성들 중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죄를 담대히 짓는 것입니다. 예수님 공생애 사역 때 유대인들이 그러했고, 신약 성경에 나오는 초대 교회에도 이런 자들이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 거짓 교사, 거짓 선지자들까지도 사도들이 생존해 있던 때에도 많았음을 보면 오늘날이야 더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지금 한국 교회의 영적 현실을 바라보며 조금의 위로를 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 주의 신실한 백성들을 여전히 남겨 놓으시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를 주님 오실 때까지 신실하게 거룩하고 흠없이 보존하실 것입니다. 아멘!
이 시의 전반적인 내용이 예수께서 당하신 상황과 일치합니다. 21절은 시편 2편처럼 악인들이 모여 의인의 영혼을 치고 무죄한 자를 정죄하여 피를 흘리려 하는 것은 예수에게서 절정을 이룹니다. 시인은 여기서 악인의 심판과 멸망을 탄원했지만, 예수께서는 “자기를 죽이는 자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중보기도 하셨습니다.

시 95

여호와께 찬송하기를 성도들에게 촉구하며 찬송의 이유 (3-5)와 예배의 이유 (6-7)을 말합니다. 그런 후에 이스라엘의 불순종의 죄를 상기하며 하나님의 심판의 선언으로 끝을 맺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할 이유는 수억만가지입니다. 천지 만물과 사람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시기에 그분께 모든 피조물은 인간을 포함해서 창조주께 무릎 꿇고 경배함이 마땅합니다. 무엇보다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기에 언약백성들은 예배하는 것입니다 (7).
7절 하반절과 8절은 이스라엘 광야 1세대가 모세의 말에 불순종하여 멸망당한 일을 떠 올리며, 이를 거울 삼아 시편이 노래나 낭독되는 것을 듣는 회중에게 순종을 권고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합니다. 모세와 같은 최종 선지자이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순종하여야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게 됨을 말합니다 (히 3:15-19).
이스라엘이 불순종으로 멸망당한 이유가 “그들의 마음이 미혹되었기 때문” (10) 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에게서 세상으로 마음이 향한 것이고, 세상을 사랑한 것이고, 두 주인을 섬기려 한 마음입니다. 이는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경고입니다. 오히려 지금의 세상을 우리의 마음을 더 미혹합니다. 신자이지만 늘 세상의 것을 사랑하며 마음이 미혹되어 살아가는 영혼은 진정 두려워하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의 경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경고는 언제나 회복과 구원의 목적입니다.

시 96

이 시편은 모든 창조 세계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왕되심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세상의 모든 신은 그저 우상일뿐, 오직 하나님만 진정으로 경외할 하나님이십니다 (4).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 뿐만 아니라 온 세상 모든 피조물은 자연과 인간들이 하나님의 존귀, 위엄, 능력, 아름다움과 영광에 합당한 찬송을 돌려 드러야 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여호와의 종말의 궁극적 심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10-13).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 통치하시는 하나님은 행한 대로 보응하시고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찬송 가운데는 사랑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과 심판하시는 하나님도 포함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어떻게 찬송해야 하는 지를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찬양하도록 이런 시편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시 97

96편처럼 여호와의 다스리심과 심판을 기뻐하는 시인, 성도, 의인들의 노래입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여호와를 사랑하는 주의 백성들은 악을 미워하는 자들이며, 여호와께서 성도들을 악인의 손으로부터 구해 주십니다 (10).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은 의인들이며, 죄를 멀리하며 악을 미워하며 악인들과 함께 하지 않습니다. 성도인데 악한 자들과 함께 하며 그들처럼 죄악 가운데 살 수 없습니다.

시98

96편부터 계속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온 우주를 다스리는 것과 심판하시는 것을 노래하라고 촉구합니다.
9 그가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로다 그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구원의 목적이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영광을 위해 창조하신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구원해야 하시거나 창조해야해서 하신 것이 아닙니다(1).
이스라엘은 온 세상이 구원을 보며 얻게하는 통로, 도구입니다 (2-3).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속량되기를 탄식하며 기다립니다. 하나님이 완성하실 하나님 나라에서 온 우주 만물과 인간 세상이 완전한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살게 될 때를 대망합니다. 그때가 우리가 바라보는 최후 구원과 소망의 비전입니다.

시 99

동일하게 하나님의 왕되심을 찬송하는 시인데, 특별히 이스라엘 (교회) 가운데 계시는 언약의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분의 거룩하신 속성을 강조하는 것이 두드러 집니다. 그분을 찬송하고 예배할 이유로서 그분의 거룩하심을 들고 있습니다.
거룩하심은 구별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과 홀로 구별되시는 초월하시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거룩이 찬송과 예배의 이유가 되야 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시 100

제목이 “감사의 시” 네요. 감사를 위해 지은 시편입니다.
감동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시며,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소유이며, 그의 백성이며 기르시는 양 (그분은 우리의 목자 되신다는 말)” 이라는 노래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하나님 찬송의 분위기가 기쁨과 즐거움으로 뛰어 노는 듯한 심상이 전해집니다.

시 101

다시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다윗 자신도 악한 마음을 품지 않으며, 자기 백성들 가운데서도 악을 용납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공동체는 악인이 회중에 들어 올 수 없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공의로 다스리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다윗도 자기 백성을 공의로 다스리고 심판하리라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교회 공동체 역시 악인이 설 수 없으며, 나님의 언약 백성 공동체로서 또 개인으로서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책임을 가집니다.

시 102

7대 참회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6, 32, 38, 51, 102, 130, 143).
제목이 <고난 당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그의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로하는 기도> 라고 명시되어 있어, 이 시편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안내해 줍니다. 고난 당한 자의 고난의 상황을 다양할 지라도 ‘고난당한 때’ 라는 공통 분모 아래서 이 시편을 가지고 기도하고 찬송할 수 있습니다.
1-11절은 시인의 마음의 상태를 토로합니다. “뼈가 숯같이 탔음”, “마음이 풀같이 시들고 말라 버렸음”, “황폐한 곳의 부엉이”, “ 지붕 위의 외로운 새”, “재를 양식같이 먹음”, “눈물 섞인 물을 마심” 같은 표현들을 통해 영혼의 상태를 묘사합니다.
12절부터는 여호와 찬양으로 어조가 변화됩니다. 그 내용이 하나님이 다시 시온과 예루살렘의 회복을 간구합니다 (12-22).
시인의 이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을 통해 교회로 성취되었습니다. 삼위하나님을 교회 가운데 거하시며, 그의 이름이 높임 받고 찬송받으시며 영광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아직 종말에 완성될 새 예루살렘성으로서의 시온의 회복이 남아 있지만, 지상에서 교회를 통해 이미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를 지금 누리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불변하심을 기초로 시인과 그의 공동체의 안전을 확신합니다 (25-28).
하나님의 불변하심, 영존성: 시편 전체에서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의 창조와 창조주를 높이고 기리며 자신의 현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창조의 하나님을 통해 위기와 고난에서 위로와 안식을 얻습니다.

시 103

다시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행하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인생의 무상함을 말하고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행하시는 일이 14가지로 (제가 찾은 바로) 찬양합니다.
죄를 사하심(3), 병고치심(3), 인자와 긍휼 (4, 8), 소원을 들어주심 (5), 공의를 행사하심 (6), 억압받는 자를 신원하심 (6), 자신을 계시하심 (7), 은혜로우심 (8), 노하기를 더디하심 (8), 인자가 풍부하심 (8), 자주 혼내지 않으심 (9), 노를 거두심 (9).
다윗만큼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완전히 용서받은 경험을 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10-12절은 이것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주일 예배때 죄 사함의 확신으로 낭독하는 구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대신해 죽으셨기에, 우리의 죄가 동이 서에서 먼 것 정도가 아니라 영원부터 영원까지 우리의 죄를 도말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과 사랑이며 은혜이며 복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송축하는 것이 모든 피조물의 합당한 존재의 목적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2)” 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찬송의 명령입니다. 이 시편을 가지고 여러분의 영혼이 여호와 하나님,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송축하시기 바랍니다.

시 104

마치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을 디테일하게 푼 것 같은 시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사역을 구구절절 찬양합니다.
24절의 본 시를 요약한 구절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응과 삶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며,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35절은 종말의 하나님의 심판으로 악한 자들 (죄인들) 이 땅에서 제거되고 오직 하나님의 의인들만 거하는 의의 나라를 바라보며 찬송합니다. 찬양의 요소에는 이렇게 종말에 대한 완성과 소망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됩니다.

시 105

시인은 찬송을 촉구하며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기인한 일들을 말하라고 하면서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을 어떻게 그의 백성 가운데 이루어 가셨는지를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언약, 이삭에게 하신 맹세, 야곱과의 언약을 따라 기근으로 야곱의 가족이 애굽에 들어간 일, 모세와 아론을 바로 왕에게 보내고, 거부하자 열가지 재앙을 내리신 일,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먹이시고 마시게 하신 일과 마지막에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하신 것을 기뻐하며 찬양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후 이스라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교회가 탄생하고 사도행전을 통해 복음이 세상에 전파되고 계시록에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추적하며 동일한 찬양을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구원의 목적을 하나님의 법을 지키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심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이 시는 구약 성경의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구속사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자료입니다.

시 106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촉구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의 역사를 출애굽때부터 사사시대까지 (바벨론 포로기 까지도 가능) 를 기술합니다. 이런 이스라엘을 오래 참으시고 그들을 심판하시지만 또 구원하신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시며 긍휼이 풍성하신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런 하나님을 찬양하라 말합니다.
8절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의 이름 (영광)을 만인에게 알리고 보존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완악함과 불순종의 이유는 망각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하나님이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를 경험하였음에도, 알고 있음에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13).
회개하는 백성들에 대한 (죄로 인해 낮아질 때 여호와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의 반응은 (44-46)
고통을 돌보시며,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크신 인자하심을 따라 뜻을 돌이키시고, 긍휼히 여김 받게 하십니다.
여기서 제 4권이 끝납니다.

제 오 권

시 107

역시 찬양을 촉구하는데, 특히 여호와로부터 속량을 받은 자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들을 속량하시기 위해 행하신 일들을 상기합니다.
8, 15, 21, 31절에서 동일한 후렴구를 반복하며 그의 백성들의 죄와 그로 인한 고통과 여호와의 구원을 반복하는 구조입니다. 각 후렴구에서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를 반복합니다.
21절에선 하나님이 말씀으로 병든 영혼을 치료하신다고 하는데 놀랍습니다. 말씀이 영혼을 해부하고 도려내고 붙이고 봉합해서 병든 자를 고치십니다. 마음이 상한 자, 완악한 자, 낙심한 자, 거짓된 자, 교만한 자, 그 어떤 영혼의 질병도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을 통해 역사하시면 고치지 못할 게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날마다 고쳐 주시기를 간구하며 말씀을 읽읍시다.

시 108

다윗의 시입니다. 대적과의 싸움에서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고 구원해 주실 것을 강한 확신 가운데 간구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구원은 헛되므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겠다고 다짐합니다 (12-13).
하나님이 대적들을 밟으심은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머리를 밟으심으로 완성됩니다.

시 109

1-5: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배신당하고 공격당했습니다. 예수님이 당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8절은 가룟 유다에게서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가룟 유다는 다윗이 하나님의 심판을 호소하는 악인의 표상 (배신) 입니다. 8-20절은 다윗 (하나님과 그의 교회) 을 대적하는 자들이 하나님께 받을 심판의 보응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25절 역시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다윗이 당한 평생의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가 당한 고난이며, 예수 믿는 자가 악한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의 표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세상에서 예수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이런 고난을 당한다면, 그리스도가 당하신 고난을 생각하며 참고 견디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시 110

이 시는 제왕시이며 메시아를 기다리는 미래지향적 시입니다.
짧지만, 이 시편은 복음서, 사도행전, 바울 서신, 히브리서와 베드로서에 나타나 있는 인용 혹은 암시와 함께 신약 성경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구약 본문 중 하나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구절을 인용하시면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자신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법적 혈통으로는 유다의 후손입니다. 유다는 제사장 지파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평강의 왕, 살렘 왕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제사장되신 분이십니다. 유일한 제사장이며 영원한 제사장의 반열을 따라 되신 분이십니다. 이것을 히브리서 저자가 설명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편을 노래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을 통해 자신이 취하도록 예정되었던 다윗의 왕권을 취하신 것을 찬양하며, 하나님이 지금 이방인을 그리스도의 나라에 복종하고 속하게 하는 사역을 기리게 됩니다.

시 111

시인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찬양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 주시고 모든 나라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려 하십니다. 여호와께 속한 백성이 참으로 복됨을 노래합니다. 이런 여호와를 경외함이 잘 사는 것이며, 지혜로운 삶입니다.
결론적으로 10절에서 잠언의 주제와 동일하게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선언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분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자가 형통한 자, 복받은 자, 영원히 살자임을 알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오직 주만 경외하며 살기를 다짐합니다.

시 112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즐거워하는 자가 누릴 복과 이를 보고 분개하는 악인의 결말을 경고하는 시입니다.
두 가지 키워드입니다.
나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있나,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가?
9절에서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그 사람의 ‘의’ 가 하나님께 영원히 기억되며, 영광스럽게 높아진다고 합니다. 이는 구제가 얼마나 하나님께 귀하게 여겨지는 행위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교회가 복음 전파와 함께 구제 사역이 동반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구제 사역을 할 수 있는 날을 기도합니다.

시 113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며 찬양하는 시입니다. 그분의 높으심, 영광, 겸손하심, 고통받는 자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높으신 하나님이 스스로 낮추셔서 천지와 인간을 살피시는 그런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5-6).

시 114

출애굽에서부터 가나안에 들어갈때까지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간단히 회고하며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시 115

하나님의 영광을 인간이 가로채지 않기를 갈망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어디 있냐고 조롱하지만, 정작 그들이 섬기는 우상들은 비인격적이며 아무것도 못하는 죽은 물질일 뿐입니다 (2-8).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계시며 인격적인 여호와를 의지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실제로 여호와를 의지하고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도 중단되지 않는 것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죽음(영원한 멸망) 을 두려워 하는 것도 찬양하지 못하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시 116

시인은 죽음의 순간을 눈 앞에 두고 있거나 당하거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도 응답에 대한 강한 확신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고 찬양하며 다짐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이스라엘 회중의 대표자이며, 공동의 예배에서 불려질 수 있는 노래의 형태입니다.
다윗처럼 곤경에 처한 성도, 죽음의 위협이나 위험의 순간과 상황에서 이 시편으로 기도하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시 117

지금까지 시편중 가장 짧습니다. 찬양을 촉구하는 대상은 모든 나라들, 모든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할 이유는 그의 인자하심 (헤세드)이 크시고 진실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메시아 대망하는 예언적 시입니다. 22절, 24, 26절 참조. 26절은 예루심의 예루살렘 성 입성시에 불려 질 수 있게 합니다.

시 118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를 정할 때 이 시편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편이기에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노래합니다 (1-9).
시인을 에워싸는 뭇 나라 (대적자들, 무리들) (시 2) 을 하나님이 끊으시고 도울 것을 말합니다.
이 시편 전체가 내용적으로 부분 구절들이 예수님을 가리키며, 예수님과 신약 성경의 저자에 의해 예수님에게 적용되었습니다.
22: 예수 그리스도가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 이 되신 분이십니다.
사람들에게 버림받아 죽으셨으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와 모퉁이돌 (기초석) 이 되게 하셨습니다.
26: 예수님이 나귀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사람들이 호산나 외치며 불렀던 구절이며 (마 21:9), 예수님도 자신에 대해 여러번 복음서에서 이 구절을 자신에게 적용하셨습니다 (눅 19:35).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며 살고 있습니까? 입술로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한다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정작 우리가 의지하는 실재는 다른 것일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시 119

시편 119편 개관
이 시편은 하나님의 말씀 (토라, 언약적 가르침)가 인생을 위한 완전한 안내서임을 찬양하는 시편입니다. 19편과 밀접히 연결되고, 시편 1편과 112편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편 전체와 성경 전체에서 에서 가장 긴 시편과 장입니다.
이 시편은 히브리어 알파벳 22글자를 따라 총 22연 (Stanzas)로 구조화되었고, 각 연은 8구절로 정교하게 짜여져 있습니다.
1–8절은 “알렙(א)”
9–16절은 “베트(ב)”
17–24절은 “기멜(ג)”
놀라운 건 각 연안의 8절이 모두 같은 히브리어 글자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시편이 하나님의 “말씀” 을 나타내는 다양한 말들은 “율법, 증거들, 교훈들, 율례들, 계명들, 규레들” 이 있습니다.
시 119편은 구약 율법에 대한 찬양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율법에는 하나님의 성품과 창조 질서 자체를 근거로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 시편은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의 완성을 보고 “주님의 말씀으로 나의 삶을 인도하시고 만들어 가시도록” 기도할 수 있습니다.

1-24

말씀을 지키며 사는 자의 복을 강조하며 말씀을 가르쳐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시인은 말씀을 사모하고, 즐거워하며, 말씀을 따라 그의 삶을 살아감을 노래합니다.
20절의 의미가 다르게 전달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말씀을 사모하기 때문에 마음이 다치거나 아프다” 는 말이 아니라 “나의 영혼이 말씀을 바라는 그 간절함에 온통 사로 잡힌다” 는 의미입니다.
내가 정말 구원받았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참으로 분명한 증거는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며, 말씀을 지키며 살고자 하는 열망입니다. 나에게 이것이 분명히 있다면 나는 확실히 주의 구원받은 자입니다. 자연인은 말씀을 이해하지도 못하지만, 사모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적용시키셔서 말씀으로 부른 자만이 가지는 새 마음 새 영의 증거입니다.

25-48

33-36: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3가지 기도와 이유
3가지 기도: 1) 말씀을 가르치소서, 2) 깨닫게 하소서, 3) 행하게 하소서.
그 이유: 이 세 가지를 즐거워함.
37: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소서” 는 우리 모두의 기도입니다. 물질주의, 소비주의, 향략주의가 만연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자는 늘 보는 것에 주의해야 하는데, 시인은 그 행위를 주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요한 사도가 요일 2장에서 “안목의 정욕” 에 주의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보는 것에서 욕망을 자극하고 탐심을 일으키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탐하고 사랑하게 만들어 마음의 우상 숭배에 빠지게 합니다.

49-72

50: 말씀이 고난 중에 위로가 됩니다. 주의 말씀이 고난으로 마음이 상하고 죽어가는 영혼을 다시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도 성경을 통해 주의 말씀을 묵상하고 붙잡을 수 있는 위로가 있습니다.
56: 소유가 주의 말씀을 지킨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소유는 물질적인 것인데 주의 말씀을 사랑하는 한 경건한 성도는 그의 소유가 말씀을 지키는 것이랍니다. 나의 소유는 무엇인가 돌아봅니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소유임을 고백합니다.
67, 71: 고난의 유익은 고난을 통해 말씀에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말씀을 배우게 하는 교육 자료입니다.
72: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 (법, 규례, 명령, 지침, 지식, 지혜) 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도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하셨고, 지금도 입에서 나온 주의 말씀으로 다스리시고 가르치시고 경책합니다. 시인이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라고 고백할 만합니다. 세상에 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 없습니다. 지금은 금값이 금값입니다. 금에다 많은 사람들이 투자하며 그것을 가슴에 품고 좋아합니다. 지혜로운 투자 필요합니다. 하지만 주님 자체와 그분의 말씀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 “주의 말씀이 천천 금은보다 좋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신앙으로 자라가기를 기도합니다.

73-96

74, 79절에서 시인은 그냥 성도가 아니라 그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것을 기뻐하는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있고, 그들이 이 시인을 떠나있는 상태여서 돌아오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다윗처럼 ‘왕’ 이 될 것입니다. 119편 군데 군데 시인이 대적자들로 인해 고난을 당하고 있는 상태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78). 그들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중에도 시인은 주의 말씀을 배우고 지키며 바라며 사랑하고 있음을 시 전반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81-88). 그러면에서 이 시편도 예수님의 공생애와 고난과 연결지어서 이해할 수 있으며, 예수님의 시편이며, 예수 안에서 있는 성도들의 시편입니다.
81-82: 구원을 사모함이 왜 피곤함이 될까요? 사랑을 해 본 사람은 압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감정 소모가 심한지, 감정 노동을 많이 하니까 피곤한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의 말씀을 사랑하고, 구원을 사랑하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나쁜 의미에서 피곤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사랑하는 간절함, 더 자주 보고 싶고 느끼고, 간직하고 싶어 지성과 감정과 의지의 노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말씀을 사랑합니다. 하루 종일 말씀과 교리 공부해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 대로 살기를 늘 갈망하고, 또 그 말씀을 성도님들과 형제 자매들과 나누고 가르치는 일을 사랑합니다. 주의 구원의 날, 하나님 나라의 완성될 날을 더욱 더 사모합니다.
89: 자연의 법칙도 하나님의 법(율법) 입니다. 천지 만물이 순응하고 돌아가는 것이 주의 율법과 규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92: 말씀만이 (말씀을 즐거워 하는 것) 고난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97-120

97-104: 말씀과 지혜의 관계- 시편 1편의 주제가 반복됩니다. 말씀으로 인해 얻게 되는 지혜와 명철을 높입니다. 이는 잠언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지요.
103: 말씀의 달고 단 맛을 알고 맛보는 경험이야 말로 신자들이 추구하고 일상에서 누려야 할 최고의 경험 가운데 하나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이것 외에, 병고침, 방언, 축귀, 기적, 환상같은 다른 종교에서 추구하는 그런 체험을 갈망하며 그것이 진짜 하나님의 살아계심임 나타내는 것인양 추구하지만, 건강한 모습이 결코 아닙니다. 이 시인의 고백처럼 “말씀의 단 맛”을 향유하는 신자가 가장 고상하고 탁월한 신앙의 체험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임을 이 연사 소리 높여 외쳐봅니다! 시편을 함께 묵상하는 여러분들과 저도 이런 말씀으로 인한 체험 누리며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105: 말씀의 탁월한 기능입니다.
106: 말씀에 순종하는 일에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107-109: 반복되는 내용이지만 고난 중에 말씀을 의지하는 모습니다.

121-144

시인이 주의 말씀에 대한 깊은 사모함과 악인이 (대적들이) 말씀을 잊은 것으로 인해 슬퍼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아마도 이 악인들은 시인의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는 자들일 것입니다.
135: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얼굴을 우리 마음에 비추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큼 아버지의 말씀을 사모하시고, 의지하시며 지키신 분은 없습니다.

145-176

이 부분은 주의 모든 말씀이 진리이며 영원함을 말하고, 주의 말씀 (율법, 규례, 법)으로 인해 찬양합니다. 특히 구원을 사모함과 주의 말씀을 사모함을 연결지어서 말합니다. 이는 딤후 3.15에서도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에서 그 연관성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사랑하고 읽고 마음에 간직하고 지키는 것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통로일 뿐만 아니라 날마다 구원을 이루어가는 성화의 삶에도 필수입니다.

시 120-134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는 예배하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 에 맞추어 부른 노래입니다.
물론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들이 성전을 향해 여행하면 불렀던 노래이기도 했습니다.

시 120

본 시편은 환난 중에서 대적자들의 거짓된 말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탄원하며 대적자들이 받을 운명을 말합니다 (3). 대적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다는 것을 보면 시인은 포로국에서 거주하며 화평을 위해 탄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뎀 나무 숯불: 불을 오래 간직하는 나무이기에 좋은 숯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4)
메섹은 흑해 남동쪽 끝에 거주하던 민족이며 게달은 아라비아 광야에 거주하던 민족입니다. 끝과 끝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사이에 흩어져 살며 회복을 원하며 살았습니다.

시 121

환난 중에서 자신의 도움은 오직 하나님뿐임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언제나 지키시는 여호와를 찬양하며 의지합니다. 그분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24시간 쉬지 않고 일하는 AI는 하나님의 전능함을 인간이 흉내낸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기 위해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시 122

다윗은 예루살렘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평안과 복을 구합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택하신 성읍 시온이며, 하나님의 집이며 교회입니다.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그의 보좌에 앉아 자기 백성을 다스리며 평안과 복을 구하듯,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왕이 되어 평안과 복을 직접 내려 주시며 다스리십니다.

시 123

신실한 순례자가 자신을 조소하고 멸시하는 자들로부터 (4) 구해 주시기를 공동체적으로 (우리가) 탄원하는 시입니다.
주일 예배 시작시 예배로의 부름 때 종종 낭독하는 시편입니다. 예배로 부르시는 하나님께 은혜를 사모하며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은혜를 수여자가 하나님께 달려 있기에 그분이 베풀어 주시는 손을 바라보며 예배에 임하는 것입니다.

시 124

다윗의 시인데, 제목을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라고 정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편이 되셔서 대적에게서 구원해 주셨음을 찬송하고, 또 여호와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돕는 자 이심을 찬송합니다.
우리의 대적은 누구일까요? 가장 근본적인 적은 사탄입니다. 늘 우리를 정죄하고 유혹하여 넘어뜨리려고 삼킬자를 두루 찾아다닙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대적하는 세상의 사상, 철학, 가치관과 문화입니다. 예수님과 그리스도인을 물리적, 정신적, 언어적등으로 욕하고 핍박하며 박해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모든 대적들로부터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시며, 우리편이십니다.

시 125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들의 견고함과 영원함을 노래합니다. 이 자들은 죄악에서 멀리하며 마음이 선하고 정직한 자들입니다 (3,4).
여호와를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것이 지혜와 명철이라는 성경의 대원칙에 부합하는 자들의 삶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들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거나 죄악 가운데 악인들과 함께 머물며 살 수 없습니다.

시 126

포로 귀환의 기쁨을 노래합니다. 이는 제2의 출애굽이며, 하나님의 큰 구원의 일입니다 (2,3).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6). 구절 옆에 이렇게 써 놓았었네요.
“바른 교회 개척 사역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사역이다. 멈추지 않을 때 반드시 기쁨으로 곡식 단을 가지고 올 것이다.”

시 127

이 시편은 지혜시입니다. 한 집의 가장이나 부모와, 그리고 인생에서 경력과 성공을 추구하는 신자 개인이 깊이 묵상해야 할 말씀입니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교회든 하나님이 세우지 아니하시면 인간의 수고가 헛될 뿐입니다.
일상에서의 성실한 수고와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는 일 모두를 강조하는 시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는 사역, 계획, 수고와 노력은 헛된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을 의지하고 맡기고 평안을 누려라.”
개척 초기에 기록한 것이어서 그런지 성경 구절의 적용을 개인과 가정보다는 교회에 많이 적용한 것 같습니다.

시 128

역시 지혜시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받을 복을 그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노력에 결실을 맺고,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단란한 가정의 복을 누립니다.
죄로 인해 깨어진 세상에서는 모든 가정이 이런 평범해 보이는 가정의 복을 누리지 못한 가정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이런 평범한 가정의 복의 모습이 지금 시대에는 이상적 가정의 모습이 되어 갑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이런 복을 구하며 누리며 살기롤 추구하되 설령 그렇지 못할지라도 주의 오심으로 완성될 나라에서 온전히 누릴 것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시 129

오랫동안 이스라엘과 시온을 괴롭히는 악한 자들 (대적자들)을 여호와께서 심판하셨음을 성전 예배를 향해 가면서 노래한 시입니다
3절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했던 고통의 극심함을 잘 표현해 줍니다. 그런 고통 속에 하나님의 도우신 손길을 노래합니다.

시 130

7대 참회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6, 32, 38, 51, 102, 130, 143).
죄악을 지켜 보시는 분 앞에서 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죄 용서는 오직 주께만 있습니다. 신자의 복은 사유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서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을 그 안에 가지신 여호와께서 (7) 이스라엘을 (교회를) 그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실 것이라는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응답되었습니다.
우리의 죄가 언제나 태산이지만 우리를 대신해 죄의 값을 지불하신 그리스도로 인해 언제나 용서받은 죄인으로 나아가는 은혜에 감사합니다.

시 131

1절: 그렇습니다. 내게 주신 능력 안에서 만족하고 주께서 주신 본분과 맡겨진 사명에 충서해야겠습니다.
여호와를 바라는 자의 영혼이 누리는 평온함과 고요함입니다. 수 많은 정보가 넘쳐나고 마음이 항상 분주하며 급하게 쫓겨다니는 생활 속에서 이런 영혼의 상태를 주 안에서 누리는 것이 얼마나 절실한지 모르겠습니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2)

시 132

제왕시로 분류되는 시편입니다. 시인은 다윗의 후손 중 기름부음 받은 직분을 가진 제사장 혹은 왕 중에 하나일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다윗 왕조의 회복과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신 다윗 언약(삼하 7:14-15)을 지키시기를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바벨론 포로기에 썼다면 시인은 하나님이 무너진 다윗 왕조를 다시 회복하시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를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해서 기도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12: 다윗 왕국 (하나님 나라)의 영원함은 왕과 그 후손들이 하나님의 율법(말씀)을 지키는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이들은 여기에 신실하지 못하였기에 지상에서의 다윗 왕국은 사라졌습니다. 율법의 완전한 준수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성취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우리대신 순종하시고 그 순종을 우리에게 전가시켜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완전한 순종이 우리의 것이 되어 죄사함받고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왕되신 하나님의 왕국과 왕의 권위는 영원한 것입니다.
13-16절은 하나님이 시온 (예루살렘성) 인 교회에 거처를 삼으시고 거하시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을 말하는데,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처라는 사실은 교회에 대한 우리의 신앙과 태도를 돌아보게 합니다.

시 133

이스라엘 공동체의 연합과 동거함의 선하고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이 시편은 지금 우리 교회 공동체가 함께 노래하며 이루어가야 할 모습니다.
현대의 자기 중심적,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 가치관과 문화에 저항하는 것이 교회 공동체의 연합과 동거함을 힘써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한 공동체, 한 성전입니다.

시 134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의 마지막 부분으로 “여호와를 송축하라” 는 찬양의 촉구로 매듭짓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주일 예배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하신 주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거하시면서 복 주시는 시간입니다.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과 그가 행하신 모든 일들” 을 소리 높여 찬양하는 것입니다.

시 135

찬송시입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1)라는 촉구에서 시작하여 “여호와는 시온에서 찬송을 받으실 이로다” (21) 라고 찬송으로 끝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행하신 일들을 다시 회고하며 우상이 아닌 하나님에게 찬송할 것을 노래합니다.
당시 사람들에겐 눈에 보이는 아이돌 (우상), 형상, 그림, 조각, 금이었지만 지금 우리의 우상은 “금, 비트 코인같은 가상 화폐, 주식, 부동산, 펀드, 저축” 같은 “돈과 부” 입니다. 심각합니다. 저 자신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우상입니다. 목사로서 나와는 거리가 먼 것이기에 포기했을 뿐이지 그것에 대한 탐심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의 씨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욕망을 점점 작아지고 줄어들지만 말입니다.
시편 기자가 통찰력 있게 지적했듯 우상은 입이 있어도 말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죽은 존재, 무능한 존재일 뿐입니다 (15-17).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의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를 눈동자처럼 살피시고 바라보시는 인격적인 살아계신 참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고, 개입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용서하시며 복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18절: 사람은 자신이 의지하는 대상과 같아집니다. 우상을 의지하는 자는 우상과 같아집니다. 돈을 의지하는 자는 돈과 같아집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우리 모두 예수를 의지합시다!

시 136

반복어: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
1-9절까지는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을 선포하며 감사하라고 선포하며, 창조의 하나님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드러냄을 말합니다.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
10-24까지는 이스라엘을 출애굽을 통해 구원하시고 가나안 땅을 주시고 원수를 물리치신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선포하며, 구원의 하나님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임을 말합니다.
인자하심은 히브리어로 “헤세드”인데 딱 한 단어로 번역할 수 없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창조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일하심 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영어로 “Steady Fast Love” 인데 변함없는 견고한 사랑, 언약적 신실함에서 나오는 불변의 사랑과 자비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이 하나님의 “헤세드” 의 영원함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하나님의 헤세드는 아들을 보내셔서 죄인을 대신해 죽게하신 십자가의 사랑으로 완전히 계시되었고, 그 사랑은 새 언약의 중보자되신 그리스도의 영존하심으로 영원한 인자가 되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오늘도 우리를 감싸고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루임을 고백합니다.

시 137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당한 후 바벨론에서 포로로 살고 있는 유다 백성들의 고통을 회상하며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특히 시인은 성전에서 찬양을 담당했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때 성전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즐거워하던 때를 그리워하며,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탄원합니다.
에서의 후손인 에돔 자손을 심판해 달라는 것과, 바벨론의 멸망을 호소합니다.
특히 9절은 어떻게 시인이 “바벨론의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을 것이라” 고 소원할 수 있는지..너무 잔혹하다라고 비판하는 걸로 유명한 구절입니다.
이는 개인적 복수가 아니라 바벨론이 유다인들에게 행한 잔혹한 행위를 그들이 행한대로 갚아달라는 공의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단지 유아들을 죽여 달라는 호소가 아닙니다! 고대에는 “탈리오의 법칙” 이라고 해서 처벌은 범죄와 대등하게 일치되어야 한다는 복수법을 바벨론에게 적용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바벨론이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잔인한 악행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고대에는 정복민의 유아들을 죽이는 가증한 습관이 있었습니다. 바벨론이 유다를 침공하며 유다의 유아들을 많이 죽였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께 그들에게 공의의 심판을 탄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구절을 잘못해석해서 악한 자들을 개인적 악감정으로 저주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들도 회개하고 주께 돌아오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끝내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그들의 죽음에서 주의 재림에서 반드시 그들이 행한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을 호소할 수 있습니다.

시 138

신들 (인간이 섬기는 우상) 의 신 (참된 신 하나님) (1), 모든 왕들 위의 왕이신 여호와의 높으심과 영광(4, 5) 과 그럼에도 인간을 굽어 보시고 살피시는 여호와를 찬양하며 구원을 호소합니다.

시 139

내 나의 모든 것과 나가 가는 모든 것을 아시는 여호와를 노래합니다. 악과 악인을 미워하고 그들의 죄악된 길을 가지 않음을 하나님께 확증합니다 (21-24).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됩니까? 하나님은 나를 지으신 분이시며, 내장을 지으시고 모태에서 나를 지으신 분입니다 (13, 15).
16절은 대단한 고백입니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나를 보셨고, 나의 이름이 하나님의 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은 내가 세상에 나기 전에 나를 아신 분이십니다.
“내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 “나를 지으신 분” 찬양하며 의지하며 살겠습니다.

시 140

악인 (교만한 자, 포악한자, 악담하는 자)에게서 구원을 호소하고 악인의 심판과 멸망을 호소하는 기도입니다.
이 악은 말과 관련된 공격입니다. 악담, 입술의 재난, 독사의 독 같은 단어들이 이것의 혹독함을 말해 줍니다. 말로 짓는 악은 그 어떤 것보다 큰 손상을 줄 수 있는 강한 무기입니다. 악한 자의 말의 공격으로부터 지켜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시 141

3절: 말을 절제하고 삼가야 함을 멋들어진 그림 언어로 표현하고 있네요.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말은 그 사람의 거울입니다. 자기의 말을 지키는 것은 성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할 만큼 우리의 인생을 지켜 주며 타인의 마음의 성도 지켜 줍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또 자기가 기도 들으시는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겠노라고 말합니다.
다른 많은 시펴처럼 이 시에도 후반부에서는 악인이 그들의 악에 합당한 형벌을 받기를 간구합니다

시 142

자기를 핍박하는 자로 인해 낮아진 자신의 상황에서 심령의 고통을 여호와 앞에 토로하며 구원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비천하게 되셔서 핍박과 모욕과 종롱 당하셨다가 죽음의 권세를 개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를 지옥과 같은 고통에서 건져주셨습니다 (6-7).

시 143

시인의 원수된 자가 시인을 죽음에 몰아 넣고 있는 상황에서 여호와의 건져 주심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7대 참회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6, 32, 38, 51, 102,130, 143).

시 144

제왕시입니다. 그들의 통치자인 다윗의 후사에게 승리를 달라고 (10, 12,13, 14)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15: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정말 그렇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주인, 왕으로 섬기는 자는 복된 존재입니다. 공의와 정직과 공평과 사랑으로 자기 백성을 다스리는 하나님 아래 있는 백성이 그런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 145

시편 145: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진실되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시

시 146

도움을 줄 능력이 되지 않는 인간을 의지하지 말고 (3-5) 도울 힘이 있는 하나님 (10) 을 의지하라는 찬양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통치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고 소망을 두는 자가 복된 자임을 말합니다 (5).
내가 바라던 대로, 원하는 대로, 요구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이 안 계시거나 다스리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부패한 인간 세상은 죄악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늘 넘쳐납니다. 하나님은 억눌린 사람들, 주린 자들, 갇힌 자들, 맹인들, 낮은 자들에게 마음을 두시며 돌보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이들을 생각하고 돌보는 것이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사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시는 동안 늘 사회적 약자와 경계선에 사는 자들을 사랑하셨고 함께 하셨고 그들에게 복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시 147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말씀으로 다스리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말하면서 창조의 말씀을 하나님 나라 백성들에게 보이셨음을 기뻐하고 찬양합니다.
4절: 온 우주에 떠 있는 별들의 갯수를 세시고 이름들을 다 아시는 하나님의 전능, 전지하심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뿐입니다!!
이런 위대하신 하나님이 자기를 경외하며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 (11) 에게 말씀을 들려 주시고 깨닫게 하신 것야 말로 (19-20) 최고의 찬송의 제목입니다.

시 148

여호와를 찬양을 촉구하는 대상은
하늘에 있는 것들: 모든 천사, 모든 군대 (천군천사) (2), 해, 달, 별들 (3), 하늘의 하늘 (4), 하늘 위에 있는 물들 (4) ,
땅에 있는 것들: 용들과 바다 (7), 불, 우박, 눈과 안개 (8), 산들, 과수, 모든 백향목, 짐승, 모든 가축, 기는 것과 새 (10), 왕들과 백성들, 고관들, 모든 재판관들 (11), 총각, 처녀, 노인과 아이들 (12)입니다.
모든 자연 만물은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에 순응하여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자연 만물의 찬양의 방식입니다.
특히 여호와는 자신의 백성들의 찬양 받으시기를 기뻐하신다 (14).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모든 피조물의 의무이며 창조 목적입니다. 이 사실에 비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면 살아가는 방식은 얼마나 찬양과 멀여저 있는지 모릅니다. 찬양은 주일 예배 시간에 형식을 따라 부르는 노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위대하심, 지혜와 힘을 깊이 깨닫는 자가 모든 존재에게 찬양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중한데?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것입니다.

시 149

성도의 찬양과 영광을 노래합니다. 성도의 영광으로서 만민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주와 함께 왕노릇 하는 자로서 주안에서 주가 모든 사람의 심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시편은 계시록의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바라봅니다.

시 150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소는 땅과 하늘입니다. 하늘과 땅은 하나님의 성소 (거룩한 곳) 이 되어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이 모든 생명의 존재하는 이유이며 활동의 중심입니다.
삶의 목적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것임을 알 때, 우리의 삶의 방향이 분명하고 심플 라이프가 될 것입니다!
시편이라는 책의 마지막이 찬양으로 끝나듯,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도, 역사의 종말도 찬양으로 마칠 것입니다. 그 찬양이 영원토록 이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구속의 드라마의 결말입니다!

시 143